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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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갈증
갈증 배용제 서해 어디쯤에서 밀려온 바다가 내 속으로 들어온다 수천의 무덤을 지나고 모든 종류의 뿌리를 지나온 바다가 벌컥벌컥 밀려온다 본디 내 몸이었던 바다, 내가 강물이었다가 짐승이었다가 나무였다가 암컷이 되고 수컷이 되고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고 너의 눈물이 지나간 길로 내 붉은 피가 흘러간다 내가 낡아간 구멍에서 너는 아장아장 걸어 나온다 살아있음도 죽음도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지나가는 길 언제나 바다는 맨 처음 되돌아간다 세상에 소나기가 퍼붓는 동안, 온갖 풍경들이 바다를 향해간다 그 붉디붉은 길을 거침없이 끌고 나를 통과한다 몸의 평원에 신기루가 열리고 핏빛 공포의 무지개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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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흐느낌
흐느낌 배용제 11월의 밤이 오면 마법을 아는 창문들의 시간 툰드라의 음악이 막다른 골목에 닿아 몸으로 오는 순간이 있다 서촌의 전시관들이 서둘러 불을 끄는 고요한 귀들이 북쪽으로 돌아누울 때 차가운 유목의 빛을 끌고 막 당도한 툰드라의 지평선들이 공중에 마구 흩날린다 이상한 방향으로 열리는 창문의 마법에 걸려 환상에 들뜬 누군가는 음악이 되기 위해 쓸모없는 몸을 버려두고 창밖으로 날아오른다 몸으로 태어난 음악 하나가 첫 울음을 터트리자 환청처럼 흔들리는 창문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지평선으로 만들어진 나라 살아 있음이 유목이 되는 곳 타이가와 툰드라의 경계 어디쯤 자작나무의 언 손들이 밤새 뒤척이며 쓰다듬던 꿈과 막막한 새벽빛들이 밤의 창문을 두드리기까지 이미 참혹의 건너온 악보가 되어 빛나는 음악 영혼이 사라진 빈 눈동자에 깃들어 가늘게 울린다 그렇게 창문들은 마법을 풀지 않은 채 긴 밤을 흘려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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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문고리의기원
문고리의 기원 배용제 속삭이듯 말해 볼까 둥글고 검고 친근한 고전적 거짓말에 대해 이것은 건너편의 세계, 그러니까 문고리의 은유에 대해 저녁이란 서로의 없는 건너편에 서서 입술로만 전해진 주문을 외듯 문고리의 호칭을 오독하며 달그락거리는 박자를 놓친 입술이 휘발하는 음표들을 게워낸다 아무도 모르지 월요일과 화요일의 술잔들은 없는 세계를 향해 비워지고 목요일의 길 끝에서 젖은 무덤을 움켜쥐는 방식으로 서로를 건너간다 더듬거릴수록 깊어지는 세계 그제서야 입구를 들킨 우물이 발굴된다 뜨거워지고 더러워지는 샘물을 토해 내는 눈먼 물고기들의 감옥 금요일은 붉은 빛깔의 서적을 펼치지만 여전히 난해한 금요일, 금요일은 휘발하는 음표와 그림자들의 목차 안녕은 모호해지지 불온한 속도만 일제히 자유로운 길 위에서 달아오르는 유일한 저녁의 고전들과 속도처럼 아찔해지는 문고리의 소용돌이에 대해 울면서 말해 볼까 누구도 해독할 수 없는 설화의 줄거리들 없는 문고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