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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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당신들의 광장
[문학리뷰(소설)] 당신들의 광장 - 황정은의 「파묘」를 읽고1) 박윤영 황정은의 「파묘」를 읽고, 나는 이순일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일흔둘인 이순일은 할아버지의 묘를 혼자 돌보다 결국 '파묘'를 선택했다. "처가 쪽 산소엔 벌초도 하지 않는 법"이라는(183쪽) 남편의 무시와 "거기 뭐가 있"느냐는(177쪽) 자식들의 무관심에도 몇 십 년간 꿋꿋이 이어 온 일이었다. 북한어에서는 파묘를 '폐묘'라고 한다니, 자기 손으로 조부의 묘를 없앤 것이나 다름이 없다. 대를 이어 그 일을 할 사람이 없었기에 불가피한 일이었다. 할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올릴 때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5년 전,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이순일만큼의 용기도 내지 못했다. 쉰여섯이었던 아빠는 뇌출혈로 6시간 만에 급사했다. 우리 집엔 아들이 없었고 결혼하지 않은 세 딸들만이 유일했다. 아빠가 생전에 매장을 부탁했었다는 말을 전하자 어른들은 난처한 미소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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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누구보다 낯선
[문학리뷰(소설)] 누구보다 낯선 박다솜 1. 우리는 '낯섦'을 경험하기 위해 떠난다. 여행이란, 익숙하지 않은 상황과 사람 속에 나를 던져 넣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은 필히 설레는 감정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 낯설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만들고 불쾌하게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기대한 '낯섦'이 아니다. "회사 일로 영혼이 어둑해지거나 인간에게 자주 실망할 때면 혼자 이국의 낯선 도시를 검색해 보곤(김애란, 「숲속 작은 집」, 《문학동네》 2019 여름호)"하던 은주 역시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녀는 설렘을 기대한 곳에서 불쾌함을 만난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일곱 시간가량 걸리는 나라의 산악도시"의 '숲속 작은 집'에서 은주는 그 사람과 만난다. 그는 은주와 남편 지호가 묵는 숙소를 청소해 주는 메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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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생존 게임의 서글픈 레짐
[문학리뷰(소설)] 생존 게임의 서글픈 레짐 - 최유안, 「거짓말」/ 장강명, 「대기 발령」/ 김유담, 「이완의 자세」 김영삼 1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생존을 위협하는 각종 재난과 사건들을 목도해 왔다. 그 참혹한 서사의 리얼리티가 위협적인 이유는 생명정치 관리 시스템의 파열음들이 현 세계의 풍경과 구조에 앞으로도 고스란히 재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살게 하고, 죽게 내버려두는' 생명정치는 곳곳에서 실패의 신음을 생산하고 있다. 계급, 세대, 지역, 인종, 젠더 등의 뇌관을 건드리면서 작동하는 혐오와 차별의 언어들이 그 증거다. 또한 결혼, 출산, 육아, 취업 등 생의 과정 곳곳에 놓인 높은 문턱은 개인들을 생존과 경쟁의 서바이벌 게임으로 내몰고 있다. 주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모든 경계에 대한 거부와 두려움에서 생산되는 기호들이 곧 현시대 우리 삶의 아비투스이며 기표이며 서글픈 레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