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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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구석에서
구석에서 박경희 어느 이에게 사기를 당해 밤길 밟아 고향을 떠났던 당숙 누이 스무 살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에 밤길 밟아 달려왔다 조각 난 얼굴 어디에도 없는 눈 엄마를 부를 수 없는 입 마지막 아들의 얼굴은 조각난 누이의 가슴 속에서 조각난 채로 구석에서 무너졌다 구석이 흐느끼다가 구석이 더 구석으로 밀려났다 잘못 디디면 끝도 없이 떨어질 구석에서 누이는 끝없이 떨어졌다 만날 때마다 늘 마지막이었던 아들은 마지막이 되어 되돌아 웃어 줄 얼굴도 없이 저승에서도 찾지 못할 것이라고 밀려난 구석이 가슴을 쥐어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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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엉뚱한 다짐
엉뚱한 다짐 박경희 절에 살 때, 고기가 먹고 싶어 스님 모르게 길을 내려갔다 내려가도 내려가도 길만 나왔다 대숲에 휘파람새 속 모르게 지저귀고 지난겨울 내린 눈에 찢어진 소나무는 가시 이파리로 눈앞을 찔러대고 청단풍 이파리 팔목을 후려쳤다 먼 산 귀신새 소리 좇아 눈 돌리다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절에 있는 동안 고기를 멀리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허기가 마당에 든 바람으로 몰아쳤다 읍내 가는 길은 멀고 언덕은 몇 고개라 다시 절로 돌아오며 다음에는 꼭, 먹을 것이라고 엉뚱한 다짐을 대숲에 고래고래 질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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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먼 산
먼 산 박경희 아파트로 이사한다는 소리를 들었는지 사나흘 밥도 안 먹고 먼 산만 바라보는 개 십 년 한솥밥이면 어슬녘 노을도 쓸어 준다 고개 묻고 시무룩한 모습이 안쓰러워 내 생일에도 끓여 주지 않던 소고기국을 끓여 밥그릇에 넣어 준 어머니도 먼 산이다 갈비뼈 휑하니 바람이 들락거리는 어머니와 개는 한솥밥이다 저물녘 강에 노을빛이다 같이 갈 수 없는 공중의 집이 먼 산에 걸쳐 있다 개장수에게 보내지 못한다고 가면 바로 가마솥으로 간다고 아버지가 아끼던 개라고 서로 마주 보다가 한숨으로 날리는 먼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