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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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무의미한 세계 속의 구원
이상은 「실화(失花)」에서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생활 속에서 발발하는 우연적 사건들을 그러모아 일관성 있고 의미 있는 삶의 서사를 허상으로 구축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입센이 말하는 ‘거짓말’이고, 이상이 말하는 ‘비밀’이겠다. 그러나 이것들을 완전히 걷어내 버리는 것, 그리하여 빈곤한 삶과 무의미한 세계를 직시하며 그대로 견뎌내려는 태도에서 예기치 않게 구원의 가능성은 열린다. 김성중의 「허공의 아이들」은 어떻게든 지속되는 삶의 본질로서의 공(空)에 대해서, 지독한 쓸쓸함으로 이와 대결하는 남겨진 아이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냄으로써 오래 잊히지 않을 소설 속의 한 장면을 완성해 냈다.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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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연재에세이]비문학영역(4회)내 여동생이 라이트노벨 제목을 이렇게 길게 지었을 리 없어―3
내용면에서는 기존의 인터넷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것이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실화’ 연애담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화임을 강조하기 위해 카카오톡 대화를 캡처해서 올리게 한다거나, 소설이 공유되는 카페의 관리자에게 인증을 받고 올리도록 되어 있다거나 하는 일종의 인증 시스템을 선택하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실화가 아니라고 보는 편이 맞다(웹에서 나타나는 ‘실화’에 대한 강박의 까닭을 살펴보는 것 또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어쨌든 이 ‘럽실소’도 근래의 라노베가 그러하듯 대개 문장형 제목을 택하고 있으며, 제목이 작품의 상황을 암시하도록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동북아시아의 두 나라의 서브 컬처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럽실소’는 포털 사이트 ‘다음’의 가장 큰 여성 커뮤니티 중 하나인 ‘쭉빵’ 카페의 한 게시판에서 유래했는데, 그 게시판의 이름이 ‘러브실화소설’ 게시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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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굉장히 저항적인 돼지가 좋아 (제1회)
사냥을 다닐 때 겪었던 실화. 멧돼지가 동굴로 들어가기에 입구에서 기다렸다. 동굴은 어두웠다. 총을 쏘면 총알이 튕겨서 자기에게 돌아올까 봐 나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났다. 긴장이 느슨해졌다. 그래도 기다렸다. 저녁이 왔다. 숀은 어둠이 산을 잡아먹기 전에 멧돼지를 들쳐 업고 내려가기로 했다. 랜턴을 켜고 동굴로 들어갔다. 끄악. 뱀이 우글거렸다. 그런데. 멧돼지는? 숀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멧돼지가 보이지 않았다. 옛날 설화라면 그 속에서 처녀가 돼지에게 무릎베개를 내어주고 앉아 있었다고 뻥칠 수 있을……. 숀은 뱀들이 스멀스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백스텝을 밟았다. 멧돼지가 끄어엉 울었다. 숀은 총을 떨어뜨렸다. 헤드랜턴 빛이 멧돼지를 비추었다. 멧돼지는 입에 뱀을 물고 있었다. 서너 마리가 꿈틀거렸다. 숀은 구토가 나왔다. 그는 내게 사냥을 함께 가자고 말하기 위해서 돼지 얘기를 꺼냈던 것이었다.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서 뭐 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