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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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아동청소년문학 등이 간질간질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동화(중단편)] 등이 간질간질 손이랑 아침부터 전쟁이었다. 무조건 학교에 가야 한다고 말하는 엄마와 아파서 학교에 갈 수 없다고 버티는 나는 마치 전쟁터의 적군처럼 대치 중이었다. 아빠는 아직 아프다잖아, 애가 아프면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쉬어야지 무슨 학교에 가,라고 말했다가 핀잔만 듣고 엄마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이건 모두 ‘영어 동화 말하기 대회’ 때문이다. 이번에도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대회 내내 똥만 싸다 왔다. 물론 대상은 지혜가 받았다. ‘어차피 우승은 박지혜’라는 말이 다시 확인되었다. 지혜는 이름부터 ‘지혜’로운 내 절친이다. 유치원 원아 때부터 쭉 1등만 한 친구이다. 지혜는 이길 수 없다. 지혜는 지혜라는 이름처럼 지혜롭고 또 지혜로웠다. 내 친구 지혜는 얄밉도록 모든 걸 지혜롭게 잘했다. 나도 내 이름을 지식이나 박식, 지성이나 다식이라고 지었다면 지혜 못지않게 똑똑하게 살았을 것이다. 이건 순전히 이름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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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아동청소년문학 마녀의 방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동화(중단편)] 마녀의 방 이조은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머뭇거렸다. 백설 공주와 여왕은 다투기 시작했다. ↳나랑 얘 중에 누가 더 예뻐? 지금 우리가 하는 역극(역할극)은 ‘백설 공주와 일곱 마리 괴물’이다. 중학생이 되면서 어울리게 된 커뮤니티다. 학원 시간에 쫓겨 문자나 댓글로 치고받는 게 고작이지만, 스트레스 해소에는 그만이었다. ↳빨리 대답 안 하면 박살 낼 거야. 여왕이 재촉했다. 어쩌지? 거울인 내가 나설 차례였다. 머뭇대는 사이 밖에서 엄마가 불렀다. 이대로 나가 버리면 회원들 원성이 클 텐데……. 그래도 지금 엄마한테 들키면 곤란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쨍그랑. ↳헐. ↳깨진 거울 속으로 뭔가가 보였습니다. 하필이면 해설자가 끼어들어 내 역할을 살려 놨다. 해설자 댓글이 달리자 당황했던 여왕과 백설 공주도 다시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뭐, 좋아. 거울의 유언은 내가 제일 예쁘다는 거였어.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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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아동청소년문학 쓸데없는 짓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동화(중단편)] 쓸데없는 짓 이병승 어느 봄날이었다. 나와 김지현, 진구 이렇게 셋은 학교 앞 놀이터에 모여 햇볕을 쬐고 있었다. 우린 셋 다 학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늘 시간이 많이 남았다. 우리 아빠는 가난한 시인인데 지금까지 학원을 보내 준 적이 한 번도 없다. 공부는 혼자서, 재미를 느끼며 해야 한다는 것이 아빠가 내세우는 그럴듯한 이유지만 실은 가난해서 학원비를 줄 돈이 없기 때문이다. 아빠가 몇 날 며칠 밤을 새워 가며 쓴 시가 잡지에 실리면 쥐꼬리만 한 원고료를 받는다. 돈을 주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아예 원고료를 안 주는 곳도 있다. 가끔 김치나 쌀을 원고료로 받기도 하는데 그럴 때 아빠는 이제 김치 걱정은 덜었다며 히죽히죽 웃는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나는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 김지현이 학원에 다니지 않는 이유는 엄마가 작은 도서관 관장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