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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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빛도 목소리도 없는 그곳에서
[기획특집] 시와 소설로 보는 2011년 명장면 빛도 목소리도 없는 그곳에서 — 한강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 노대원 어떤 책들은 독자에게 함께 앓기를 요청한다. 그리고 다른 어떤 책들은 독자에게 더 깊이 침잠하여, 더 오래 앓도록 간곡히 요청한다. 한강의 소설이 그렇다. 『바람이 분다, 가라』(문학과지성사, 2010)에서 작가는 누군가의 말을 빌려 상처가 나면 피가 멈추지 않는 고래들에 대해 말한 적 있다. 그렇게 그녀의 손에서 생명을 얻은 작중인물들은 모두 불치의 혈우병을 앓는 듯하다. 그들은 상처와 함께 태어나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와 더불어 살아가다 끝내 상처와 함께 어둠의 페이지 속으로 사그라진다. 우리는 안다. 아물지 않는 상처는 죽음으로 닿는 험로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는 또 기어이 알게 된다. 한강의 소설에서 만나게 되는 그 혈흔의 기록은 지독하게 어지럽고 아름다운 무늬가 되어 서서히 번져 나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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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인공지능의 복음서와 묵시록
인공지능의 복음서와 묵시록 ― 듀나의 SF를 ChatGPT와 함께 읽다 노대원 한국 SF 계보에서 듀나라는 나비 효과 2024년은 듀나(DJUNA)가 창작을 시작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근본적으로 듀나의 SF 소설들은 1990년대의 PC통신에 기반을 둔 디지털 문학으로 출발했다. ‘기술적으로 포화된 사회의 문학’(로저 록허스트)1)이라는, SF에 관한 한 정의는 듀나의 SF에도 적절하다. PC통신 기술을 가능하게 한 한국 SF 팬덤의 본격화는 활발한 SF 아마추어 창작의 출현과 궤를 같이한다. 듀나는 자신의 초기작을 “90년대 통신망 문화에서 자연 발생한 잡동사니”2)라고도 표현한다. 여기서 PC통신은 독자가 곧 작가가 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이었다. 듀나가 그간 필명으로 디지털 공간에서 활동해 왔던 것도 디지털 문화의 한 특성으로 볼 수 있다. 박상준은 “사이버 시대의 상징적인 아이덴티티를 즐기고 있는 듯하다.”3)라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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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함께 읽을래]『 사랑이 채우다 』를 읽기 위한 몇 가지 열쇳말
[함께 읽을래] 『 사랑이 채우다 』를 읽기 위한 몇 가지 열쇳말 - 심윤경, 『 사랑이 채우다』(문학동네, 2013) 노대원 우리는 자주 소설의 이야기와 인물에, 그리고 아름다운 문장과 깊은 사유에, 세계에 대한 폭넓은 시야에 감동 받습니다. 여기서 감동이란 말은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의 이야기와 인물에 깊이 공감한 뒤의 정서적 상태를 일컫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듯이, 작가는 신이 아니며, 소설은 무오류 - 무결점의 경전이 아닙니다. 소설은 찬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소설과 논쟁하거나 소설의 인물들이 못 다한 생각과 말들을 독자가 대신 해줄 수도 있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