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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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순애보
순애보 곽효환 첫 시집을 내고 더는 붙잡을 수 없어 가슴 한켠에 오랫동안 담아두었던 사랑했던 사람과 풍경을 강물에 흘려보냈습니다 그래도 끝내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은 그냥 남겨두었습니다 그 후로 시가, 시 쓰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두려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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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무량사에서
무량사에서 곽효환 해질녘 종소리 들리거든 만수산 자락을 가득히 메운 무량사 저녁 예불 종소리 서른세 번 헤아릴 수 없이 깊고 여운 길거든 차마 떠나지 못한다 하네 산사의 종두승 당목을 밀어 울린 종소리 산자락을 붉게 물들이고 아직 내려놓지 못한 마음의 그늘 남겨 두고는 산문(山門) 밖으로 나서지 못한다 하네 패랭이 쓰고 미간을 찌푸린 옛사람 청한당 툇마루에 비스듬히 앉아 늙은 느티나무 가지 끝에 걸린 더는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시름을 다시 이슬에 재우는 해거름 나, 이층집 극락전 마당 허리 굽은 소나무 빈 그늘에 들어 반듯한 오층석탑 옆에 삐뚤빼뚤한 돌탑 하나 세웠다 허무네 허물었다 다시 세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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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물의 언덕
물의 언덕 곽효환 자궁을 닮은 거대한 호수 그러나 그 위에 세운 고대 도시 아스텍의 기억은 물의 흔적을 잃어버린 물의 언덕 위에 있다 몇 백만 년 전 커다란 양철독수리가 하늘 위를 빙빙 배회하고 그 뱃속에서 붉은 고원으로 쏟아져 나온 언어 이전의 삶을 산 사라진 사람들 바람의 방향을 따라 물의 비탈을 따라 산 밑의 마을로 더 큰 마을로 작은 도시로 큰 도시로 더 큰 도시로 갔다가 마침내 다시 물의 언덕 위의 신전으로 돌아오다 어디일까 수십억 광년의 침묵이 고였다가 맨 처음 물로 흐른 물의 언덕은 그 기억의 형해만 남은 물의 신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