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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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구원투수
구원투수 김학중 1 구속을 잃고 난 후 그는 구원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2 그가 마운드에 오른다 아무도 환호하지 않는 등판 경기에 흥미를 잃은 사람들은 스타디움을 막 떠나고 있다 하지만 선수들은 이 경기를 끝내야 한다 아직 남은 아웃카운트를 잡아야 한다 감독은 마운드로 올라오는 그에게 돌덩이를 넘기듯, 툭 공을 던져 주고 내려간다 그 행위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듯 주머니에 손을 넣고 불펜으로 내려간다 그는 이상한 투수다 통산성적에 승리가 없는 투수 그러나 패배 앞에서는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오직 패배할 때만 승리하는 투수 그것이 그가 여러 팀을 떠돈 이유다 ─ 전문가들은 우스갯소리로 그를 리그에서 볼을 가장 잘 던지는 투수라고 불렀다 ─ 아무도 구원투수라고 부르지 않는 패전처리 투수 그가 오르면 팀은 그날 더 이상 지지 않는다 경기는 곧 끝날 것이다 그는 몸을 경쾌하게 움직이며 이미 확정된 패배를 향해 던지기 시작한다 이제 남은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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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그는 시간에 압사 당했다
그는 시간에 압사 당했다 김학중 늦은 밤에도 사무실은 환했다 아무도 퇴근하지 못한 회사에서 한 사람이 먼저 앰뷸런스에 실려 퇴사했다 병원 영안실에 들어가서야 퇴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었다 동료들은 아무도 오지 못했다 다만 메신저에 쓸 뿐이다 그는 시간에 압사 당했다고 그러나 잔업은 밀려오고 회사에선 일한 만큼 쉴 수 있는 날이 곧 주어질 것이라고 공지를 보냈다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을 다 잘 알았지만 아무도 회사를 떠나지 못했다 나가면 살다가 압사도 못 당해 퇴사한 사람들 대신에 언제든지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 자리에 앉았다 그는 회사 분위기를 위해 압사로 인한 퇴사 이전에 주기적으로 바뀌었다 누구도 그의 이름을 몰랐으므로 그는 계속 그를 대체했다 회사는 불황과 호황을 빠르게 오고 갔다 사람들은 시간에 압사 당한 동료들을 빠르게 잊어 갔다 오르는 물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급료로 인해 그들의 주름은 더 깊어졌고 남은 이들에게 주어지는 업무시간은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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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예언자 마을
예언자 마을 김학중 예언자의 마을에선 모두가 여자가 되었다가 남자가 되기도 하고 원하면 동물이 되기도 하지 변신을 하면 주민들은 과거와 미래로 여행을 떠났지 예언자 마을의 주민들은 모두 현재의 시력을 잃은 대신 과거와 미래를 얻었거든 무엇이 우리의 시력을 가져갔냐고 그건 우주의 빛이지 어린 시절 한때 나는 여자였지 친구와 함께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었지 우리는 현재란 머리끝까지 치마를 입은 시간이라 불렀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신나게 춤을 추었어 현재는 그래, 펄럭임이거든 누구도 믿지 않는 현재의 비어 있음을 말한다고 해서 예언자의 말을 들어 주는 마을 밖 사람들은 없었으니까 아니 정확히는 그들은 자신들이 현재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듣지 않았던 거야 현재의 치마를 벗고 친구와 나는 각자가 떠나고자 하는 시간으로 떠났지 우리는 서로에게 입던 치마를 선물했어 이걸로 우리는 빈 시간을 나누어 가진 하나의 존재라고 말하며 너는 무엇이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