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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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인터뷰-텍스타일 아티스트 정희기 ‘기억에서 멀어지는 대상들을 시각화하는 작업’
이제는 사라진 지명인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소설을 쓸 생각을 어떻게 했느냐 하면, 내게는 놀랍게도 ‘소비에트’ 시절 모스크바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친구가 있었다. 대학 시절 후배였던 정희기는 한두 번 그 이야기를 꺼내곤 했는데, 내게는 슬레이트 지붕 맥도날드 앞에 도열한 기마경찰에 대한 이야기가 머릿속에 깊은 이미지로 남았다. 또한 학교에 갈 때마다 본 엄청나게 큰 가가린 동상, 국민차라고 불리던 러시아산 저가형 빨간 차 ‘모스크비치’. 물론 정희기가 역사학 공부를 하러 유학을 떠난 아버지, 가족들과 함께 모스크바에 살 때 나는 서울에 살고 있었지만 어떤 어린 시절의 이미지는 그런 식으로 자동으로 공유되었다. 이후 소설의 디테일을 확보하기 위해 정희기의 어린 시절 사진 속 파이프 관을 걷는 소년들의 이미지를 꼼꼼하게 살펴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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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소년, 지구 종말의 날까지 분열하라
― 「일어서, 건담」 중 명징한 평화를 칭송하는 어조로 시는 어린 시절 우주를 지키는 최대의 영웅이었던 건담 서사와 쇼핑몰 마트의 직원을 하나로 결합시키고 있다. 쾌적한 삶을 보장해 주는 거대한 쇼핑센터의 안락한 기쁨에 젖어든 사람들의 시선에 비치는 건담은 그야말로 평화를 위한 영웅이다. 기껏해야 그들이 하는 일이야 흐트러진 과자를 재진열하고, 바코드를 긁어 계산을 효율화하는 일이지만 그야말로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일이다. 건담과 휴먼의 기계적 호칭, 슈퍼 마씨의 투쟁은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아로새겨진 자발적 복종, 사회의 구조에 길들여진 습성을 은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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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하이에나
어린 시절 실종됐다고 하고. 본인이 영훈 씨 어머니의 아버지, 그니까 할아버지라는 표현을 쓰면서 접근한 거 맞죠? 다 같은 수법입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같은 방식으로 당했어요.” 귤 박스 안에는 수십 장의 실종 전단지가 들어 있었다. 놀랍게도 전단지 속 어린아이의 얼굴은 모두 달랐다. 그 속에는 어린 영훈도, 다른 피해자의 어린 시절도 담겨 있었다. 영훈은 떨리는 손으로 전단지들을 여러 장 훑어 봤다. 훑어 보는 영훈의 얼굴에는 생기가 전혀 없었다. 하얗게 질린다는 표현은 지금 영훈의 표정을 묘사하기 위해 생겨난 것 같았다. “놀라셨을 거예요. 김건우 씨 상습범이에요. 페어런츠피싱. 들어본 적 있죠? 이영훈 씨도 조금 이따가 다시 정식으로 참고인 조사 받아야 하니까, 저기 뒤쪽에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경찰관은 점심시간에도 쉬지 못하고 일한 은행원처럼 영훈의 반응을 귀찮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