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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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수요와 공급」 외 6편
하지만 사라짐은 오늘이어서, 사람은 텅 비고 모래 덩어리만이 밑바닥을 걷는 것처럼. 높은 곳을 바라볼수록 비는 내리지 않았다. 우리들이 너무 무거웠던 탓인가. 과거에 흩뿌려져 있던 언어의 씨앗들, 오아시스 없는 노란 풍경들. 빛바랜 두 신발로 으스러질 것 같은 바닥에 몸을 의탁할 때. 어제의 사람들의 노래는 유적처럼 피부에 닿았지. 선생님, 지금 우리가 짊어진 것이야말로 족쇄란 말입니다. 역사를 가르치던 선생을 오랜만에 만났다. 그는 미라인 채로 정오 앞에 누워 있었다. 나도 언젠가는. 사라짐이 즐비한 곳에 별들은 나열되어 있다. 고르게 분포된 마름의 온도. 때로는 틀림의 부산물. 여기에 우리가 살았었고. 여기에 우리가 꾸렸던 것은. 때로는 물질이라고 불렀던 친구였겠지. 지금은 손아귀 사이로 흘러내리는 오늘의 기후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모든 것이 꺼져 버렸다면, 모든 것이 뒤집혔다면, 나만이 의미 없이 앉아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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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1 <한밤1> 동재천과 김제인 ; 김제인의 공간 텅 비고 열린 공간. 고요하고 쓸쓸한 달빛 그리고 별빛. 재천의 무릎에 눕혀 있는 제인, 자는지 죽었는지 움직이지 않는다.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의 것 같기도 하고 새의 것 같기도 한 소리. 재천, 추워서인지 손은 떨고 있으나 목소리는 차분하다. 동재천 잘 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 양도 다들 자는데…… (보일듯 말듯 김제인, 움직인다.) 이봐요. 이봐요. 괜찮아요? 이봐요. 제인, 쿨럭거린다. 조명,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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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 눈 속의 근수는 아직도 텅 비고 적막한 백천식당에 있다. 4B 연필을 꼭꼭 눌러 가며 정육면체의 음영을 새겨 넣으며 어서, 빨리, 지나가라고 중얼거리고 있다. 오후 네 시의 괘종시계가 먼 메아리처럼 울린다. 댕 댕 댕 댕 작가소개 / 임성용 경북 김천 출생. 201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맹순이 바당」.2020년 현진건문학상 추천작 수상. 「지하 생활자」. 《문장웹진 2020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