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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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아름다운 남자
그들에게 혹시 일본인이냐고 묻고는 광복절 이벤트로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에게 직접 만든 브라우니를 선물로 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는 절차상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여권을 보여 달라고 했다. 내가 영어로 통역하자 레이코는 여권을 호텔에서 가지고 오지 않았다며 토모미에게 대신 보여주라고 했다. 토모미는 내 눈치를 보더니 가방에서 조심스레 여권을 꺼냈다. 여권을 본 점원은 죄송하다며 여성만 해당된다고 했다. 얼굴을 붉히는 토모미를 보며 당황한 표정으로 점원에게 장난하느냐고 물었다. 점원이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하자 나는 그의 손에서 여권을 뺐다시피 해 펼쳐보았다. 아뿔싸, 토모미는 정말 남자였다. 성별 란에 F(Female) 대신 나와 같은 M(Male)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사진도 지금의 토모미와는 달리 짧은 샤기 컷을 한 예쁘장한 사내였다. 순간 ‘앨빈’이란 내 이름처럼 글로벌 호구가 된 듯 불쾌하고 절망적인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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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전쟁의 비극과 완성되지 않은 애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되지 못한 나라에서 30년을, 해방 후에는 북에 가족을 두고 이산가족으로 30년을 산 그는 해방 30주년을 맞는 광복절 아침,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 지 한 달 남짓,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몸에 달라붙어 있던 공포와 억압의 손아귀를 떨쳐버리지 못한 채 돌연 뇌출혈로 쓰러져 죽음을 맞이한다. 그 공포와 억압의 원인은 1972년에 제정된 사회안전법이었다. 유신체제 반대와 베트남 전쟁의 종결로 위기에 몰리던 박정희 체제는 연이은 긴급조치 선포와 사회안전법 등의 제정을 통해 소위 사상범들에 대한 거의 무제한의 감시와 처벌이 가능하도록 했고, 이섭은 꼼짝없이 그 올가미에 걸린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이섭의 낡은 책상에는 스물두 장 셋째 줄까지 쓴 미완의, 그 스스로 《유령의 시간》으로 이름 붙인 자서전이 남아 있었다. 지형은 아버지가 남긴 미완의 자서전을 보며 언젠가 자신이 완성하리라 몰래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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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이스모스
열녀문을 지나 내리막에서는 맨 앞에 달릴 것이고, 상점들의 거리를 지나 도개집 삼거리에서 길을 꺾으면, 사람들이 국민학교에서 내려다보며 환호성을 지를 것이며, 계단을 올라 교문을 들어서면, 운동장의 시선과 박수가 모조리 그에게 향할 것이고, 황익수는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은 채 오른손을 흔들며 트랙을 돌아 구령대를 지날 것이며, 그때 다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올 것이고, 황익수는 박수가 깔리는 트랙을 달려 결승선을 통과할 것이며, 그 순간 총소리가 땅울림을 할 것이고, 파르락대는 만국기들의 박수와 함께 ‘광복절 기념 면민 체육대회’는 막을 내릴 것이다. 섬사람들 누구나 알고 있는 마라톤 종목의 각본이다. 15) 모든 속력을 다 낼. 8 읍에 갔다온다 했다는 누이가 닷새가 지나도록 안 돌아오자 진욱은 무작정 뱃머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