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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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눈
눈 김경후 너의 등에서 얼어붙은 창문 냄새가 났을 때 나는 너의 등이 되었지 네가 뒤돌아보지 않는 등 만질 수 없는 등 길바닥에 쓰러진 불 꺼진 가로등 그칠까 눈이 그칠까 솟구칠까 눈이? 너의 등에서 짓밟힌 눈사람 냄새가 났을 때 나는 너의 등뼈가 되었지 어둠 속에선 딱딱하지만 가장 붉은 네 심장을 감싸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움츠린 등뼈 그건 세상의 모든 음표로 엮은 너와 나의 새장 하지만 세상 어떤 새도 없는 새장 눈이 내릴까 눈이 그칠까 눈이? 너의 등에서 나는 냄새가 나의 내일보다 달콤했을 때 내가 너의 등뼈가 되었을 때 눈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축축하고 진득한 눈 내리는 밤 다친 짐승의 피입김만 피어오르는 동굴 지금 너의 등엔 눈이 그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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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눈
눈 조정권 아기 예수의 눈동자에서 한없이 풀어놓은 양떼들의 초원을 들여다보는 눈 어깨로 날아와 지저귀는 노란 종다리를 손등으로 날려 보내는 손 저 눈, 저 손으로 시간이 사람을 방목하고 있다. 한없이 풀어놓은 양떼를 불러들이고 하늘 높이 종다리들 모아들이며 나는 너의 눈을 들여다보고 싶고 손을 쥐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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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고양이 눈
[단편소설] 고양이 눈 최정화 여기는 경성의 북쪽에 자리 잡은 구릉 지대로, 위에서 내려다본 모양이 고양이 눈을 닮았다고 해서 묘안정이라고 불린다. 원래는 공동묘지였다고 하는데 안성에서 온 어떤 이가 묘지건 뭐건 상관할 바 없이 일단 몸 누일 곳 찾는 것이 우선이라는 심정으로 움막을 지어 살았다. 오갈 데 없는 몇몇이 더 모여들어 그 옆에 따라 움막을 짓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묘지 전체가 하나의 촌을 이루게 되었다. 근처에 고양이들이 많아 번식기의 울음소리만이 귀에 거슬릴 뿐, 그것도 몇 번 듣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져 버렸다. 집이라고 하기에 영 무색하다. 문 대신 거적을 둘러 출입구를 만들고 한구석에 땔감, 또 한구석에는 물동이가 세간의 전부다. 그래도 부실하나마 내 집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주방도 화장실도 없지만 누울 곳이 있다는 게 어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