문장웹진(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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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이소선 어머니
이소선 어머니 박영희 일천구백팔십구년 오월 여의도 고수부지에서다 건국 이래 가장 많은 농민과 노동자가 모인 그날 오줌 마려워 두리번거리는데 여성전용 공중변소 앞이 장사진이다 갑을갑을 갈지갈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땐 남녀가 다름에 안타까운 심정으로 볼일을 보고 화장실을 나오는데 줄을 선 저만큼에 머리띠 두른 여자 하나 눈에 익다 반가운 마음에 뛰어가 앞줄로 가시자고 하자 그는 몸에 밴 듯 한마디를 하신다 내 아들이 화내면 어쩌려고. 하늘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죽은 태일이가 무서워서도 난 그렇게 못하네. 이 어미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다 지켜보고 있을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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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어머니 병 팔러 가셨다
어머니 병 팔러 가셨다 임희구 아들 출근하고 나면 술자리가 길어져 새벽에야 돌아오면 일이 겹쳐 이삼일씩 근무하고 오면 여든이 넘으신 어머니 독거노인처럼 혼자 지내신다 혼자 주무시고 혼자 일어나시고 혼자 씻으시고 혼자 아침상 차리시고 혼자 식사하시고 혼자 설거지하시고 혼자 소화시키시고 혼자 티브이 보시고 혼자 생각하시고 어떤 날은 기운 없어 문턱도 못 넘으시니 혼자 마냥 누워 계시고 간간이 걸려오는 먼 자식들 안부전화 혼자 쓸쓸히 받으시고 2 현관에 빈 술병들이 모여 있다 날마다 혼자인 듯 사시는 어머니 빈병 모아 놓으셨다 자식들이 몇이나 있는데 혼자 사시는 것도 아닌데 어머니 왜, 왜 그러시냐고 하숙생 같은 놈이 어머니께 잔소리를 하고 하니 화가 나고 풀이 죽고 부끄럽고 기가 막힌 밤 어머니 병 주워 오시면서 슈퍼에 다녀오시면서 연골 다 삭아 아픈 다리 운동이라도 하시라고 망망한 고독 한 귀퉁이라도 아들 같은 빈 술병들로 달래시라고 이튿날 퇴근길 단지를 한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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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이 세상 모든 책들의 어머니- 출판편집자
"책을 낳는다, 책을 키운다, 책을 품은 사람 " -출판 편집자 최양순 편집장과의 만남- "평소 책읽기와 문학, 그리고 문화에 관심있는 청소년들이 장래에 도전해 볼 만한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물론 모든 이들이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어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펼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다. 이즈음의 우리 사회는 문학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하고 있기도 한데... 이런 관점에서 평소 문학과 책읽기에 관심있는 청소년들이 이후 나름대로 흥미를 느끼고 또 평소 쌓아온 자기만의 재능을 발휘하며 살아갈 만한 여러 직업의 세계를, 이미 그 업종에 몸담고 있는 관계자들로부터 전해 듣는 시간을 만들어 본다" (편집자주) 아주 오래전 궁핍과 함께 ‘독서’에 빠진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은 나 스스로 생각해도 허기진 눈빛만 깜박깜박. 뭐 좀 읽을 게 없나 하고 두리번거리던 시절이었다. 나는, 흰 종이에 쓰인 ‘검은’ 활자들을 열심히 빨아먹는 괴물 같았는데, 그것은 서점에 죽치고 앉은 아이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던 서점주인도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서점주인에게는 미안하게도 나는 당시 ‘신간코너’에 책들을 마치 내 것인 양 좋아했다. 해서 나는 ‘나의 단골 서점’을 열심히 찾아갔다. (하지만 단골이라는 것은 내 쪽의 생각이지 ‘서점주인’은 전혀 그렇게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흐트러진 책의 순서를 원래대로 되찾아, 차례대로 꽂아주는 일도 했다. 생각해 보면 서가의 책들은 분명 내 것이 아니면서 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주머니가 비어서 보던 책을 사지는 못하고, 그저 내 것처럼 읽고 또 읽어서, 책 한 권의 활자를 모두 ‘빨아서 삼켰다’는 표현을 그 옛날의 ‘서점주인’이 들으면 억울할까. 아무튼 서점을 나올 때는 책의 맨 마지막 페이지, 판권 위에 쓰인 작가의 약력까지를 뚫어지게 살폈는데, 그때는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 배고프다는 생각을 곧 잊고 말았던 거 같다. 좋은 글을 써댄 작가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보다는 뭔지 모를 치기와 ‘질투’가 내 속에서 뿜어져 나왔던 것 같다. 