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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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나를 나는
나를 나는 박장 죽지 않았다 핏기가 빠진 지금까지도 어떻게 질까 궁금했지만 시든 수국은 살 수 없었으므로 주삿바늘이 들어간 자국은 까매졌다 의사도 아닌데 사람들은 잘도 알아맞혔다 밤새 유언을 기다렸다 장미허브를 코에 문지른다 왜 숨이 잘 쉬어질까 혼자 찍은 중학교 졸업사진 하객으로 앉아 결혼식을 지켜볼 때 고였다가 사라지는 눈물 어쩌다 한 방울 넘치는 날엔 벤치클리어링처럼 뛰쳐나온다 술도 노래도 싱겁다 머그잔에 입을 맞출 뿐 따뜻함과 뜨거움 사이 언젠가의 나에게 빠짐없이 입술을 내밀고 나는 나를 엘에이갈비를 물에 담근다 저런 붉은 것을 본 적 있다 죽은 뒤 발견된 가계부에 적힌 편지 같은 것 숫자를 적다가 생각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녹으니 정말 살 같다 끓는 물에 데쳐도 핏기가 돈다 입으로 들어가야 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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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풍장(風葬)
삶을 잡아둔 흔적이다 몸부림으로 다리의 혈관 눌러 얼마나 절뚝거렸을까 흥겹게 들리는 새소리가 통증이라는 걸 몰랐겠지 옆자리 있던 자동차가 빠져나가며 바람이 일자 매캐한 살 냄새가 들숨으로 새[鳥] 영혼이 들어온다 울먹이던 멍은 심장에 닿아 평온한 안식이 된다 시골집 골목에서 들어설 때의 컹컹거리던 황구 어미 밥그릇까지 뺏는 새끼들 목소리 굵어질 때 동네 형들이 질질 끌고 육교 아래 떨어뜨렸던 목줄 흐르는 냇물 이끼 낀 돌 틈에 말라 버린 붉은 흔적 순종 끝날 때까지 인간의 배반에 몇 번이고 몸 떨던 그을린 육신 찢으며 개 웃음 흘리던 강인한 치아 악물고 살아도 가난 풀지 못해 욕지거리만 쏟아내고 버들가지 잎처럼 늘어난 빚더미는 여름 찌르는 매미 풍장(風葬) 바라보는 시베리아 툰드라 원주민의 눈 눈에 눈물도 자라면 넘쳐흐른다는 걸 알지 못했던 끈 묶여 몇 번을 주저앉아 밥그릇 바라보며 떨던 어깨 조문하려고 차들이 파리처럼 달려들어 칼질한다 한 생명 마지막 뜨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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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이글거리는
두꺼운 안개가 나뭇잎을 땅 쪽으로 조금씩 밀고 있고 나는 세상의 모든 시를 시작하리라 요란한 치장을 하고 문을 나서는 휴일의 모든 창녀처럼 도대체 움직이지 않는 감각의 보푸라기를 일으키는 무너져 내리는 시간의 나선형 계단에서 소름끼치게 너를 다시 만나리라 너의 출렁이는 싱싱한 육체의 밤 무한히 커지며 이지러지고 물방울 돋치는 새벽 뒤통수에 뜬 달 그러나 아주 작은 별 하나도 없다 어찌 자연의 광휘를 노래하리 새들은 모두 어디에 숨었나 이상한 기계들의 숨가쁜 눈빛 아직도 밤하늘을 배회하는 어색한 기쁜 신의 종족들 결코 상이 되지 못하는 어슬렁 배회하는 느낌들 너라고 불러 보는 부름의 짖음의 명확한 끝 밤의 차가운 기운을 쥐어짜는 허리 삔 공간 속에서 투명하게 언어를 움직이고자 하는 불가능한 기획의 막바지 언제나 출발선에 있고 언제나 문 밖에 있는 당신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뜨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