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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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황금동의 죽음
수의사와 얼굴이 똑같은 강지수 나타난다. 강지수, 황금동의 유모차를 잡는다. 지수야, 너 7반이지. 영서3반 강지수? 지수너 돈 필요하지? 영서뭐? 지수다 들었어. (고갯짓으로 병원 가리키며) 저기 우리 병원이야. 강지수 동물병원. 영서아. 황금동(올려다보며) 어쩐지 좀 사는 애다 했다. 눈 코 입 수술을 안 한 데가 없어. 자연단칸방에 병 걸린 개랑 사는 년이 나를 이렇게 무시하네. 아씨 짜증나. 너 내가 그동안 어울려 주니까 친군 줄 알고 기어올랐냐? 지수너, 석자연이랑 사이 안 좋대매? 영서걔 내 친구야. 지수친구는 개뿔. 너 에이즈라고 학교에 소문 퍼뜨렸다던데? 영서……. 지수너 에이즈 안 걸렸다는 것쯤은 알아. 그년이 구라까고 댕긴 거 전교생이 다 아니까 걱정 마. 영서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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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조우
조우 강지수 앉은키가 작은 사람. 그는 돌무덤에 기대어 앉아 있다. 멀리서 보면 그도 하나의 돌멩이 같다. 뒷산 언저리에서 비에 젖은 나무 냄새가 넘어온다. 앉은키가 작은 사람. 그는 지난 밤 꿈을 떠올리고 있다. 꿈에서 그는 영원히 죽지 않는 까마귀를 보았다. 까마귀는 나무의 정수리에 앉아 있다가 바람이 불어오면 날숨이 물길을 뚫고 흐르듯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았다. 그렇게 마을을, 도시를, 나라를, 대륙을 넘어 털 색깔이 다른 까마귀와 날갯죽지를 맞닿았다. 앉은키가 작은 사람. 그는 생경한 촉감을 느끼며 몸통을 부르르 떨었다. 지리학을 전공한 금발의 까마귀는 그가 나고 자란 고장의 역사를 들려주었다. 전통 의복과 제철 요리를 소개해 주었고, 어설프게 브이를 그리는 그를 카메라로 찍어 주었고, 그가 떠나갈 때 손바닥과 손바닥을 맞닿았다. 앉은키가 작은 사람. 그는 꿈에서도 자기가 우는 것을 알았다. 돌무덤 맨 꼭대기에 있는 돌멩이는 누가 올려 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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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공배
공배 강지수 한 다큐멘터리의 보조 취재원으로 일했을 때였다. 다큐멘터리 주제는 노인 고독사였다. 피디를 꿈꾸던 나는 버스 요금도 충당할 수 없는 활동비를 받고 그해 여름 동안 바쁘게 돌아다녔다. 쪽방이나 낡은 빌라촌을 기웃거리며 이야기를 주워 담는 게 나의 일이었다. 빈방에서는 식은 라면 냄새가 났고 비어 있지 않은 방에서는 뜨거운 라면 냄새가 났다. 메모를 하고 녹화 버튼을 누를 때마다 나는 이 고된 작업이 나의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해주리라고, 이야기들이 모이면 더 큰 이야기가 되는 법이라고, 연신 땀에 전 티셔츠를 펄럭이며 생각하곤 했다. 그날은 며칠째 이어지던 무더위가 절정에 이른 날이었다. 나는 다음 취재지로 이동하고 있었다. 동네를 가로지르는 하천 옆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우연히 다리 아래 그늘에서 바둑 두는 노인들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