그리고는 또 미안한 기색도 없이, 다음 차례인 ‘잡지 코너’로 이동을 했던 것 같다. 그때 서점주인을 의식해서 가졌던 생각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장차 이 많은 책들을 모두 공짜로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라는 어리숙한 ‘몽상’에서 아예, ‘출판사 사장’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어린 내 생각은 책을 공급하는 출판사 사장이 서점보다는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시간이 흘러서 ‘출판사 사장’이 되려는 생각은 우물쭈물 수정되었고,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나중에 ‘적나라하게’ 알게 되었다. 그것은 보통 복잡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책 만드는 일’ 만큼 또한 재미있는 일이 또 있으랴 싶었다. 이것은 몸소 겪은 체험이기도 했다. 당시 ‘책을 만드는 일’의 현장에서 들었던 말들 가운데,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말은 ‘책 만드는 일은 비행기를 한 대를 만드는 일과 같다’라는 훈시와 함께 ‘책 만드는 사람’의 ‘자세’를 요구했던 한 출판인의 말씀이,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홍대 근처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서강출판사 최양순 편집장(사진 위 왼쪽)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아주 오래전에 열심히 들락거리던 서점의 한 층계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기분이 들었다. <최양순 편집장이 만든 책들> 선생님 안녕하세요. 책과 관련한 분들을 뵐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왠지 모르게 아주 ‘정적이구나’ 하는 느낌이 드네요. 고정관념이겠죠. 하지만 얘길 나누다 보면 제 예상대로 섬세한 분들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요. 섬세해야, 책을 잘 만들 수 있겠죠. 선생님은 ‘책 만드는 일’을 하시면서, 개인의 성격을 탓하거나 외려 이 일이 ‘적성’에 잘 맞는다는 걸 느끼신 적이 있는지요? 어느 쪽인지 궁금하네요. = 저는 어렸을 때 무척이나 내성적인 아이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은 에너지가 넘친다는 얘길 많이 들어요. 나이가 들어서인가? 성격이 많이 변했나 봐요. 몇 번의 전화 통화만 하다 만난 번역가 한 분은,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힘과는 다르게 모습은 차분하시네요.” 하더군요. 하지만 내면엔 여전히 타고난 성격들이 남아 있겠죠.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책 만드는 일’을 하려면 차분하고 섬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는 거쳐야 할 공정들이 아주 많거든요. 그것들 가운데 하나라도 놓치면 책이 제 모양을 갖출 수 없을 테니까요. 다행히 저는 이 일을 아주 좋아하고, 제 적성에도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책 만드는 일’을 궁금해하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짤막하게나마 소개한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 아이디어, 글, 그림, 사진, 디자인, 인쇄, 제본, 시간, 노력, 정성 등등 수많은 요소들이 어우러져 비로소 한 권의 책이 탄생하는데, 그 과정을 짤막하게 소개하기는 무척 어렵네요. 이후 원고가 들어오면 처음 의도대로 구성되었는지 살피고, 만일 충분치 못하면 원고를 수정, 보완 하는 과정을 거쳐 교정, 교열(또는 윤문)을 합니다. 이처럼 책 내용을 완성한 뒤에는 기획 의도와 원고에 맞는 표지 및 본문을 디자인해 책의 외형을 갖춥니다. 이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의 협의가 이루어지죠. 다음에는 일련의 제작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디자인이 끝난 원고를 출력소에 보내 필름을 뽑은 뒤, 표지와 본문으로 사용할 종이를 정해 필름과 함께 인쇄소로 보내면 그곳에서 컬러 또는 흑백 인쇄를 합니다. 이후 표지는 라미네이팅이라고 해서, 인쇄한 표지 종이 위에 표지와 같거나 다른 종이, 필름, 금속박 등을 덧붙이는 과정을 또 거칩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본문과 함께 제본소로 보내지고, 그곳에서 낱장인 본문을 차례에 따라 실이나 철사로 매고 거기에 표지를 붙여, 책으로 꾸미는 겁니다. 이렇게 만든 책이 ‘마케팅’을 통해 여러분에게 전해지는 거죠.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참 많고도 복잡한 과정을 거치죠? 