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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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매미
매미 반칠환 갑옷 입은 투구벌레도 방패 든 딱정벌레도 아니다 저렇게 우렁차게 우는 건 말랑한 것들이다 간혹 한두 마리 까치에 채여가기도 하지만 저 여린 놈들은 은둔을 모른다 여름 산의 제왕은 단연 저들이다 간혹 주려 내려온 올빼미도 쫑긋 귀기울이다 발톱을 감춘 채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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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아동청소년문학 「툰드라의 봄」외 6편
웃음 구매 예약 약국에서 눈물을 팔기 시작했다 그럼 곧 웃음 키트도 출시되겠네 난 눈물 대신 헤헤헤 까르르르 웃음을 사야지 가방에 넣어 뒀다가 심심할 때, 울적할 때 꺼내 써야지 환한 미소는 주머니에 넣고 다닐 거야 언제든 쓸 수 있게 귓속에 사는 매미 시골에 다녀온 뒤로 귓속에 매미 한 마리 들어왔다 심심하면 울고 잊을 만하면 울고 며칠째 귓속에 사는 매미 할머니는 뭐 하고 계실까 시원한 에어컨 아래 있어도 친구랑 놀고 있어도 맛있는 치킨 먹을 때도 밈밈밈미ㅡ 미욤미욤미욤미ㅡ 자꾸 운다 그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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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포옹 외 3편
정호승 포옹 허물 나팔꽃 군고구마 굽는 청년 포옹 뼈로 만든 낚시 바늘로 고기잡이하며 평화롭게 살았던 신석기 시대의 한 부부가 여수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한 섬에서 서로 꼭 껴안은 채 뼈만 남은 몸으로 발굴되었다 그들 부부는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사진을 찍자 푸른 하늘 아래 뼈만 남은 알몸을 드러내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수평선 쪽으로 슬며시 모로 돌아눕기도 하고 서로 꼭 껴안은 팔에 더욱더 힘을 주곤 하였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그들이 부끄러워하는 줄 알지 못하고 자꾸 사진만 찍고 돌아가고 부부가 손목에 차고 있던 조가비 장신구만 안타까워 바닷가로 달려가 파도에 몸을 적시고 돌아오곤 하였다 허물 느티나무 둥치에 매미 허물이 붙어 있다 바람이 불어도 꼼짝도 하지 않고 착 달라붙어 있다 나는 허물을 떼려고 손에 힘을 주었다 순간 죽어 있는 줄 알았던 허물이 갑자기 몸에 힘을 주었다 내가 힘을 주면 줄수록 허물의 발이 느티나무에 더 착 달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