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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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나를 나는
나를 나는 박장 죽지 않았다 핏기가 빠진 지금까지도 어떻게 질까 궁금했지만 시든 수국은 살 수 없었으므로 주삿바늘이 들어간 자국은 까매졌다 의사도 아닌데 사람들은 잘도 알아맞혔다 밤새 유언을 기다렸다 장미허브를 코에 문지른다 왜 숨이 잘 쉬어질까 혼자 찍은 중학교 졸업사진 하객으로 앉아 결혼식을 지켜볼 때 고였다가 사라지는 눈물 어쩌다 한 방울 넘치는 날엔 벤치클리어링처럼 뛰쳐나온다 술도 노래도 싱겁다 머그잔에 입을 맞출 뿐 따뜻함과 뜨거움 사이 언젠가의 나에게 빠짐없이 입술을 내밀고 나는 나를 엘에이갈비를 물에 담근다 저런 붉은 것을 본 적 있다 죽은 뒤 발견된 가계부에 적힌 편지 같은 것 숫자를 적다가 생각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녹으니 정말 살 같다 끓는 물에 데쳐도 핏기가 돈다 입으로 들어가야 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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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우리의 결말
우리의 결말 박장 어깨를 밀치며 내린다 막무가내 막내처럼 비의 전 속력은 어떤 것일까 오리는 구름은 풍선과 그림자는 사진 속 조명이 이쁘다고 말했다 똑같은 것을 선물 받았다 핸드메이드는 비싸다는 말로 들리는데 둥근 정육면체가 소시지처럼 연결돼 있다 우리, 라 이름 짓고 늘어뜨리고 똬리도 만든다 호의는 어떤 모양일까 우의는 고스란히 맞는 것 언젠가 공원에서 본 커다란 개의 꼬리 전기가 흐르면 무엇도 들어 줄 것 같은 표정인데 어떤 선물은 발명에 가깝다는 생각 컬러렌즈를 낀 사람과 대화할 때 다 먹었다고 말했는데 접시에 음식을 덜어 줄 때 알고 싶지 않은 건 누가 자꾸 흘린다 침을 흘리듯 사랑을 흘리듯 방에 들어설 때마다 우리는 자꾸 목에 걸리고 빛을 꿀꺽 하는 느낌 내내 켜져 있을 수도 꺼져 있을 수도 없는데 이것이 관계라면 사람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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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가정법」외 6편
가정법 박장 하늘에서 잠이 쏟아진다 빠짐없이 뭉쳐 죽음을 만든다 냉동실에 이 인분의 죽음이 들어 있다 하물며 내가 누구를 죽일 수 있는 건 아니다 죽음은 각자 떠먹는 것이다 엄마는 입원하던 날도 아버지의 밥을 챙겼다 국과 생선이 놓인 전자레인지에 데울 것인지 삶을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 에어프라이어에 오래 돌려 새카맣게 타 버렸다는 후기를 본 적 있다 건드리면 바스러지는 모독 유통기한이 지난 것도 있다 두 개는 먹어야 팔다리가 뻣뻣해지고 섬망이 나타난다고 한다 없는 것보단 낫다 싶어 삶은 버려도 죽음은 버릴 수 없으니까 봉지를 뜯었을 때 웃음소릴 들었다는 소문이 있다 울음을 들었다는 사람은 없다 죽음은 울 줄 모른다 건너뛰지 않는다 엄마는 병원에서 혼자 마지막을 먹었다 아버지는 찬통 몇 개로 끼니를 떼운다 나는 만약,으로 시작되는 문장을 쓴다 한 봉지 꺼내 토막 썬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볶는다 버섯과 당근을 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