그렇게 태어난 책이 잘 자라야 하는데, 그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네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이 전 과정 중에서 그래도 선생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전 과정이 모두 소중한 일이지만 그래도 하나를 꼽아달라는 ‘우문’을 던집니다. = 네, 우문 맞습니다. 어떤 과정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죠. 정말 열심히 보고 챙기고 해도 어느 틈에선가 생각지 못한 실수가 비어져 나오곤 하니까. 그래도 꼭 집자면, 전 ‘원고’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디자인을 잘해서 멋지게 꾸며도, 또 마케팅 능력이 뛰어나 잘 팔아도, 원고가 지닌 힘이 없으면 그 책은 생명력을 잃고 말 테니까요. 가치 또한 떨어질 거고요. 그런데 정말 속상한 건, 책의 수요는 결코 이와 같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소신 없이는 더는 이 일을 할 의미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동안 출판사에 몸담으면서, 편집장으로서 중책을 맡아오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 책 만드는 일이 결코 쉽진 않지만, 그래도 일은 하면 된다는 생각에 그리 어렵진 않습니다. 또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지금 새삼 어려운 것은 없고요. 그러나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가장 버거운 건 ‘사람하고의 관계’인 것 같습니다. 비단 이 일뿐 아니라,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의견을 충분히 나누고 일을 시작하지만, 막상 진행하다 보면 이것저것 생각지 못한 차이들이 생기죠. 그때 누구의 자존심보다는 내고자 하는 ‘책꼴’이 가장 중요하다는 전제 아래 의견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가장 어렵습니다. 거쳐야 할 많은 과정 곳곳에 필요한 저마다의 역할이 있는 만큼, 편집장은 그 모든 이들이 제몫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율을 잘해야죠. 아주 많은 책들을 만들었을 텐데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책이 있으면 소개를 좀 해주시죠? =돌베개 출판사에서 나온 ‘김시습 평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아, 전 작년에 다시 출판사에 들어오기 전까지 약 7년을 프리랜서로 일했답니다. 그 시절에 정말 많은 책들을 만든 것 같네요. 지금 생각해도 저의 이 모자란 실력으로 저 원고들을 어떻게 봤을까 싶은데, 그땐 어렵지만 정말 재미있게 작업했습니다. 이리저리 많은 책들을 뒤지고, 그래도 모르면 다른 분들께 물어 가면서 원고를 보던 기억이 새롭네요. 저자이신 심경호 선생님도 많이 기억나구요. 그 동안 많은 선생님들과 일했는데, 그 분야의 지식이 많이 부족한 제 의견들을 선생님처럼 존중해 주셨던 분도 드문 것 같아요. 돌베개 사무실에서 선생님과 함께 밤새 가며 작업했는데, 출간된 후에 좋은 책으로 평가받아서 더욱 기뻤습니다. ‘책 만드는 일’에 있어서 편집장으로서의 고통이 있다면 또한 ‘희열’, ‘보람’이 있을 거 같습니다. 이 두 가지 상반된 얼굴에 대해서 얘기를 좀 부탁합니다. = 결국 앞에서 한 얘기들의 중복인데요, 가장 어려울 때가 저자에게 원고에 대한 의견을 말할 때인 것 같아요. 원고가 좋으면 전혀 문제가 없지만, 거절하거나 다시 써 달라고 요청해야 할 때도 있거든요. 이런 경우는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니까요. 이런 과정들이 모두 좋을 책을 내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하고 이해해 주십사 부탁은 하지만, 그래도 저자 입장에서는 기분 좋은 일은 아니죠. 이건 삽화가나 디자이너에게도 마찬가지고요. 반대로 책 만드는 모든 공정들이 원활하게 진행되어 제 모습을 잘 갖춘 책이 나오고, 그것이 추천까지 되면 정말 뿌듯하죠. 서점에 나가보면 느끼는 바 이지만 책은 하루하루 변화는 거 같습니다. 저 역시 그것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고요. 요즘의 책들은 ‘큰 틀’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또 독자들의 성향은 어떤지요? 매일매일 책과 씨름하고 있는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네요? = 시장의 흐름을 단적으로 이야기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단 제 짧은 생각은 사람들이 복잡하고 어려운 책보다는 단순하고 재미있는 책을 더 좋아하지 않나 싶어요. 또 실용적인 면이 강세를 보이는 듯도 하구요. 이것만큼은 꼭 봤으면 좋겠다 싶은 책들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선택될 뿐, 대중에게는 외면당하기 일쑤죠. 처음부터 ‘편집장’이라는 중책을 맡으시지는 않으셨죠. 책과 관련한 선생님의 ‘초보’시절 얘기를 좀 듣고 싶네요. 어느 인연으로 ‘책을 사랑하게’ 되었는지요? 