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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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두 여자의 검지
두 여자의 검지 김형엽 자분자분 비 내리는 추석 저녁 어머니를 따라나선다 백천저수지 위로 아른거리는 숲속요양원 지난봄에 들어간 큰어머니가 둥글게 몸을 말고 누워있다 큰어머니 손을 잡으며 어머니는 왈칵 눈물부터 쏟는다 그때 살포시 겹쳐지는 두 여자의 손가락 어머니 검지를 그대로 닮은 큰어머니의 검지 젊은 날 작두에 뭉그러진 손톱자리가 맞물려 파르르 떨리고 있다 말 한마디 없어도 살아온 내력 다 안다는 듯 주억거리며 오래된 목도장처럼 서로의 몸을 찍는 검지 기억의 행방 잃어버린 그녀를 다시 눕혀 놓고 요양원을 나오자 어느새 비 그친 구름 사이로 떠오른 보름달 속엔 뭉툭한 골다공의 검지 뼈 투명하게 박혀 날 선 어둠의 틈 사이로 잘 마른 볏짚 같은 달빛을 한 줌 한 줌 흩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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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부춘(富春)
부춘(富春)* 김형엽 탐진강 흐르는 덕정교 아래를 바로보기 민망했다 지난해 늦가을 아침 갑자기 강물 휘몰아치듯 닥쳐온 복통 참을 수 없어 부랴부랴 유턴을 했다 차를 가림막처럼 강둑에 바짝 세우고 가장 으슥해 보이는 곳 찾아 허겁지겁 옷을 내렸다 인적은 없어 보였으나 마른 잎들이 후두둑 떨어질 무렵이라 뒤가 서늘하니 따끔거렸다 볼일을 보고 줄행랑치듯 떠나온 그 자리 오월 봄볕이 뚝뚝 떨어지는 날 그냥저냥 잊고 있던 그 자리 봄볕에 홀려 가보았다 하, 양모이불처럼 낙엽을 수북하게 덮어 주었던 자리 노란 애기똥풀이 모락모락 군락을 이루고 이랑이랑 넘치는 빛은 나비들 편에 실어 보내고 있다 내가 그들 살림 조금은 피게 해준 것 같아 그제서야 헛기침하며 우쭐해지려는 찰나 맞은편 강둑으로 경운기 한 대 달려온다 안다 안다 나는 다 안다 경운기 소리 컹컹컹 눈을 부라리며 나를 에워싸듯 깐죽깐죽 달려온다 * 전남 장흥의 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