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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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하늘 거울
하늘 거울 김영석 아주 먼 옛날 하늘이 내려와 푸른 호수가 되고 호수는 올라가 푸른 하늘이 되어 마침내 거울이 생겨났다네 그때부터 거울 속에는 새와 물고기가 함께 노니는 그림자가 늘 어른거린다네 그러나 거울은 제 빈 몸을 씻어 그림자를 말끔히 지우고 지운다네 그림자는 거울을 떠나 살 데가 없고 거울은 그림자 없이 살 수가 없어 샘물 같은 그림자 맑게 지우며 날마다 거울은 새 얼굴로 태어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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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숨바꼭질
숨바꼭질 김영석 꿈을 꾸었다 어느 공터에 버려진 돌멩이 하나가 내 눈빛을 받자 제 속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어 나는 그 돌멩이의 꿈속으로 들어갔다 반쯤 허물어진 빈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숨바꼭질을 하였다 술래가 눈을 감고 하나 둘 헤는 동안 어떤 아이는 오동나무 속으로 들어가 숨고 어떤 아이는 섬돌 속으로 들어가 숨고 어떤 아이는 서까래 속으로 들어가 숨고 나는 쑥부쟁이 뿌리 속으로 들어가 숨었다 그런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술래는 어디 갔는지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이들 소리도 들리지 않고 사위가 고요하고 고요하였다 돌멩이의 꿈속에서 나와 나는 또 꿈을 꾸었다 술래가 되어 아이들을 찾아 헤매는데 오동나무도 섬돌도 보이지 않고 서까래도 쑥부쟁이도 보이지 않고 아이들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 빈 공터를 여기저기 헤지르며 아이들과 풀꽃과 나무 이름을 내가 아는 온갖 이름을 목이 메어 부르고 또 불렀다 메아리도 없이 사위가 고요하였다 공터에 버려진 돌멩이 하나가 이름을 부르다 지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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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이빨
김영석 대리라고. 걔가 요즘 저한테 치근덕거리는데, 지 자랑이 장난이 아니에요. 지가 사장의 비밀을 다 알고 있고, 사장 덕택에 한몫 챙길 거래요. 제가 자꾸 캐물으니까 은근슬쩍 흘리더라고요.” 권재범은 수시로 사장실을 드나드는 양복쟁이 애송이를 떠올렸다. 회사 차를 제 차처럼 쓰고 어디서나 싱글벙글거리는 넉살 좋은 놈이었다. “복잡해서 잘은 몰라요. 사장이 남의 이름으로 건축자재 같은 걸 유통하는 회사를 차렸대요. 돈 같은 건 필요 없대요. 회사 돈을 은행에 넣고 어음을 받은 뒤엔 도로 뺀대요. 그 어음으로 물건을 사서 팔아넘기고 판매 대금을 사무실 금고 안에 넣어 둔대요. 그 새끼가 사장 돈 심부름을 도맡아 해요.” “그게 가능해?” “벌써 한 십억 벌었대요. 사장이 매일 밤 혼자 차를 몰고 그 회사 사무실로 가서 돈을 확인한대요.” “미친놈이군. 쇠고랑 차겠어.” “냅둬요. 어차피 25일이면 빠이빠이예요.” 권재범은 사장이 벌이는 미친 짓을 분석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