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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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감정수업
감정수업 공화순 “언어는 어떤 언어나 고요한 자리에 놓고 위하기만 하는 미술품이 아니다”라고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글이 생각난다. 그동안 너무 오래 잊고 살아온 이 말은 문득, 내 언어의 표현에 의문을 가져다준다. 늘 속에 가두고 밖으로 끌어내지 못한 숱한 내 감정의 말들이 밖에서 소비되는 대신 안에서 곪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딸애의 병원에 동행하여 진료실에 들어갔을 때 통증의 정도를 10단계로 나눠 표정과 함께 구분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통증이 어느 정도인가요? 아주 조금, 이 만큼?” 조절 레버를 움직이며 의사는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환자에게 묻는다. 과연 통증의 정도를 정확히 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통증의 단계를 몇 단계로 말할 수 있다면 내 감정의 단계도 말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뒤미처 들었다. 그동안 나는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고, 많이 감추며 살아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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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상처가 주는 울림」외 1편
상처가 주는 울림 공화순 페북을 끊은 지 서너 달이 지났다. 가끔 궁금하고 친구요청 알림이 뜨면 어쩌다 휙 눈팅을 하게 된다. 그러다 낯익은 사람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왜 사람들은 오래된 상처를 쉬이 털어버리지 못할까? 아니, 상처는 왜 쉬이 아물지 못하는 것일까. 나도 어릴 적 실수로 정강이에 깊은 상처를 얻었다. 일곱 살 즈음의 일이다. 안마당에 무를 담아놓은 고무 대야가 하필 어린 계집아이 눈에 띄었다. 대야 안에 가득한 무와 함께 커다란 부엌칼도 눈에 확 들어온 건 비극의 서막이었다. 고무 대야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손으로 커다란 칼을 집어 들었다. 무를 잘라보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무를 힘껏 내리쳤지만, 힘에 부쳤다. 칼은 무에 박혔고 얼마간 실랑이를 벌이다가 있는 힘을 다해 칼을 뽑았을 땐 순식간에 칼끝이 정강이를 깊이 도려내고 바닥에 떨어진 뒤였다. 눈 깜짝할 새 정강이 살점이 파이고 하얀 뼈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