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문장(0)
글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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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 수필 의사소통
"그는, 거리조절 과정에서 너무나 서툴렀기 때문에 주위에 사람들이 머물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지. 거리조절에 능숙한 사람은 매우 드물지만, 아주 심각하게 거리조절을 못하는 경우. 그래,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 그 사람은 결국, 상처를 어루만져 줄 사람을 만나지 못했어.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사람이 오지 않아서, 상처가 곪아 버렸는지도 몰라. 사람은, 결국 사람에 의해서 살아가고, 사람에 의해서 상처를 입어." 보영은 이번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다. "오해의 반대말이 뭔 줄 아니?" "……이해." "그래, 오해의 반대말은 이해다. 오해에서 이해로 변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다. 의사소통. 그리고 의사소통은 언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말을 안 한다는 것은, 무시한다는 뜻이야. 그런 뜻이 아니면 그런 뜻이 아니다, 아니면 생각할 시간을 달라, 아니면 모르겠다, 확실하게 말해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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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 감상&비평 거리조절 - 책<훌훌>과 드라마<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보고
“ 너의 세계가 사라졌다면 그 애의 세계로 가.” 그 말을 듣고 너의 세계로 가 너를 만났지만 내게 돌아오는 것은 너의 차가운 눈빛과 가시 달린 말들이였다. 그리고 알았다 펜싱선수인 내가 왜 펜싱을 못하는지. “펜싱에서 제일 중요한게 상대방과 거리 조절이거든 내가 지금 그걸 못하네. 너무 많이 기대했다 고유림한테.” 이 대사는 그해 우리는에 이어 내가 요즘 푹 빠진 <스물다섯 스물하나> 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이다. 주인공인 펜싱선수 나희도는 자신과 같은 나이의 펜싱 금메달리스트인 고유림을 너무 좋아해 고유림이 있는 학교로 전학까지 간다. 너무 팬인 마음에 고유림에게 잘해주며 자신이 팬인것을 알렸지만 고유림의 반응은 차갑지 못해 날카로웠고 그로 인해 큰 상처를 받게 된다. 나희도가 상처를 받은 이유는 앞에 대사에서 알수 있다시피 고유림에게 큰 기대를 가지고 거리를 너무 가까이하며 거리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 책 속의 유리 또한 거리조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유리는 자신을 입양하고 버린 엄마의 아빠 즉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있지만 유리는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어떤 위태로운 기대나 상처가 되는 말, 애정도 없는 일종의 안전장치’ 라고 말한다. 그만큼 유리와 할아버지의 거리는 멀었다. 유리가 할아버지와의 거리를 좁히지 못했던 이유는 나중에 올 슬픔을 겪기 싫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할아버지는 연세가 있으시고 그만큼 건강이 좋지 않았기에 돌아가시는 날이 온다면 그 슬픔은 말로 못할만큼 힘들것이기 때문이다.유리가 고민한 것은 할아버지와의 거리뿐 만이 아니였다.자신을 버린 엄마 서정희씨의 친아들인 남동생 연우와의 거리이다. 연우와 만나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그들의 거리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하지만 연우의 친아빠를 찾게 되면 떠날 연우에게 마음을 열어도 될지 거리를 두어야 할지 유리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사람과의 거리란 참 까탈스러운 것 같다. 거리를 멀리 하면 많이 외롭지만 상처를 받지 않는다.그렇다고 거리를 가까이 하면 외롭진 않지만 그에 따른 상처를 받게 된다. 나도 친구와 거리조절에 실패해 상처를 받은 적이 있어 나에게 거리조절이란 풀어야할 너무 어려운 숙제 이다. ‘훌훌' 이라는 책 제목과 표지가 상쾌하고 따뜻한 느낌이라 포근한 느낌의 스토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 유리가 할아버지와 단둘이 산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다정한 할아버지와 유리의 화목한 모습을 떠올렸다.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것이었다. 현실은 서로에게 용건만 말하는 비즈니스 관계 같았다. 하지만 이건 약과에 불과했고 뒤에 나오는 펜트하우스 급 막장들은 내 추측들을 깨부수고 있었다. 엄마 서정희씨가 죽었고,그 죽음은 연우와 관련되어 사고가 아닐수도 있다고 하며 말이다. 내가 생각한 내용과는 많이 달라 당황했지만 그만큼 책에 더 빠져들었던 것 같다. 책 속에선 끝까지 유리의 엄마 서정희를 ‘엄마 서정희씨' 라고 부른다. 엄마라는 단어에선 다정함이 묻어나지만 그 뒤에 ‘서정희씨' 에선 딱딱하게 남을 부르는 것 같았다. 들어만봐도 반대되는 단어 조합이였다.난 이걸보고 엄마로서의 삶과 서정희로서의 삶 두가지의 삶을 의미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나도 예전에 엄마의 연락처 이름을 박미영 엄마 라고 저장해 놨던 적이 있다. 그 이유는 ‘엄마도 누구의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이름으로도 살고싶을 것이다.' 라는 걸 어디선가 본 뒤로였다. 하지만 막상 그걸 본 엄마는 남도 아니고 그게 뭐냐며 서운해 하는 것 같아 이것에 대해 설명도 못하고 바꾼기억이 있다.서정희씨는 유리를 입양해 엄마로서 잘해보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서정희로서의 삶도 망가져 갔다. 엄마란 참 힘든 것 같다. 엄마로서의 삶 자신의 삶 두 마리 토끼 둘다 잡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의미에서 두마리토끼 모두 잡은 우리 엄마가 너무 대단해보였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나희도는 옛날부터 서로에게 힘이 되었던 친구에게 고유림으로 부터 상처를 받은 일에 대해 말하며 위로를 받는다. 나희도가 "그래도 너와의 거리 조절은 성공인가봐" 라고 말하자그에 친구는 “우리 사이는 거리가 없어. 그래서 조절할 필요도 없지.” 라고 말한다. 난 이말이 가장 심오했던 것 같다. 모든 사람과의 사이에는 거리가 존재하는데 ‘거리가 없다'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내가 생각한 ‘거리가 없다’의 뜻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 즉 하나가 되었을 때를 말한게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가족과의 사이에도 거리가 없는 것 같다. 서로에게 없으면 안될 산소같은 존재가 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서로를 향한 예의와 배려가 담긴 거리가 사라졌다는 것은 아니다 . 우리는 누구의 딸, 누구의 엄마이기 전에 존중받아야할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