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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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낙원으로 가는 인생
낙원으로 가는 인생 박판식 골목 벽에는 낙서가 가득하였다, 마담k는 하루하루 희망 없는 날을 보냈고 인생이 잘 안 풀리는 이유를 몰랐고 물론 나도 몰랐다 여름은 사람의 겉모양을 보게 하고, 겨울은 사람의 마음을 보게 한다 하늘은 푸르다,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알약들이 목을 넘어가고 나는 꿈속에서 시원하게 군복을 벗었다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너는 죽을 거야 니 무서운 소원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너는 사람대접 못 받을 걸 네 가닥으로 찢어진 마음이 마취에서 풀려나 통증이 밀려왔다 니 아버지는 늙은 탈영병, 어둡고 께름칙한 깨달음을 어린 나에게 주었다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가 이 쉬운 질문 앞에 내가 날마다 엎드려 얼마나 절망하는지 너는 모르고 그렇다고 과장할 필요는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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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서광
서광 박판식 사나이의 얼굴을 더럽히고 있는 것은 겨울을 몰아내는 서광 그러나 지루한 봄 그것은 너무 많고 곡식창고에 볏섬은 비워져 가는데 사나이가 살찌우는 것은 덧없는 과거 쇠약하고 소진하고 덧없는 봄 그것은 너무 많고 사람들의 긍지는 거리를 활보하는데 철로에 귀를 대고 영속성을 의심하는 미래의 사나이 행복한 여자에게 한 손을 뻗고 포플러 숲에 자주 감사하는 허구의 봄 쾌적한 침묵을 위하여 관대한 단념의 사나이는 사계를 버릴 각오조차 하였다 인간에게는 쉽고 봄에게는 어려운 사소한 몇 개의 움직임, 그것을 따라 네 발로 거리를 활보하는 하루, 혹은 일생 날씨에 관하여, 시간에 관하여 인간의 이름을 갖다 붙이는 지루한 봄 그건 너무 순진하고 쓸모없는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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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인생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의 인생
인생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의 인생 박판식 인생은 우리를 씻어 주고 있다 외롭거나 괴로울 때 우리는 허물을 벗고 생명 그 자체로 돌아간다 어떤 인생이 지금 당신을 건져 올리고 당신을 누르는지 궁금하다 인생은 꼬리가 있고 가시가 있고 비늘이 있다 돌로 눌러 놓으면 숨을 헐떡이며 죽은 시늉을 한다 대문 앞에 버려지는 우편물과 죽어가는 전화번호 12각형의 소음으로 시간은 인생을 죽이고 가끔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저쪽 세상을 향하여 두 손을 합장하고 기적은 소량생산이라 아직 희소가치가 있다 인생은 기적적이다 깨물면 사과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비린내가 후추 냄새에 섞여 하늘에서 쏟아진다 나보다 10센티미터쯤 큰 어린 아들이 예수님의 석고상처럼 왼쪽 무릎을 살짝 굽히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과분한 은혜와도 같은 사랑이 내 인생의 차가운 그릇에 넘쳐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