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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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신은 날고기를 먹는 사람들의 것이다
통성명이란 내 이름을 주고 남의 이름을 받는 건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 그 이름을, 내게 주소서 관 뚜껑에 못 박히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신이여 더는 질문이 없으니 대답을 마시오, 하나님 혹은 아버지 차가운 결말 귀신을 자주 보면 흰 머리가 많이 생기지 검은 머리를 가진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옛말은 귀신이 지어낸 것이다 손전등 불빛이 정신 나간 나방을 닮아가는 공동묘지 사람은 누워있고 비석은 서 있는 이상한 키 높이로 본 세상 이 세상에 날 거라면 에스키모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에스키모는 얼음에서 침묵을 배웠겠지 당신은 왜 이리 떠드는 겁니까, 이 짙은 악몽 속에서 해몽도 할 수 없는 언어로 시를 써야만 했나요? 얼음을 타고 북녘으로 가다가 남쪽으로 가다가 파도의 색이 한번쯤 병색을 보일 때 아, 저게 당신이구나 하면 되는 것을 * 에스키모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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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취미, 삶의 작은 쉼표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것은 나를 맹렬하게 매료시켰다. 저렴한 가격이라는 처음의 목적은 이미 사라졌다. 내가 상상한 가구를 실제로 만지고 싶다는 유혹의 덫에 빠져버린 것이다. 진한 나무 향을 품은 목재와 철물들이 도착하면 작업이 시작된다. 거친 부분들을 간단히 다듬고 조립을 한 후 사포질을 한다. 일명 분노의 사포질이다. 집 안에 날리는 먼지와 손목의 고통으로 가장 힘든 작업이다. 사포질이 끝나고 페인트칠을 한다. 한 번이면 좋겠지만 도색과 건조, 사포질을 두세 번 반복해야 제대로 된 색감이 난다. 마지막으로 일종의 코팅제인 바니시까지 칠해 주면 완성이다. 휴, 겨우 끝났다. 다시는 안 하겠다고 중얼거린다. 내 값진 노동의 가치와 돈을 비교할 수 있겠냐며 자책도 한다. 정말이지 다시는……. 그러나 눈앞에서 반짝거리는 가구는 무엇보다도 매혹적이다. 부드럽게 열리는 문 속에 넉넉한 수납공간이 숨어 있고, 나무 본연의 질감과 색이 어우러져 아름답기까지 한 나만의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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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붉은색을 먹다
차라리 붉은색이 없는 세상이 우리 혜린이한테 더 득이 될지도 몰라요.” “그렇지 않아요.” “아니에요.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색이니 더욱 특별해질 거라고요.” “그래서 더 불행해질지도 몰라요.” 여자와 남자의 논쟁은 끝날 줄을 몰랐다. 한 발짝 물러난 여자가 남자에게 제안했다. “그럼 사람들 머릿속에만 붉은색을 심어 놓는 건 어때요?” 붉은색의 질서와 가치를 사람들에게 일깨워 준다면 자신들 피부색의 가치 또한 높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붉은색이 얼마나 아름다운 색이었는지 사람들이 깨닫게 된다면…….” 중간에 말을 끊은 여자가 생각에 잠겼다. 남자도 곰곰이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결론을 내렸다. 붉은색을 뱉어낼 수 있게 된다면 사람들 머릿속에다만 뱉어내기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끊임없는 연구와 각고의 노력 끝에 여자와 남자는 붉은색을 뱉어내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