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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순간> 시, 사물, 언어, 그리고 빛
시인은 사물(事事/物物)을 감각하고 그 감각을 언어로 드러낸다. 사물은 움직이고 변화하면서 흔히 일탈하고 이반하므로, 시인이 감각하는 감각과, 시인이 경험하고 사유한 바인 언어의 사이에서 간극이 발생하고, 더불어서 그 간극을 기록하는 시인의 언어가 시인이 자기 시를 정의한 논리, 즉 시론을 일탈한다. 시론이 시인의 시를 완전하게 기속하지도 못하고, 특별하게 성과적이지도 않는 이유이며, 시는 시편이지 시론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기실 시를 우선적으로 기속하는 것은 당장에서 즉시에 발화하는 언어라는 이야기이다. 이 지점에서 시인은 ‘시’ 그것만의 천진한 자유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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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와 주체와 대상은 여기에 있고, 저기에 있고, 거기에 있고, 어떠하게 있다. 그것이 관계다. 나는, 또는 자아로서, 또는 주체로서, 또는 대상으로서, 또는 여기에, 또는 저기에, 또는 거기에, 또는 서로에게, 서로로서 관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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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치는 나를 숨 막히게 한다. 절대와 시간과 여기의 일치, 극한과 극단과 주제의 일치, 그리고 사물과 언어와 주체의 일치…… 시는 죽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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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것이 때로는 잔인할 수도, 치명적일 수도 있다. 의도적인 단순화 또한 잔인한 짓일 수도, 치명적인 짓일 수도 있다. 그래도 시는 단순하게 쓴다. 그래야 언어에게, 시에게, 그리고 주체에게 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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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길게, 깊게, 숨을 들이쉰 다음에 천천히, 조금씩, 느리게, 내쉬고 내뱉으면서 한 문장을 쓴다, 이때에 한 문장은 한 목숨의 들이쉼과 내쉼이므로 또한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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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혼돈이라고, 불확정이라고, 실패라고 말하면서, 혼돈이 아니고 불확정이 아니고 실패가 아닌 시는 명제에 기속되어 있다고 말을 덧붙이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말할 때조차 혼돈은, 불확정은, 실패는, 시의 중요한 명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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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視點)에 원근이 형성되듯, 사물이 무한하게 전개됨으로써 마침내는 소실하는 어떤 지점을 생각할 수 있다. 그 지점은 수직축의 높은 높이이거나 깊은 깊이일 수 있고, 수평축의 한정이 안 되는 거리이거나 아뜩한 시간일 수 있으며, 세계의 또 다른 축이 작렬하는 일순간일 수도 있다. 그 지점을 일컬어서 극단이라 하자. 그 지점에서 문득 드러나는 어떠한 무엇이 세계의 실체라면, 그것을 일컬어서는 궁극이라 하자. 시는 그렇게 극단일 수 있고, 궁극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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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틈새, 우연과 우연이 접합한 접합선의 한 부분이 벌어져 있는, 실로 우연한 가능성일 수 있다. 그러므로 틈새는 확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완고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의외적이다. 그런 만큼 불안정하고, 또한 불안하다. 그 의외성과 불안정성과 불안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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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정면은 정직하다. 사물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시인이 사물을 적어내는 언어가 정직한 이유다. 사물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시인과 시인의 정면에 있는 사물의 사이에서 빛이 일 듯, 사물의 정면을 적어내는 언어는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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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은 당장에서 즉시에 감각된다. 