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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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만 원, 봄 봄
만 원, 봄 봄 함순례 봄비 내리는 날이었어요 회의가 끝나고 어느 길을 찾든 欲의 숲에 닿을 수 있는 일이어서 삼겹살 소주로 뒷속을 달래었는데요 오랫동안 핏줄로 흘러온 이름이 바뀐들 그대론들 중심에 묻은 뿌리 쉬이 흔들리겠느니 봄비는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피가 뜨거워 아프고 아파서 차가워진 주름살들, 누구도 자릴 뜨지 못하고 탱크 호프집으로 이어져 밤은 깊어졌구요 그만 일어서는 날 잡아끈 문 시인이 불쑥 바지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 찔러주었어요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고 서울의 불빛은 표정이 살아나 출렁였는데요 종일 내린 봄비가 새순 틔워내는 눈물 아니겠어요 네 번 접혀진 만 원의 주유로 심야버스에 올라앉은 봄 기운, 뼈를 추스르는 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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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화요일은 봄
화요일은 봄 임곤택 화요일이군요, 감은 머리를 벽에 널어 말리는 당신은 며칠 전과는 다른 물기 가끔이 좋겠습니다 누군가 태어나며 세상엔 윤기가 흐르고 기다리는 사람은 오래 기다린 사람 한 번 이상 지나친 사람 글을 배워 아이들은 어디로든 빠져나갑니다 당신 쪽으로 갑니다 넘어져도 달립니다 돌아오는군요 한 번쯤이 좋겠습니다 얼굴은 빛나는 곳 어디에든 얼굴을 비추고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닮지 않은 사람 닮을 수 없는 사람 벽 쪽으로 어깨 돌려 길을 만듭니다 다시 오는군요 눈을 가졌군요 기다리는 사람은 약속 없이 기다린 사람 당신은 며칠 전과는 다른 화요일 서두르는 아이는 돌아보는 아이 화요일이군요 살얼음 낀 미로의 현관 꽃은 무슨 색으로 할까요, 그래요 꽃이 더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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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가는 봄
가는 봄 이병초 독사 대가리같이 꼿꼿할 먹고사리 끊으러 왔다가 누가 다 끊어갔는지 그 꼴도 못 보고 새순 돋는 밤나무 곁에 앉는다 누덕누덕 기웠어도 빛이 새는 그늘을 비껴 산 속으로 뻗어간 길을 짚어 보는데 눈두덩에서 송화가루가 묻어난다 가랑잎들 위에 깔리는 멧새 소리 사이사이로 봄날이 빠져나간다 빛이 새는 망태 같은 그늘을 지나 새똥 깔겨진 바위턱 싸리꽃 무더기를 돌아 헛발질로 길들여진 밭은 숨소리를 벗어나면 햇살에 걸려 파닥거릴 산뽕잎도 눈이 시겠지 멧새 소리를 빠져나가는 봄날은 먹고사리도 잊어먹고 눈두덩이 씀벅거리겠지 돌모댕이에 핀 고사리처럼 목이 가늘어지는 그리움도 가슴에 숭숭 뚫린 구멍을 바람 소리로 메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