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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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마른 우물
마른 우물 -폐소공포증 권민경 떨어지기 직전 물방울 떨어지기 직전 좁은 몸의 직전 검고 깊은 것들이 몰려와 밤을 새운다 열이 나는 목덜미로 갇히기 싫은 손들 올라가고 기어 올라가고 남은 것은 주름진 내벽 할퀴면서 내장을 움켜쥐며 떨어지네 나는 이해받을 수가 없어 이해할 수가 없어 좁은 구석에 앉아 밤을 새운다 공간을 무서워하며 나란 구멍을 무서워하며 정수리에 떨어지는 한 방울 몸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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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뒤척이지 말아 줘
뒤척이지 말아 줘 권민경 동생은 너무 아름다워서 태어나지 않았다 영원히 가능성으로 남겨졌다 생일을 겪은 난 여러 개의 종기로 부풀었다 고약을 붙이고 잠든 밤 단칸방에 울리는 잠꼬대 언니들은 신의 허리띠를 찾았지만 도대체 신이 왜 옷을 입는 걸까 묻고파도 나에게서 멀리 있다 깨우면 신경질을 낼 자매들 나는 똑바로 누워 태어나지 않은 것들을 생각했다 내가 때릴 꿀밤 뺏어 먹을 쭈쭈바 흉측한 별명과 아름다운 동생 그가 태어나지 않아 미운 것은 내가 다 가졌다 엉터리 처방들은 밤새 내 주윌 맴돌고 종기가 아파서 똑바로 누워 있을 뿐 모든 가능성이 눈을 끔뻑이다 이불을 뒤집어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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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새해
새해 권민경 어떤 사람의 해가 뜨는 동안 어떤 사람의 해는 진다 믿기지 않아 태어난 진 너무 오래되었고 죽을 나를 나는 모르고 시작과 끝은 외부의 힘에 의해 결정되는데 자전 공전 심술 난 이공계생 인생의 목표가 겨우 교수라니 넘 시시하지 않니? 깔깔 웃고 흩어진다 심술 난 수료자들 동짓날 가장 사랑하는 교수님께 편질 쓴다 선생님 선생님 때문에 시인이 되었습니다 시인 되었? 습니다 겨울의 달처럼 떠 있는데 언제 지는 건지 다시 떠야 하는지 좀처럼 알 수가 없습니다 교수님도 모를 것이다 아는 척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뭘 믿어야 하지? 다 믿기질 않는데 해가 뜨고 진다는 것도 아기가 죽고 신이 있다는 것도 엄마아빠의 자식이며 나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게 내 영혼이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