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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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노을 외 1편
《문장웹진》이 주목한 2012년 젊은 시인들 성동혁 노을 살인자들의 마을에 과수원이 생겼다 살인자가 살인자를 죽이고 산 살인자가 살인자를 죽인 살인자를 죽이고 엉킨 가지들은 던져 놓은 그물 같았다 석류가 웃돌았네 석류를 따먹으며 살인자들만 부르는 노래를 엿들은 바람 과수원을 나올 때 팔이 없어진 바람 석류를 만지고 돌아오는 길엔 모든 것에 살기가 느껴졌다 과수원의 박동이 짐승처럼 움직였다 작은 짐승에게 무거운 돌을 던지며 과수원과 가까워졌다 명절이면 텅 빈 마을에 석류가 웃돌았다 명절이 지나고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마을엔 식물을 키우며 난폭하게 늙어 가는 하늘이 있었다 액자에 산 사람을 담아 갔다 그림자 어젯밤엔 아편밭을 걸었다 쟁반 위에 램프를 쌓아 둔다 하얀 깃털이 늘어나는 새벽 파란 눈의 선교사가 내게 기도를 하고 갔다 그날 뒤로 나의 피아노 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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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모형 외 1편
2012 《문장웹진》이 주목한 2012년 젊은 시인들 유계영 모형 나의 기분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완전히 쫓겨난 어둠에 관한 이야기 상자는 무언가 담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지고도 비우는 일에만 계속 쓰였듯 이 방의 전개도는 거대한 착각의 모양을 본떴다 네가 나누어 놓은 이목구비가 마음에 들 리 없다 남들이 다 모를 때 내가 갖게 될 노인의 얼굴을 이미 알고 있었던 나는 간단히는 죽지 않을 자신이 있다 기분에 비해 너무 작은 입으로 무슨 말을 남길 수 있었을까 잘 죽지 않는 이 기분을 천천히 바뀌는 표정이 보여준다 물구나무 선 망령의 손바닥처럼 보드랍게, 보드랍게 표현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자의 측면들이 검게 물들어 갈 시간을 내가 경험으로 알아보듯이 봉제선 안으로 꼭꼭 접어 둔 그림자만이 나의 유일한 의지라면 이런 예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지그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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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웅덩이 외 1편
《문장웹진》이 주목한 2012년 젊은 시인들 김성태 웅덩이 웅덩이에 발이 빠졌다. 걸을수록 웅덩이가 늘어난다. 나는 늘 하나의 길을 걷지만 너는 늘 삽을 들고 함정을 파기에 내가 딛는 발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다. 웅덩이에서 빠져나오기 바빠서 나는 지속된다. 완전히 빠져 보지 못한 사람은 별들이 묻혀 있는 웜홀을 경험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언젠가 웅덩이에 묻힌 적이 있다. 연애가 파놓은 웅덩이였는지 대학이 파놓은 웅덩이였는지 나라님이 파놓은 웅덩이였는지 술이 파놓은 웅덩이였는지 모르겠지만 순간 나는 웅덩이에 깊이 묻혀 무덤에 갇혔다고 생각했다. 울음을 쏟은 눈동자는 허기가 졌고 어쩌면 나는 자궁에 들어왔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웅덩이에 발가락이 빠지고 나서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