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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 수필 너는 왜 웃지 않느냐는 물음들에 대하여
교회에 가면 아버지께선 잘 다린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세상에 가득한 죄악과 인간의 타락, 그 대속 제물로 십자가에서 죄 없이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호소하곤 하셨다. 어린 나는 아직 세상과 인간을 몰랐기에 선과 악의 대쟁투라거나 인간 내면의 원죄, 죄로 기울어지는 경향성 같은 것이 무엇인지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기독교적 세계관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지나며 나의 의식 기저에 깊이 뿌리를 내렸고 나는 중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아마도 세상이란 곳에는 내가 모르는 잘못된 일들이 많이 있나보다 하는 미세한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내가 상관할 문제는 아니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랬다.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자 그 재미있던 친구와의 시답잖은 장난도 시들해지고, 뭔가 가슴 한켠이 텅 비어버린 듯한 공허함이 찾아들었다. 바야흐로 내 인생에도 질풍노도의 사춘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원래 틈틈이 읽는 정도였던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소화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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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 소설 면담기록
주위는 거대한 기둥들, 수천 년의 세월을 간직하며 역사를 양분 삼아서 자랐을, 이제는 그 흐름의 풍파에 금이 가고 빛을 잃은 기둥들이 양 옆으로 수십 개가 나란히 서있고, 드높은 기둥에 받혀진 천장에는 칠이 벗겨진 천장화들, 창조와 몰락, 강림과 대속, 그리고 부활이 그려진, 과거에는 그 자체만으로 광채를 발했겠지만 이제는 어둠에 잠식되어 퇴색한 그림들이 빼곡하였다. 나는 저 천장이 우리를 위에서 덮칠 것만 같았다. 어두운 신전은 조용하고 황량했으며 내부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나는 소녀가 왜 날 이리로 인도하는지 알 수 없었으니, 그런 고민 중에 우리는 성단의 앞에 도달하였다. 이윽고 소녀는 무릎을 꿇더니 눈을 감고, 내게 있어선 기억 저편에서 흐릿하게 스치는 주기도문을 외었고, 나 역시도 그 소녀를 따라 더듬거리며 뻐끔거렸다. 아멘. 소녀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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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 > 시인수첩 시로 읽는 21세기-오늘의 서정과 상상력 두 개의 내밀성
‘나’의 정서로 세상에 베일을 드리우는 것 대신 목소리 없는 것들에게 목소리를 내어주는 것으로, 정서에 의해 사물을 합병하는 대신 세상의 슬픔을 대속代贖하는 것으로 시는 바깥을 안으로 접고 다시 바깥에 곁을 준다. 진은영의 시가 어떤 경우에도 두 번 내밀한 까닭은 그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 구태여 ‘시로 21세기를 읽고자’한다면 내밀성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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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 > 한국소설 한국소설 2014년도 8월호
유금호 책 사진 마사이족 아이들과 2000 문제는 할아버지의 의업을 이어받지 않고, 과실나무를 가꾼 아버지는 본인의 불효를 내가 대속(代贖)해 의사가 되기를 바랐다. 그 갈등의 와 중, 나는 고3 말까지 의과대학 지망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다가, 고개를 젓고 소설가가 되기로 혼자 결심을 했다. 그런데 그 나이에도 소설만 써서는 먹고살기 힘들 것 같아, 한편 국어 선생이 되기로 계획을 세웠다. 좋다. 국립사대가 있는 공주로 가자. 계룡산도 있으니까 도 닦는 기분 으로 소설가가 된 후에 하산하자, 그렇게 결정을 해버렸다. 그런데 입학하고 나자, 4·19 혁명이 일어났다. 이듬해에는 또 5·16이었다. 손아래 남자동생이 죽었고, 어머니는 병으로 쓰러지고, 과수원은 육 지에서 처음 시도했던 귤 재배 실패로 잡초 밭이 되어갔다. 혼돈과 상실 감, 그 외로웠던 좌절의 젊은 날들. 탈출구는 유일하게 소설을 써서 보 상받는 방법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