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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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서정시인의 윤리학, 타자에게로 가는
중세 마녀재판의 기록을 차용한 시 「감옥-마녀사냥」은 타자가 부재하는, 죽음이 그 자리를 장악한 참혹한 세계를 조명하고 있다. 동일성의 원리로 작동되는 공동체는 타자의 낯섬을 처리할 능력이 없다. 때문에 편의적으로 낯섬은 ‘비정상/광기/악’으로 규정되고 제거된다. 그런데 곤경은 제거된 타자가 아니라 칼자루를 쥔 공동체에게로 되돌아온다. 감옥의 마녀를 제거하고 나자, 공동체는 일률적으로 동일자들의 집합이 되고 그 자체로 고립된 거대한 감옥이 된다. 강경보의 「감옥」연작에서는 고립과 폐쇄에 대한 위기의식이 징후적으로 드러나고 있다.상처받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고립에서 벗어나 교감하며 살아가기 위해 시인 강경보의 사랑법은 기다림으로 변주된다. 그의 기다림에는 내용이 비워져 있다. 시인은 알 수 없는 타자와의 만남을 위해 공백의 자리를 마련해두고 환대의 마음으로 기다린다. “누군가 새벽길 걸어 걸어 안부를 물을 때까지/마른침 삼키며 기다려 보자/내용 없는 슬픔으로 기다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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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미투
마녀사냥. 민이 마녀사냥 당하는 건 시간문제야. 여자 회원들이 더 나서서 민을 성토할걸? 그러고 나면 내 손을 벗어나는 거야. 민은 아예 작살나는 거라고. 안 그래? 그러니 네가 좀 민을 말려 봐. 나는 염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내가 민을 말리면 그날 밤 있었던 일도 없었던 일이 될 수 있다고 믿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말이야, 네게 좋은 일 만들어 본단 말 기억나지? 그러니 괜히 민이하고 부화뇌동해서 일 그르치지 말고. 알겠지? 염은 언제나처럼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내가 냄새나는 먹이를 던져 줘도 허겁지겁 받아먹는 개돼지로 보이냐고 대꾸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답지 않은 일이라고 자제했다. 누가 뭐라 해도 ‘그 사람의 말’일 뿐이라고 여겨라. 깊이 새겨듣지 말고, ‘그런 말’에 끼어들지 마라. 그냥 들어줘라. 그런 아버지의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자칫 발끈할 뻔했다. * 염의 전화를 받고 나자 숲에 버려진 민을 부축하던 ‘그날’의 민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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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아동청소년문학 마녀의 방
나는 언젠가 읽은 중세의 마녀사냥 이야기를 떠올렸다.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역극에 참여했던 아이들 몇이 벌써 마녀의 활약상에 대해서 떠들고 있었다. “역시 마녀야.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 아주 끔찍하게 마무리했어.” “도대체 어떻게 했는데?” 참여하지 않았던 아이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글쎄 막판에 얄미를 꿀통에 빠트리더라고.” “그게 그렇게 끔찍한 거야?” 누군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세희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들어봐. 온몸을 꿀범벅으로 만들어 들판에 묶어 놨어. 처음엔 우리도 뭐 하는 건가 싶었지.” 아이들은 세희의 말에 빨려들어 집중하고 있었다. “알고 봤더니 온갖 벌레들을 끌어들여 먹잇감으로 삼은 거였어.” 이어진 세희의 말에 아이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몸서리쳤다. 나는 화장실 가는 척 아이들 표정을 하나하나 살피며 옆을 지나쳤다. 기분 탓인지 아이들이 나하고 시선도 못 맞추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