이때에 사물 즉 감각은 관습이 아니며 감각 즉 언어 또한 언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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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은 낱이고 자체다. 비유로서 감각되는 사물은 없다. 상징으로서 감각되는 사물도 없다. 낱이고 자체인 사물 그것과, 사물을 낱이고 자체로서 감각한 언어가, 시를 짓는 구문에서 비유하는 말을 기피하고 혹은 상징하는 말을 기피한다. 시가 마침내는 비유인 것이고, 혹은 상징인 경우라 하더라도, 내가 시로 쓰는 구문은 그리한다. 덧붙이자. 오직 감각인 것을, 구태여 비유나 상징으로 읽는 언습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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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사물 그대로 감각하고 그 감각을 그대로 옮겨 적는 언어는 섬세하고 치밀하며 예민하다. 이렇게 저렇게 색을 덧칠하여 꾸미고, 굵고 가는 선을 그어서 강조하는 대신에, 사물 자체의 단면만으로 화면 전부를 꽉 채운 화폭과 같다. 사물이 사물 자체로서 그대로 드러난 시, 꾸미지 아니한 시는, 그대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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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은 자체만으로도 기특해서, 일부러 기특한 말을 덧붙이거나, 기특한 모양새로 변형할 필요는 없다. 있으며 움직이고 변화하는 사물 자체를, 있으며 움직이고 변화하는 사물 자체로서 잘 옮겨 적는 것만으로도, 사물의 기특함은 충분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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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 사물은, 낱 사물의 집적인 세계는, 낱 사물로서, 또는 낱 사물의 집적인 세계로서, 그 안에 아이러니, 반어, 비유와 상징, 언어의 조성(調性) 등을 내포한다. 시인은 낱 사물을 낱 사물 자체로서 드러내면서 낱사물에 내포된 위의 것들을 함께 드러내는 방법을 쓸 수도 있고, 사물들을 복합한 세계의 부분이나 전체를 드러내면서 세계의 부분이나 전체에 내포된 위의 것들을 함께 드러내는 방법을 쓸 수도 있다. 시인은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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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 언어는 모든 사물을 시의 ‘주체’, ‘대상’으로서 창조하고 창작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 사물이 구상이든지, 추상이든지, 환상이든지, 가상이든지, 허상이든지, 상상이든지, 또는 기타의 어떤 물상(物象)이든지 관계하지 아니한다. 시의 언어는 그 능력과 기능으로써 온갖 사물을 시의 주체/대상으로서 형상화(形象化)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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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도 낱이며 자체다. 즉 사물이다. 사소한 것, 하찮은 것, 지리멸렬한 것, 잉여처럼 보이는 것, 일시이거나 순간인 것, 지엽이거나 단편인 것, 미세한 것, 형상이 흐린 것, 부스러기인 것, 시시콜콜하고 잡다한것, 스쳐 지나가거나 사라지는 것, 욕망 내지 감각의 세부나 말단에 겨우 잔재하는 미약한 것들, 빗대어서 말하기를 쇄말(triviality)이라고 이르는 것들…… 등등으로서 ‘작은 것’이라고 통칭해도 되는 그것들도 작은 ‘낱’이자 작은 ‘자체’로서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 작은 것들이 비록 작지만 ‘사물’로서 지점과 의미가 있고, 그러므로 시의 주체나 대상으로서 엄존하는 세계에서는 작은 것도 빛이 난다. 또는 작은 것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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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배열을 풍경으로서 쓰는 시가 있다. 서경(敍景)하는 시가 그렇다. 그때에 사물은 쉽게 시각태(視覺態)가 된다. 다른 편에는 사물의 배열을 사물의 존재와 그 존재가 관계하는 시간 내지는 공간으로서 쓰는 시가 있다. 그런 만큼, 사물은 사물 자체이면서 동시에 시공간(時空間)과 관계하는 의미태(意味態)가 된다. 이때에 사물은, 시공간과 존재가 이미 사물에 관계하고 합치한 다음의 현존인 것이므로, 단순한 시각태로서의 의미는 새삼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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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할 점은 사물의 의미를, 사물을 배열하고 정렬하는 방식으로 드러낼 것인가, 또는 잠언이나 경구로써 드러낼 것인가, 망설일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사물의 의미를 잠언이나 경구로써 드러내는 경우에, 그 시에는 수월하게도 ‘말하는 자인즉 우월한 자’ 따위의 오만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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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은 사물을 말하는 완고한 주제 중에서도 중요한 하나다. 