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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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정확하게 말하고 싶다는 욕망
작가소개 / 김나영 2000년생. 2016년도 제12회 문장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자 《문장웹진 2017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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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검독수리
검독수리 김나영 독수리가 미동도 않고 앉아 있다. 저 새는 철장 안으로 거처를 옮겨왔을 때부터 자신이 맹금류임을 조금씩 포기하게 되었을까. 잔뜩 파묻고 있는 양쪽 날개에 하늘을 팽팽하게 제압하던 전투태세라고는 없다. 날개가 있다는 걸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희끗희끗한 깃털은 색 바랜 단벌 신사복 같다. 누우런 부리가 아까부터 물고 있는 것은 철장 안으로 흐르는 게으른 공기이다. 뭉뚱해진 발톱이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딱딱한 바위 덩어리이다, 아니다 사육사가 던져주는 한 덩어리의 비애이다. 나는 아이에게 저 새가 한때는 하늘의 제왕이었다고 저 새가 한 번 날면 아기도 단번에 낚아채간다고 설명해 주지만 아이의 눈은 그걸 믿지 못하는 눈치이다. 저 새는 자기 이름이 독수리라고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철장 안으로 살며시 부는 바람조차 강한 기류로 느끼는지 바람이 불 때마다 두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 제 이름 속에 갇혀있는 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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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서울 발(發), 바그다드 통신
서울 발(發), 바그다드 통신 김나영 바그다드에서 시작된 전운이 밤새 서울 상공까지 밀고 들어왔다. 국경은 그다지 믿을 만한 게 못된다. 아파트 위에서 선회하는 헬리콥터 소리에 잠을 깼다. 내가 못 본 사이 무차별 난사가 있었나 싶다. 총부리 겨누던 목련이 투항하자, 노오랗게 질린 개나리 줄줄이 앞세우고 벚꽃이 스르르 제 이파리를 떨군다. 과장된 몸짓으로 떨고 있는 대추나무 아래 입술이 새파랗게 질린 제비꽃. 더러운 죽음은 싫다, 혀 깨문 진달래들 여기저기서 진저리치며 죽어간다. 집단 자결이 저렇게 아름다워도 되나. 어질어질 피어오르는 연막 사이를 헤치고 겁없이 뛰어나오는 아이들, 무장 해제된 저 얼굴의 미소가 바그다드 아이들의 그것과 닮았다. 참, 그때 그 바그다드 소년은 어떤가. 지금쯤 깁스는 풀었는가. 아이들을 실은 유치원 차가 아파트를 무사히 빠져나간다. 앰뷸런스 몇 대가 경적을 울리며 도로를 질주한다. 안전지대가 자꾸 허물어진다. 이 전쟁이 터무니없이 길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