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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거장
<꽁트> 정거장 김경은 “내가 못살아, 당신하고 못살아!” 찢어질 듯 가느다란 엄마의 고함 소리가 아파트의 4층 복도를 왕왕 울린다. 나는 숨죽인 채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조심스레 발걸음을 떼었다. 어라? 일순 정적에 휩싸였다. 아니다, 그건 정적이 아니었다. 엄마의 목이 멘 소리 없는 절규, 그것이었다. 짧은 한숨을 내쉬고 손잡이를 돌렸다. 환한 형광등 빛이 사납게 눈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짙은 어둠이 깔린 복도에 오래 있어서 그랬는지, 눈앞의 광경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아빠가, 엄마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책상에는 언어영역 문제집이 펼쳐져 있었지만, 내 안의 모든 신경은 방 밖의 거실을 향해 곤두서있었다. 나를 의식해서였는지 엄마의 목소리가 좀 전보단 작아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흥분이 더해진 격앙된 소리가 뚜렷하게 귓전에 닿았다. “그래서, 그 잘난 대기업 때려치우고 앞으로 뭐해먹고 살 건데?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