이때에 시는 균열, 파열, 기울음, 넘어짐, 묻힘, 닳음, 낡음, 쪼갬, 흩어짐, 잔여, 지나침, 흘러감, 수척함, 부러짐, 부서짐, 오래됨, 순간, 이후, 또는 점철하는 순간들과 그 이후의 여백, 적요, 작아짐, 흐려짐, 지워짐, 사라짐, 빔, 허무 등등 사물이 소멸하는 과정의 마디나, 마디들의 연쇄를 기록한다. 그중 어떤 시에는 소멸이 진행하면서 사물의 한쪽 끝에서부터 확장하여 전면적이 되는 ‘없음’의 과정이 기록되기도 하고, 그중 어떤 시에는 사물이 마침내 없는 시점의 숨 막히는 침묵이 기록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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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멸을 말할 때에 높이는 사라지고 깊이는 묻힌다. 점멸한 것의 윤곽이, 점멸한 것의 잔상이, 그 윤곽과 그 잔상의 언저리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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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물을 접촉할 때에 우리가 감각하는 것은 어떤 사물의 디테일(detail)이다. 디테일의 총체가 어떤 사물에 대한 감각의 총체라면 또한 디테일의 총체는 어떤 사물의 체적〔形態〕일 수 있다는 언급이 그래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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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것은 자꾸 손에 닿고, 먼 것은 손을 뻗쳐서 가리켜도 닿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가까운 것과 먼 것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만지고, 그것을 감각이라고 말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관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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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걸려서 자주 만나면서 빛이 나는 것들이 있다. 가까울수록 빛이 나는 것들 또한 있다. 오래 걸려서 자주 만나면서 가까울수록 더욱 빛이 나는 것들이 그렇다. 서로 닿는 것들이 찬란한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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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는 제 나름의 체적과 무게와 높낮이를 갖고 있다. 문자로 이루어진 문장 또한 그러하다. 문장은 시문의 체적으로서, 무게로서, 높낮이로서 적합하여야 하고, 문자 또한 문장의 체적으로서, 무게로서, 높낮이로서 적합하여야 한다는 말이 되겠다. 유일하고, 유일함으로서 적합(的合)하는, 서로에게 적합한 문장과 문자는 반드시 있다. 이 지점에
서는 문장/문자에 대한 시인의 책임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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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선택된 언어는 그 나름의 미학을 성취한 언어다. 꾸미는 말, 과장하는 말, 교묘하게 지어내는 기술 등이 배제될수록 문장은 정직하고, 언어는 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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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언어이고 진실이다. 그러므로 진실을 기술(記述)하는 기술(技術)은 시를 짓는 방법으로써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 기술이 잔재주〔技巧〕일 필요는 아무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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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를 세지 않고 망설이고, 수를 세지 않고 휘둘러보고, 수를 세지 않고 두리번거리고, 수를 세지 않고 중얼거린 다음에야 시의 첫말은 온다. 망설이면서 망설임의 본성을 알고, 돌아보면서 돌아봄의 본성을 알고, 두리번거리면서 두리번거림의 본성을 알고, 중얼거리면서 중얼거림의 본성을 안 다음에야, 문득 발음을 얻게 되는 한마디 말이 시를 시작하는 첫 말이 되고, 이어지며 정렬하여서 구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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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 하나의 쉼표, 또는 복수인 쉼표를 기호화하는 문법을 생각할 수 있다. 