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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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김미소 집을 짓다 쓸모없어진 벽돌처럼 엄마는 앉아 있었다 힘껏 내려치지 않은 마음의 균열 나를 괴물이라 놀리는 아이의 이름을 벽에 적고 빨간 줄을 긋는다 완벽한 거미집, 사람을 찌를 수 없으니까 한 사람의 이름을 가두고 조금 웃는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선명해진다 깨진 창문에 붙여놓은 테이프가 이탈한다 검은 봉지 속의 벽돌, 이대로 은폐할 수도 있다 손끝이 닿는 곳에 두고 천장을 응시한다 나는 중얼거린다 방 안 가득 외로운 포자가 떠돌았지만 벽돌은 교감을 모른다 교감 선생님이 잡아당겼던 귓불이 따갑다 벽돌은 가만히 듣는다 슬픔은 가공되지 않아 둔탁하다 아빠가 집을 떠나는 나쁜 꿈이 사라지도록, 수맥이 흐르지 않도록 주먹을 쥔다 듣는 귀가 늘어난 것만 같아 자는 척 했다 연기가 조금 더 늘었다 연극을 사랑할 수 있니, 밤의 역할은 가만히 웅크려 귀를 막는 것 두 손에 마임이 생긴다 울음은 나를 가두는 작은 집 바깥에 슬픈 귀가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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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권혁웅 인디애나 주의 단풍나무들은 17년마다 나이테를 부쩍 키운다 17년 매미가 타고 오를 수 있도록 허리와 배에 힘을 주는 것이다 이제 다 큰 매미들이 졸업식 날 교복을 찢은 아이들마냥 새빨갛게 몰려나온다 줄무늬다람쥐가 탈자처럼 매미들을 골라내도, 너무 많이 먹은 새들이 나는 걸 포기해도 매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5월은 푸르구나, 다 자란 매미들은 수컷만 폭주족이다 매미의 발음근은 소음기를 뗀 오토바이여서 인디애나 주를 미시시피 강까지 떠메고 갈 기세다 환골은 없이 탈태만 하는 그 어린것들을 위해 17년 동안 나무는 수액을 내었다 매미는 나무에 안겨 어른이 되고 사랑을 나누고 그리고 죽는다 열흘 동안의 청춘, 그 다음은 없다 그 집은 나무 위에 지어진 탓에 목관이다 1조 마리가 한꺼번에 비료가 되었으므로 나무들은 17년마다 나이테를 부쩍 늘인다 어린것들 대신에 나이를 먹었으므로 뱃살이 좀 붙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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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양파와 수박의 이중주(二重奏)
사춘기 시절 아들은 ― 가출에서부터 또래끼리 싸움에 이르기까지 ― 한동안 꽤나 애를 먹였던 터였다. 당시 아들을 이해하고 용인하는 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의외로 유아기 시절 기억이었다. 첫걸음마를 시작으로 아장아장 걸으며 넘어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던 일, 퇴근을 하면 방긋방긋 웃으며 제일 먼저 안겨오던 일, 고사리손으로 먹을 것을 입에 넣어 주던 일, 눈만 마주쳐도 꺄르르 꺄르르 웃음을 터트리던 일 등등, 한동안 얼마나 많은 기쁨과 웃음을 선사해 주었던가. 해서 어린 시절 한두 해 웃음과 기쁨을 선사해 준 추억으로 ― 사춘기 시절 애를 태운 말썽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며 ― 마음을 추스렸던 것이다. 아내의 기억 또한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