어쩌다가 ‘책’이라는 훌륭한 ‘그것’에 빠지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 인연이라는 게 참 이상해요. 사람과도, 그리고 일하고도. 그런데 이만큼 지나와서 보면, 정말 인연이지 우연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저야말로 어쩌면 우연히 책 만드는 일을 시작했는데, 그 우연 또한 꼭 만났어야 할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출판사와 연을 맺은 건 대학 선배 언니가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하면서였어요. 대학을 졸업한 뒤 2년쯤 고등학교 강사로 일했는데, 어느 날 언니가 ‘판매사’라는 책의 원고를 좀 써보라고 하데요. 세 달 정도 아르바이트하는 건데, 제 적성에 잘 맞을 것 같다면서…. 그래서 한번 해보겠다고 했죠. 원고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고, 겁도 없이. 그때 그 출판사에서 훌륭한 선배를 만났어요. 출판 업무 전체에 고른 능력을 갖춘 감각 있는 선배를. 다행히 그 선배도 사장님도 절 어여삐 봐 주셔서 한 달 만에 직원이 된 뒤, 참 많은 일들을 배웠죠.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그처럼 능력 있는 선배는 그 후로도 흔치 않았거든요. 이후 책 만드는 일이 어려우면서도 꽤나 즐거웠어요. 지금도 앞으로도 줄곧 그럴 거라고 확신하고요. 선생님께서도 책을 만들면서 혹은 책을 대하면서 나름의 좌우명이 있을 듯싶은데요? = 전 베스트셀러를 만들 자신은 전혀 없어요. 하지만 제가 만들고 싶고, 또 객관적인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책은 꼭 한 권이라도 스테디셀러를 만들고 싶습니다. 입소문을 타고 서서히 사람들의 가슴에 스며드는 책…. 물론 아직은 욕심에 불과하지만요. 그리고 이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합격선을 넘어선 원고’라고 생각합니다. 몇 해 전에 누군가가 “요즘에는 책 내용의 완성도보다 마케팅이 더 중요한데, 만일 일주일 앞으로 출간 일을 정해 놓은 책의 원고가 좀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어떻게 하겠냐?”고 묻더군요. 그때 저는 출간 시기를 조절해서 원고의 완성도를 높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출판에서 마케팅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한번 내놓은 책은 다시 거두어들일 수 없는 만큼 최고는 아니더라고 최선을 다해, 적어도 책에게 또는 그 책을 보는 독자에게 많이 미안하지 않을 정도는 돼야 출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손을 거쳐서, 앞으로 나올 책들은 어떤 책들인가요? 소개를 좀 해주시죠? = 오래 전에 기획하고 시장조사를 한 뒤, 여러 사람에게 자문을 구해 출간하기로 결정하고 지금 한창 진행 중인 ‘인물로 보는 직업의 세계’ 시리즈(가제)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직업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자신이 장래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적성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성적에 맞추어 대학의 학과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직업에 관한 다양한 정보와 함께 현재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인물을 역할 모델로 제시해,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그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게 한 배경과 그 동안 기울인 많은 노력, 경험, 작품 세계 등을 약전 형식을 빌려 소개하고, 그 직업 세계에 관한 정보와 이해를 높일 만한 많은 팁을 담았습니다. 현재 의사(아산병원 심장전문의 송명근 박사), 공학자(로봇축구를 창시한 카이스트의 김종환 박사), 건축가(파주출판도시 종합 코디네이터인 승효상 씨), 산업디자이너(이노디자인 대표 김영세 씨)에 관한 책을 준비하고 있어 1월 말쯤부터 출간할 예정입니다. 이 책들이 자리를 잘 잡아 앞으로도 이 시리즈를 계속 출간하길 바라며, 지금처럼 우리가 흔히 아는 직업을 넘어 새롭게 주목받는 다양한 직업들을 소개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책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있을 것입니다. ‘출판’과 관련한 일을 ‘직업’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준비하라고 당부하고 싶은가요? 먼저 이 길을 걷고 있는 선배로서 장래의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 우리 출판사에서 내는 직업 시리즈에 ‘출판기획자’를 빨리 포함해야 할 것 같네요. 그 책이 길잡이 노릇을 똑똑히 해줄 텐데…. 