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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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사랑이라는 『잔치(Symposium)』
결국 그는 풍요와 결핍, 지식과 무지, 신과 인간 ‘사이’에 있다. 에로스의 구현인 소크라테스가 반인반수의 신화적 괴물로 묘사되어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철학자들 역시 지식과 무지 사이에서 지식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지혜로운 자는 그 결핍 없음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지식을 욕망하지 않고 무지한 자들 역시 뭔가를 결여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에 지식을 욕망하지 않는다(204a). 대립항들 모두를 부정하는 사이 존재, 변화를 초래하는 힘이나 작용으로서의 에로스가 생성과 소멸을 넘어선 단일 형상으로 물신화될 때 판타지가 생성된다. 그 자체로 문제적이었던 에로스는 사이 존재가 갖는 모호성을 상실한 채 아름다움 자체로 승화되어 버린다. 디오티마의 이야기 속에서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 안에서의 출산’(206b)으로 정의되는데, 출산이란 가사적인 것이 불사적인 것에 참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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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대구 차방책방(1회)
프로그래밍 되어 결핍 없이 살아가게 되면 재미도 발전도 없을 것 같아요. 이재진 : 우리는 결핍이 있기 때문에 행복이나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결핍 자체가 없다면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것 같아요. 신해리 : 결핍이 있고 불편한 것이 있어서 생각을 하고 발전하고 아이디어가 생기겠죠? 과학기술이 어떻게 발전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결핍을 통해서 감정을 느끼고 교류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인간 본질의 특성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생각해요. 사회자 : 과학의 발달의 이면인 것 같네요. 미래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현실의 문제나 구조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인간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따뜻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느꼈나요? 신해리 : 저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가 그런 의미에서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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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아가페 ― ‘고통 받는 신’의 사랑
결핍 없는 실체가 주체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중지시킬 때 사랑이 발생하는 것이다. 초월적 무관심은 텅 빈 사랑의 공간이 되어 인간 속에 삽입된다. 외재적 차이가 내재적 분열로 바뀌는 것이다. 결핍된 주체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무화시켰던 신은 인간이 지배할 수 없는 빈 공간으로 인간 속에 기입된다. 신이 스스로를 비워 인간이 되는 사건, 그러나 아가페적 사랑은 신과 인간 모두를 결핍시킨다. 체스터턴의 말대로 기독교는 “신이 한순간 무신론자가 되는” 유일한 종교다.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되는 주체인 예수가 ‘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치면서 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중지시키는 ‘순간’, 신의 무력함이 드러난다. 인간이 되어버린 신은 그러나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되어버린 신이 인간이 지배할 수 없는 잉여물, 빈 공간으로 인간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