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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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시선
시선 박상우 1 내가 두 남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밤 아홉 시경 강남대로 근처에 있는 일본식 선술집에서였다. ‘쇼부(勝負)’라는 제목의, 그러니까 뭔가를 결딴내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할 것 같은 묘한 분위기의 선술집에 혼자 앉아 나는 맹물을 마시고 있었다. 서른다섯의 학원 강사인 내가 그 시각 거기서 맹물을 마시고 앉아 있었던 이유는 만나기로 약속한 여자가 나오지 않아서였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언급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몇 남자에게 다리를 걸치고 살아가는 한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도 한심한 일이지만 그녀를 내 여자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기획 자체가 초장부터 죽을 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생각하면 악마와 악질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악마가 더 나쁜지 악질이 더 나쁜지, 그런 건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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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노마드의 시선, 타자의 시학
노마드의 시선, 타자의 시학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서지영 1. 백석에게서 노마드의 영혼을 보다 백석은 우리에게 민족, 전통, 고향, 그리고 동양의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 시인이다. 1936년 1월 20일 그가 발행한 시집 『사슴』은 평안도 북부 지역의 풍부한 방언을 바탕으로 관서 지방의 관습과 일상을 재구성하고, 전설?민담 등의 민속적 내러티브를 독특한 시적 스타일로 형상화함으로써 당대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김기림은 “『사슴』은 그 외관의 철저한 향토 취미에도 불구하고 주책없는 일련의 향토주의와는 명료하게 구별되는 모더니티를 품고 있는 것이다”고 하여 백석 시의 핵심을 간파하였다.1) ‘전통’(향토 취미)과 ‘모더니티’, 상호 이질적인 이 두 요소의 결합이 백석 시의 ‘유니크함’을 구성하는 비밀스러운 구조임을 김기림은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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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오늘을 이야기하는 여섯 가지 시선 - 한국문학의 명장면
[기획] 오늘을 이야기하는 여섯 가지 시선- 한국문학의 명장면 하나.박민정, 「버드아이즈 뷰」 강지희 [caption id="attachment_139820" align="aligncenter" width="400"]박민정, 「버드아이즈 뷰」《문학들 41》, 문학들, 2015년.[/caption] [caption id="attachment_139821" align="aligncenter" width="400"]박민정, 「버드아이즈 뷰」『제6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과지성사, 2016년. [/caption] 재혁은 자신을 찍는 여러 대의 카메라를 올려다보며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오래 전부터 꿈꿔 온 풍경이었다. 자살을 중계하는 쓰레기 같은 뉴스 카메라. 그가 사랑하는 호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디스토피아였다. TV뉴스채널이 쓸데없이 많아질 때 재혁은 그가 꿈꾸던 장면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