어떤 일을 하나 마찬가지겠지만, 책을 포함한 다양한 정보들을 많이 깊이 있게 접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외국어도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다른 어떤 일보다도 정말 “아는 것이 힘”인 직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 일을 왜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거듭 물어 가며 ‘마음’ 담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최근에 보신 책 중에서 ‘와 이거 정말 멋진 책이네!’하고 놀라신 책이 있으면 한 권 추천해 주시죠? =글쎄요, 사실 요즘은 우리 책 만드느라 다른 책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책이 없네요. 제 잣대라지만 검증 없이 추천하기는 어려울 듯해 이 질문에는 답하기가 좀 곤란하네요. 죄송합니다. 앞으로 이 책만큼은 꼭 만들고 싶다 하는 책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죠. =어린이용 평전을 만들고 싶습니다. 더 심화하고 검증도 받아야겠지만, 이미 기획서를 만들어 시장조사도 하고 필자도 구상해 놓은 일인데, 책으로 나오기까지는 아마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유는, 요즘 청소년용 평전이 조금씩 나오고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인물에 관한 책은 위인전이 석권하지 않았나 싶어서입니다. 위인전은 말 그대로 어떤 사람을 위인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그보다는 우리나라, 나아가 인류에 공헌한 사람의 공과(功過)를 있는 그대로 보여 줌으로써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그 인물을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미 널리 알려진 위인보다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명해 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인물을 찾아 소개할 생각입니다. 현재 몸담고 계신 곳에서 만든 책들 가운데 ‘강추’ 할 만한 책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우리 출판사는 작년 9월부터 새롭게 제2의 출발을 한 만큼, 출간한 책이 많지는 않습니다. 이 가운데 ‘다큐동화로 만나는 우리 역사’ 시리즈는 이미 5권이 출간되었고, 지금 열심히 만드니까 내년 4월까지는 3권이 더 나올 예정입니다. 지금 서점에 가보면 수많은 역사책들이 나와 있지만, 이 책처럼 한국 근대사와 인물을 다큐동화 형식으로 다룬 기획물은 없습니다. 다른 책들이 한 인물의 생애를 영웅적으로 묘사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면, 이 책은 각 권의 핵심을 이루는 사건과 인물에 많은 비중을 두되 시대적 배경이나 당시의 사회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과 관련된 사진과 그림, 삽화, 지도 등을 곁들여 소개함으로써 역사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꾸몄습니다. 맘껏 추천하고 싶습니다. 장시간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추천하신 책을 꼭 한번 읽고 보고 싶네요. ------------------------------------------------------------------------- <후기> "왜 사람들은 서점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지? 그곳엔 분명 뭔가가 있어, 내가 모르는!" 최양순 편집장은 지금도 여전히 살고 있는 이곳 상도동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습니다.현재 서강출판사에서 근무하며, 책 만드는 일 외에 아이들의 마음밭을 가꿀 수 있는 동화를 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그 동안 『김시습 평전』,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북으로 간 예술가들』, 『청소년이 읽는 우리 수필―김수영, 정지용, 이태준, 조지훈, 김기림, 김용준』, 『인문학의 위기』,『지상으로 내려온 철학』, 『도교와 문학, 그리고 상상력』, 『서포 소설의 선과 관음』,『한국 유식사상사』, 『조봉암과 1950년대』, 『삶,죽음,운명』, 『교양으로 읽는 세계사』, 『서 있는 사람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물소리 바람소리』, 『영혼의 모음』, 『산방한담』, 『텅빈 충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불타 석가모니』, 『인연 이야기』, 『선가귀감』, 『이이화 선생님이 들려주는 만화 한국사 이야기』, 『로버트 게로치 교수의 물리학 강의』, 『3일간의 자유』, 『마지막 선물』, 『칭기스칸기』 등 많은 책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으며, 『하늘나라 경찰관』이라는 책을 엮기도 했습니다. <필자소개> 이기인 (李起仁) 인천 출생 200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