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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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지붕 위 여자
지붕 위 여자 신영배 집이 회전한다 여자가 달린다 접시가 천장에 붙는다 태양이 떨어진다 티브이가 벽에 걸린다 나무가 물구나무선다 욕조가 난다 새가 헤엄친다 침대가 뜨고 전봇대가 눕고 책이 쏟아진다 문자가 뒤집힌다 회전하는 집 달리는 여자 맨발은 붉어지고 구름은 그것을 적는다 붉은 구름이 찢어지는 페이지, 한낮을 목에 걸고 달린다 사멸될 문장이 발바닥 밑에서 돈다, 돌고 문장으로 집을 짓던 계절의 치마를 걷어 올리고 달리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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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음악을 만들 때
음악을 만들 때 신영배 음악을 만들 때 물속에서 물고기가 걸어 나온다 음악을 만들 때 길을 찾고 집을 찾고 물고기가 방을 찾아온다 음악을 만들 때 소녀가 책가방을 공중에 띄우는 장난을 한다 물고기는 숨어서 지느러미를 흔든다 음악을 만들 때 창가의 커튼이 지느러미를 달고, 밤에 깨어나는 책상이 지느러미를 달고, 종이 위에 그린 발끝이 지느러미를 달고 음악을 만들 때 방을 펼치고 집을 펼치고 길을 펼치고 음악을 만들 때 흔들리는 달을 따라 바다로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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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이불과 물의 방
이불과 물의 방 신영배 이불은 다리 없는 아이와 산다 이불은 손이 뭉개지는 아이와 산다 이불은 코에 호스를 꽂고 음식물을 넘기는 아이와 산다 이불은 아이가 태어날 때 태어났다 아이가 크지 않을 때 이불도 크지 않았다 이불은 발작이 오는 아이와 산다 이불은 토하는 아이와 산다 아이가 젖으면 이불도 젖는다 이불은 아이를 둥글게 말아 달을 흉내 낸다 이불은 아이를 둘둘 말아 물고기를 흉내 낸다 이불은 웃는 아이와 산다 이불은 입이 없는 아이와 산다 태풍이 몰아치면 이불은 아이를 달랜다 눈보라가 치면 이불은 아이를 녹인다 꿈에 달빛이 들고 이불은 반짝인다 아이도 반짝인다 이불은 물결을 가진다 아이도 물결을 가진다 이불은 떠다니고 아이도 떠다닌다 꿈엔 달빛이 들고 이불은 출렁인다 아이도 출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