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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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2014년 AYAF 선정작가 좌담회] 젊은 작가, 그들이 사는 세상
권민자 시인은 시가 쉽게 잘 써지나요? ▶ 권민자 : 저도 시 쓰는 게 어렵습니다. 잘 안 써질 땐 그냥 자요. (웃음) 시뿐만 아니라 공부가 안 될 때도 그렇고 난관에 부딪쳐 생각해야 할 일이 생기면 머리가 혼탁해지거든요. 그럴 땐 붙들고 있어 봐야 소용없잖아요. 오히려 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그래서 저에게 정리할 기회를 준다 생각하고 자는데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도 해결되지 않았던 부분이 해결되는 편이에요. ▶ 신철규 : 저도 시가 안 써질 때 끙끙거리다가 다 포기하고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좋은 구문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어느 정도 방심을 해야만 시가 들어올 자리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럼 권민자 시인은 대개 정신이 맑은 상태에서 시를 쓰는 편인가요. 주로 언제 시를 쓰시죠. ▶ 권민자 : 맑다는 상태가 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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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방
방 권민자 밤과 비슷한 면이 있지 그럴 땐 석탄, 곰팡이, 울타리, 의뭉스러워, 거미, 송곳이라고 해도 상관없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이는 것만 보니까 “못됐어.” “못됐어.” “못됐어.” 반복하는 앵무새의 입을 틀어막는다 가느다랗게 새어 나온다 “못됐어.” 발버둥친다 “못됐어.” 틀어막는다 “못됐어.” 그러므로 나는 禁書다 “안 돼.” “안 돼.” “안 돼.” 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끝없이 이어진 계단으로 내려가서 푹푹 꺼지는 건 죽는다는 뜻 만져 볼래? 열쇠는 필요 없어 말랑말랑해 뱀의 발바닥, 어둠, 어쩔 수 없는 궤짝 같은 그곳에 누워 있는 나의 치열을 이용해 막간을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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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각
각 권민자 정면은 볼품없고 뒷모습은 찬란해 정오처럼 잃은 삼베이고 없는 그림자야 왼쪽으로 돌아서서 오른쪽으로 “이제 어떻게 보이니?” 물어보다 닳고 닳을 때까지 뾰족해진 탑이지 메두사의 머리처럼 셀 수 없을 만큼 잘못되고 싶어 무리해서 말을 나눴지 나누면 나눌수록 절대로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았지 그건 독사에 물려도 죽지 않는 돼지의 이유 같은 것이지 어젯밤 의사들은 지치지 않는 튤립으로 혀를 봉합했는데!(도 불구하고) 지루해서 가스 밸브를 잠그고 냉장고 플러그를 뽑고 아홉 번 죽고 열 번 태어난 고양이의 기분이야 폐활량의 리듬으로 쇠로 만든 구두를 신고 납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춤을 추면서 “이것 봐, 내가 망쳐버린 맹목적!” 여기저기 울음을 벽에 못 박으며 “재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