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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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빨래
빨래 박승민 지난 밤 합성세제에 푹 담겼다가 건져진 한 사내가 빨래 줄에 널려 있다. 너무 오래 자갈길을 걸어 말발굽처럼 튀어나온 무릎 올이 풀린 양의 소매 남루가 이력서인 그는 가끔 바람 불 때마다 새털구름이라도 잡을 듯 멀리 날아가 보지만 번번이 제 자리로 돌아오는 저 무음의 반복 바람이 한껏 공기를 밀어 넣지만 한번도 빵처럼 부풀지 못한 生 앞뒤가 꽉 붙은 부대자루가 팔과 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 빨래 줄에 흔들린다. 하루하루 가벼워지고 있다. 하루하루 깨끗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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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수수대궁
수수대궁 박승민 빈 수수대궁 속을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당신을 본다. 긴 뼈 속에서 바람이 뽑아내는 흐린 哭소리가 화장장 연기처럼 번져 나간다. 당신 마음도 그럴 거라고 눈은 다르지만 밤마다 보는 별은 같을 거라고 슬픔도 우리가 슬어놓은 아이라고 겨울창문에다 썼다가 지운다. 지운 글씨 바깥으로만 성에가 피어서 그 아픔, 영영 녹을 것 같지 않은데 아침 햇볕이 창문을 비추자 슬픔의 글자들은 물방울에 녹아 和音처럼 반짝이며 흘러내린다. 당신이 내게 던진 말, 창, 칼 그런 것들도 조금씩 녹아내린다. 빈 수수대궁 속을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가만히 당신의 손 잡고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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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적도 부근 - 길녀에게」 외 6편
작가소개 / 박승민 경북 영주출생. 2007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작품활동. 시집으로 『지붕의 등뼈』 『슬픔을 말리다』 『끝은 끝으로 이어진』, 시를 통한 치유서인 『종이약국』(공저)등이 있음. 제2회 <박영근작품상> 제19회 <가톨릭문학상신인상> 수상 《아르코문학창작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