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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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산투르 리듬과 자유의 춤
불안, 슬픔, 욕망, 걱정, 실망감, 좌절, 무기력 등 출처 규명이 어려운 감정의 찌꺼기를 씻어 내는 작업. 구속적 상황에서나 자유로운 상황에서든 언제나 ‘자유’라는 단어를 노예로 만들지 않기다. 한동안 미숙한 자유라도 흉내를 내 봐야겠다. 낙타가 사자 되기는 힘들겠으나 사자가 어린이 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나마 이 책을 통해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초월적 인간형을 생각해 본 것만으로도 부정의 굴레에서 해방이 된 듯하다. 흐린 날, 희뿌연 황사에 가려진 시야와 매캐한 연기에 폐부를 움켜쥔 것 같은 답답함이 사라진 것 같다. 언젠가 크레타섬에 가게 되면, 소설 속 화자가 그려 놓은 풍경을 따라가며 그가 그려 놓은 이미지에 덧칠이라도 해 봐야겠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거침없이 자신을 표현할 용기를 가지며 푸른 바다 위에 구속된 내 감정을 풀어놓고 싶다. 어설픈 붓놀림으로 잘못되거나 휘적거리다 말더라도 푸른 도화지가 되어 준 바다에 걸림돌 없이 그려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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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벽
삶을 지탱하는 건 단단하고 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가늘고 가볍고 얇은 것이라는 것을, 한 오라기 실 같은 이유가 해저에 잠긴 무거운 삶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계절이 반복될수록 깊어 가는 무기력 속에서 깨닫고 있었다. 밭은 화덕처럼 달구어져 있었다. 햇빛이 닿는 곳은 탈 듯이 뜨거웠고 더 이상 열기를 받아낼 수 없는 풀과 나무와 하늘과 땅이 달아오른 몸을 열고 있었다. 아래 논둑에서 무성히 올라온 환삼덩굴이 콩 포기들을 휘감고 있었다. 탁, 탁. 풀은 잘리면서 쇠의 날카로움을 가져갈 것이니 낫의 날은 금방 무뎌질 것이다. 한낮 온도가 삼십 도를 넘어가면 보통의 풀들은 자라지 못하는데 환삼덩굴, 가시박, 칡 같은 넝쿨식물은 오히려 기세를 높였다. 함성을 지르며 성벽을 오르는 군사들처럼 곳곳으로 줄기를 뻗어 관목과 다른 풀들을 칭칭 감고 허공으로 머리를 쳐들었다. 탁, 탁. 가뭄에 질겨진 줄기는 쉽게 끊어지지 않고.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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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여행가방편
그 옷과 함께 너무 익숙한 모든 것들에의 싫증과 짜증, 권태, 무기력 같은 것들도 떨쳐두고 올 수 있길 바라면서. 아끼는 옷과 좋아하는 옷은 그 자체로 에너지가 되므로 반드시 챙긴다. 거기에다 이번엔 연필과 색연필을 더 챙겼다. 그곳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한 블로그에서 본 글 때문이었다. 벼락 같은 원시적인 심판에의 두려움을 다소나마 탕감받아 보려는 원시적인 속셈에서다. 3. 역시 비행기에서는 결코 잠들지 못한다. 덮개 없는 흔들리는 의자에 앉아 바다 위 허공을 까마득히 떠가는 느낌과 싸우며 여행에서 자신의 강점만을 생각하고 의지하는 사람들. 모험심 많고 겁 없고 아무데서나, 아무 때나 잘 자는 이들. 낭만과 설렘 외에는 다른 여행 준비물이 거의 없는 사람들. 그런 이들의 가방은 얼마나 낙관적이고 희망적이며 역동적일 건가만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면서 내내 깨어 있는다. 신발을 한쪽만 신고 나온 듯 마치지 못하고 온 일들을 떠올리기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