그때에 그 기호는 쉼표 하나를 문득 찍는 의외성일 수도 있고, 복수인 쉼표가 간격을 두고 찍힘으로써 발생하는 쉼표와 쉼표 사이의 밀도, 이완, 흥분과 충돌, 경이일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작성된 문장이 의외성과 당위성의 병치이자, 이어짐과 끊김의 교묘한 결합이며, 들숨과 날숨과 그 사이에 끼인 멎음의 순간적인 배합과 같은 것이라면, 그 문법은 생명의 힘과 언어의 긴장과 시적 고양을 구두점 하나에다 집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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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을 기도하는 시인이 쓰는 언어에는 불합리, 이율(二律), 모순, 균열, 반어와 반전과 비문리(非文理), 불안정 따위들이 내용(內容)한다. 무엇보다 극단이고 불온하다. 그러함에도 중요한 것은, 그런 언어를 나무랄 어떤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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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어떻게 하여야 시가 전복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집중함으로써도, 드러난 사물 그것과, 그 사물에 닿는 감각은 전복적이 될 수 있고, 그런 사물, 그런 감각을 드러내는 언어 또한 전복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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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를 읽으면서는 언어의 본연과 맞대면하는 어떤 시인의 진정성을 만난다. 또는 언어를 길들여온 사람의 관습과 사람에게 길들여온 언어 사이에 벌어져 있을 비좁을 수밖에 없는 간극이나, 언어와 언어가 어긋물림으로써 비롯하는 비좁을 수밖에 없는 틈새기를 전신으로 파고드는, 어떤 시인의 지극한 고통과 맞대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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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묵은 언어, 관습이 된 언어는 오래 걸려서 두터워진, 더께가 들러붙고 굳어서 완고해진, 단단한 껍질과 같다. 그러한 언습을 부수고 나온, 필사적으로 껍질 벗기를 한 언어가 흔히 말이 안 되고, 변형이고, 생소하고, 자극이고, 전율이고, 그래서 더욱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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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언어의, 파편만 나열되고 의미도, 문장도 없는 시, 의미가 없으므로 의미의 언저리에 형성되는 허무도 없고, 문장이 없으므로 문장의 언저리에 형성되는 여백도 없는 시를 나는 부정한다. 그런 시를 부정하는 ‘부정’ 그것조차 시가 되지 아니하는, 부정하는 ‘부정’ 그것의 진정성조차 내재하지 아니한, 파편만인, 또는 파편들만의 집적인 시를 나는 외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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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시각을 빌려서 말하자면, 수직은 쳐다보이고 내려다보이는 점(點)이고, 수평은 바라보이고 건너다보이는 선(線)이다. 점과 선의 단순하며 근원적인 구성이 곧 사물의 기본이며, 그래서 시의 기본이라는 말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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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를 말하면서는 발끝을 내려다보는 버릇이 있다. 직하에 나는 모를 깊이가 있다고 직감하기 때문이다. 하늘을 쳐다볼 때에 “하늘이 높다.”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하늘이 깊다.”라고 말할 수 있는 언어의 능력을 생각한다. 일탈한 내가 비상을 할 수도 있는 높이와 그 높이에 병치(倂置)하는 깊이가 언어 그것인 ‘하늘’에 있는 것이다. 지금은 지평이나 수평의 저 너머를 생각한다. 저 너머까지에 내가 가닿지 못하는 거리가 있겠고, 기실 그 거리는 내가 오래 깊어져도 이르지 못하는, 나로서는 모를 깊이인 것이다. 언어의 능력, 그것이 나는 모를 높이와 나는 모를 거리와 나는 모를 깊이를 나와 병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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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순결하다. 그래서 나는 언어의 처음과 그 이후의 연쇄를 ‘순결’의 다음에다 놓는 배열을 오랫동안 해왔다. 어느 날일는지, 내가 시를 못 쓰게 되는 때에도, 언어는 늘 그러했듯이 순결할 것이다. 그때에 내가 시를 못 쓰게 되는 이유가 있다면, 언어가 ‘불순’해지거나 ‘불결’해져서가 아니고, 다만 내가 깜깜해져버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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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엽이나 토막이 아닐 것. 시늉이 아닐 것. 정의(定義)는 아니되, 집중하고 결정(結晶)한 언어일 것. 개략(槪略)이 아닐 것. 오히려 대강(大綱)일 것. 대부분(大部分)이며, 또한 전부(全部)일 것. 일부가 가리어 있어도 전체로서 완성(完成)한, 확실하게 하나인, 그러면서 단 하나인 시, 그것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