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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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피아노
‘연약한 눈과 작은 손 때문에 나는 부차적인 중간 파트를 작은 음표들로 써넣었는데 예쁜 작은 손이 충분히 벌어지지 못할 경우에는 성악 파트만을 연주해도 되고 그럴 경우 어떤 음들을 빼도 되는지 훨씬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유행과 교양이, 그리고 젊은 여성들이 오히려 피아노 음악의 수준을 낮춘 것이다. 확실히 교양이란 이름으로 유행되는 예술은 예술의 수준을 높이기보다는 낮추는 데 기여한다. 교양은 바닷속 심해를 표면의 물결무늬만으로 이해하고 표현하고 과시하려는 겉치레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 피아노 교양시대에 세잔은 1866~70년 <피아노를 치는 소녀>를 그렸다. 피아노 치는 소녀의 옆모습과 그 옆에서 뜨개질을 하는 여성의 정면 모습을 함께 담은 그림이다. 르누아르는 그보다 30여 년이 지난 1892년에 <피아노 앞의 두 소녀>를 그렸다. 두 자매가 피아노 앞에 앉고 선 채 다정하게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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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흐흐흐
예술, 성악 혹은 미술. 취미 미술, 취미 미술 성인반, 같은 것들. 그날 가슴 속에서 간신히 졸업한 전문대 졸업장이 펄럭이는 소리를 냈다. 저금, 졸업장, 누군가에게 그런 것들이 어떤 무서움과 조바심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면 슬프면서도 화가 났다. 30대 남자에게 더 이상 대머리는 개그의 소재가 되지 않는다, 는 말을 그저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대머리가 개그의 소재가 되지 않는다는 말로 바꾸어 말하고 싶었을 때쯤 선배는 이곳을 떠났다. 선배는 밖으로 나간다고 말했다. 더 이상 건조한 사무실이 아닌, 밖으로 간다고. 선배는 이번에도 지금의 사무실과는 한 정거장 차이인, 작은 외주 방송사의 자연 다큐 팀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선배가 말한 토레스 델 파이네, 라는 이름이 귓가에 맴돌았다. 토레스 델 파이네, 나는 그 이름을 선배에게서 처음 들어 보았다. 망원역, 상수역, 합정역과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그곳. 선배가 첫 번째로 가게 될 토레스 델 파이네, 거기는 어떤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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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아동청소년문학 고궁 빌라에는 킹콩이 산다
젊었을 때 배운 성악 발성법을 이렇게 요긴하게 써먹을 줄은 성택 씨도 몰랐다. ‘배워서 남 줘? 내가 갖지!’라는 평소 그의 신념처럼 성택 씨는 뭐든 배우는 걸 좋아했고 그 덕분에 재주도 많았다. 이젠 배우지만 말고 가르쳐 보라며 타박하던 미순 씨도 오늘만큼은 엄지손가락을 슬쩍 치켜들었다. 성택 씨의 목소리는 계단을 따라 맨 꼭대기 층인 5층까지 잘 전달되었다. 집 안에 있던 고궁 빌라 사람들이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왔다. 502호 순곤 씨는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뎌 구를 뻔했지만 날렵한 운동신경으로 금방 몸의 중심을 잡았다. 고궁 빌라 뒷산 성곽길을 날다람쥐처럼 오르내려서 별명도 ‘성곽길 날다람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