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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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명작에서 괴작까지 5] 이 세계에 소모되지 않고
[명작에서 괴작까지 5] 이 세계에 소모되지 않고 정세랑 한참 좋아하던 가수가 갑자기 별로인 것처럼 시들해지거나, 늘 챙겨보던 영화감독의 작품이 치졸해 보이거나, 어릴 때부터 읽어왔던 작가의 책이 너무 작은 세계관을 담고 있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내가 변했든 대상이 변했든 여하튼 무언가가 변해버린 거다. 사람들은 빨리 질려 하고 더 뛰어난 걸 바라고 동시에 익숙함과 새로움이 절묘한 비율로 섞여 있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오래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결국 균형감이 좋은 사람이 아닐까 한다. 최근 작고 아름다운 영화 두 편에서 키아누 리브스의 얼굴을 보았다. 한 편은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였고 다른 한 편은 「헨리스 크라임」이었는데, 이 영화들에서 키아누 리브스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연기를 한다기보다 그냥 거기 프레임 안에 존재한다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이상스러울 정도로 젊어 보이지 않아서 한층 편안해진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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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명작에서 괴작까지 17] 재능이라는 말
[영화 칼럼_명작에서 괴작까지 17] 재능이라는 말 정세랑(소설가) 재능은 어쩐지 불편한 단어다. 사전을 그대로 옮기자면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 개인이 타고난 능력과 훈련에 의하여 획득된 능력을 아울러 이른다’지만, 아무래도 타고난 능력 쪽으로 의미가 기우는 것 같다. talent나 gift를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천부적인 자질이 되기 때문이다. 살면서 몇 번인가 “너같이 재능 있는 애들은 몰라” 하는 공격 비슷한 것을 받은 적이 있다. 예술계 종사자들은 자주 듣는 핀잔이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의 논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하며 재능은 극히 일부의 행운아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삶에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는데 일견 옳은 말처럼 들리지만 마음속 어느 부분에선가 수긍할 수 없다는 외침이 들려온다. 확실히 행운에 좌지우지되는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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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명작에서 괴작까지 13] 진짜에서 가짜까지
[영화 칼럼_명작에서 괴작까지 13] 진짜에서 가짜까지 정세랑(소설가) 그런데 만약 거짓말을 하는 상대가 애인이나, 사기꾼이 아니라 개인이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거대한 집단이라면 어떻게 할까? 이를테면 정부가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거짓말을 한다면 말이다. <화니 걸>이 사실은 ‘퍼니 걸’인 걸 최근에 깨닫고 놀랐다. 놀라움은 놀라움이고 그래도 화니로 발음해야 할 것 같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연기한 여배우 ‘패니’의 독특한 매력은 사십몇 년을 훌쩍 뛰어넘어 마음을 사로잡았고, 오마 샤리프의 기이할 정도로 커다란 동공이 가지는 흡인력은 화질과는 별로 상관없었다. 고전 영화들이 VOD 목록에 가지런히 올라올 때 느끼는 기쁨이란. 더 많이 원한다. 탐욕스럽게 원한다. 조금 우스운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를 더 일찍 봤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연애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