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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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얼굴
얼굴 김사이 사람들과 술을 마시다가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내가 그냥 한참을 서성거리다, 그래 서성거리다가 눈에 띈 가위를 들더니 무작정 머리카락을 자른다 듬성듬성 잘려나간 다 잘려지지 않은 날 본다 널 본다 내가 술자리로 돌아가자 사람들이 놀라서 아무 말 없이 쳐다본다 익숙하기는 하지만 나는 늘 처음 보는 사람이다 나에게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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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아버지의 이부자리
아버지의 이부자리 김사이 일 년 넘게 누워 있던 아버지의 이부자리 볕 좋은 곳에 묻고 와서 보니 푸른빛이 가득했네 좋아하던 고기 한 점 물 한 모금 삼키지 못했던 아버지 무슨 힘으로 독주 한 병을 들이켰는지 뱉어내지 않고 꽉 앙다물었다는데 온몸이 파르라니 물들어서 나무 같았네 이부자리에 톡 톡 떨어져 있는 두려움 같은 푸른 자국들 유서를 썼네 이부자리를 둘둘 말아 태우네 뜨거웠으나 외로웠을 아버지의 생을 태우며 더는 세상으로 불러내지 말자 중얼거리네 망각의 강으로 씨앗 하나 띄워 보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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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카타콤바
카타콤바 김사이 막차를 타려고 뛰어가는데 지하도 큼직한 기둥들 사이로 웅크린 돌덩어리들 아니, 인기척을 내는 소름 확 끼치는 거대한 짐승들 있다 순간 가슴 벌렁벌렁거리게 하는 이 고요 카타콤바 내 웃음의 이면이다 노동자도 수입하는 갖출 것 다 갖춘 불빛의 地下 지하의 지하 지하도 없는 지하 살아 있음을 한 끼니로 간청하다가 절망도 없이 잠을 청하는 이곳을 지날 땐 순례자의 마음으로 하라 뼉따구만 남은 이상주의자들도 죄를 고백하며 걸어야 하는 카타콤바 내 등줄기에서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혹처럼 자란다 나를 구역질한다 *지하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