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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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7월_시_비] 비(秘) 밀(密)의 균형
비(秘) 밀(密)의 균형 안미린 여기, 양팔 저울이 있다고 치자 왼쪽에는 다가오는 신(神)을 앉히고 오른쪽엔 얼린 그림자 형광색 포스트잇 물에 젖은 돌을 얹으면 평형을 이루는 저울 위에서 웅크린 신과 그와 같은 중량의 윤곽들이 의외로 부드러운 것들이 단 하나의 비밀이 될걸? 짙은 밤이므로 돌의 물기를 말리면 전부 알아버린 세계의 왼쪽이 기울어지고 모두의 태명을 아마도 휘파람을 얼린 그림자에 새기면 신은 숨죽이며 꼬리를 물음표로 말아 올릴걸? 이름에 방점을 찍는 순간, 신이 튕겨 오를걸? 저울의 진동에 밤의 결속이 부스러지고 ! ! ! ! 새로운 빛이 흩날릴 거야 물음표가 형광 속으로 꺄울어지고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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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비미래 2
비미래 2 안미린 드론을 띄웠다. 부감 숏을 살폈다. 샅샅이 살폈지. 드론에 잡히지 않은 것들도. 유리 묘비가 간결하게 도미노를 이루고 있다.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거겠지. 땅 밑은 작고 우아한 식물성 관이 생분해되고 있겠고. 유리질 묘비에 반사되는 빛. 그 빛을 받고 자라나는 흰 꽃들, 영그는 유령들. 흰 것을 으깨어 추출한 검은 향수 한 방울. 검은 향수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지도 모서리를 접은 하얀 빈자리, 괴담과 미담이 반반 섞인 이야기를 불태운 향기가 났다. 도미노처럼 향기가 퍼져 나갔다. 드론을 밀어내듯 눈부시게 퍼져 나갔다. 드론에 잡히지 않는 곳까지. 이름 모를 유리 묘비에 하얗게 입김을 불어넣었지. 손끝으로 묘호를 써내려갔다. 투명한 유언의 차원은 잊힌 적 없는 선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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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비미래 1
비미래 1 안미린 유령이 하얗게 뭉쳐진 돌을 주웠지. 안개가 자욱한 수석 정원에서. 작은 돌을 주웠던 것뿐인데, 주변이 조금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텅 빈 주머니에 흰 돌을 넣고 걸었지. 물가를 따라 내려가면 해골을 닮은 물형석, 물기가 도는 운석들, 잠든 새 형태의 화석과, 연한 준보석. 돌무덤에 낳은 하얀 알이 보였다. 알을 깨면 따뜻한 안개가 피어오르겠지. 생각하면서, 돌을 감싸 쥐는 가벼운 악력. 안개 속에서 흰 돌을 쥐는 기분과, 마모된 슬픔의 내력. 이 슬픔의 둥글고 둥긂. 발밑에 부스러진 돌의 조흔색은 창백하고 달콤한 회분홍이었고. 점점 짙어지는 안개 속에서 반걸음 더 가까운 곳, 첫 천사처럼 두 눈 감는 법을 몰라서 먼 잠을 이루는 곳, 죽은 사람으로 비워낸 세계와 수면에 그 얼굴을 모아 두는 곳, 가라앉는 쪽에서 이고 있다는 밝고 투명한 돌……. 흰 돌을 놓치면 흰 광맥이 느껴졌다. 그 어디에도 멈추지 않도록 긴 손금에 끼는 안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