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10대 감성쟁이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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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공지]'쓰면서 뒹글' 운영 규정(2024.01.02)작성일 2023-10-23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000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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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독이 든 성배
독이 든 성배 독이 든 성배를 말하기에 앞서 우리는 성배의 개념을 정리해야 한다. 성배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거느린 기독교의 상징, 성자 에수의 피를 담았던 잔을 이르는 말이다. 예수가 죽었다 부활한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지만 예수의 피를 담았던 잔을 아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중세 서양문학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이야기의 모티프가 되기도 한다. 성배를 찿아 떠나는 이야기, 성배를 지키는 이야기, 성배를 빼앗는 이야기 등 말이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영국이 인도를 주어도 바꾸지 않겠다던 대문호 세익스 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인 멕베스의 구절로 등장하면서 부터를 추정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인도측은 굉장히 불쾌해 하겠지만 과거 영국인들은 세계의 절반을 발아래 두었기에 굉장히 오만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보자. 성혈을 담았던 성스러운 잔, 그게 성배다. 그런데 왜 독이 든 성배라는 말이 나왔을까? 일단 성스런 피를 담았던 잔은 성혈의 힘으로 성스러운 성질을 띄게 되었고 성물이 되었다. 성물의 사례들을 생각할 때 예수가 입었던 수의가 성물이 된 사례, 성인들의 소지품이 성물이 된 사례들을 생각해 보면 편하다. 물론 성인들의 물건보다는 성자, 예수의 물건이 급이 높고 기독교의 구원중 중요부분을 담당하는 성자의 부활과 관련된 성배는 더더욱 높다. 비교하는 일이 신성모독인지 모르겠지만 냉장고의 락앤락(플라스틱) 김치통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김치를 오랜 시간동안 보관한 락앤락 김치통은 김치를 다 먹고 나서도 김치냄새가 배어있어 김치냄새가 나지 않는가? 성스런 피를 보관했으니 당연히 성스러워져야 한다. 담긴 피가 보통 피가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 성배에 담긴 물은 성수가 되고 악을 정화한다. 당연히 높은 가치를 가지고 종교계에서는 억만금을 주어도 팔지 않는다. 성배는 여러 작품들에 등장하는 신비한 능력이 없어도 자체의 상징성 때문에 높은 가치를 가진다. 성배를 가지기 위한 분투는 다른 작품들에서 알아보기로 하고 독이 든 성배의 뜻을 풀어보자. 성배는 당연히 높은 가치를 가지고 누구나 원한다. 물론 당신이 속세와 연을 끊은 사람이거나 예수를 믿지 않는 배화교, 이슬람, 유대교, 불교 등의 신자나 성직자인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러나 쉽게 얻을 수 없다. 성배를 가진 자는 성배를 원하는 이에게 굉장히 힘든 일(과업)을 요구한다. 굉장히 힘든 일이라 하면 해변의 모래알 만큼이나 많지만 그중에 독을 마시는 일을 들 수도 있다. 가령 이런 것이다. 그래 네가 성배를 원하는 건 잘 알겠다. 그런데 성배는 굉장히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나? 그러니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게. 성배가 필요 없다면 들어주지 않아도 좋네. 하지만 성배를 가지고 싶다면 들어주게. 성배를 눈이 튀어나올 만큼 바라는 당신은 부탁이 도대체 뭐냐고 물고 성배의 주인은 말한다. &nbs
작성일 2019-03-09 작성자 표리부동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5002상세보기 -
수필 제게는 죽이고 싶은 동생이 있습니다
“제게는 죽여버리고 싶은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정말로 진지하게 잠자는 틈을 노려서 머리카락을 모조리 썰어버릴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이마트에 밧줄이 파는지 알아보러 간 적도 있습니다. 남들은 제 동생이 세븐을 닮아 잘 생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세븐은 ‘짝짝이 보조개’와 ‘붕어입술’과 ‘찢어진 눈’과 ‘걸레머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 다른 세븐이겠죠. 저희는 3살 터울로 만나기만 하면 서로 죽고잡자를 외치는 남매입니다.제 남동생은 가끔 눈이라도 마주치면 썩은 미소를 날려줍니다. 아주 독특한 비웃음인데, 입꼬리가 오른쪽만 올라갑니다. 끔찍합니다. 실로 살인충동이 이는 면상이지요. 다행히도 제가 수박을 썰 때는 그 사실을 아는지 절대 웃지 않습니다. 머리는 크지만 일주일에 영어단어 100개도 간신히 들어가는 용량을 가지고 있으며, 윤리관을 담당하는 부분은 아예 없습니다. 그리고 남동생의 친구들도 하나같습니다.한번은 제가 보는 앞에서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이걸 줄 테니까, 누나를 때려.” 막대사탕 이었습니다. 어이가 없었죠. 진짜로 맞을 줄 몰랐거든요. 제가 더욱 놀랐던 이유는, 그때 처음으로 사탕에 목숨 거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기야 막대사탕에도 목숨을 거는 사람이 있는데, 떡밥을 어떻게 물리겠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참으로 불쌍하신 분들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 아이는 정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번개처럼 제 머리를 때리고는 막대사탕을 받아 들고 저 멀리 도망갔습니다. 그날 펑펑 울면서 집에 올 때는 혼자 마구 뛰어왔습니다. 그랬더니 몇 분쯤 뒤쳐져서 온 동생, 이 녀석이 새빨개진 얼굴로 자길 두고 갔다면서 삿대질을 합니다. 그런 동생이었습니다. 겁보에 울보입니다. 그 얼굴을 치즈강판에 갈아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절 쫓아오지 못하게 다리를 분질러 버릴 수만 있다면 진작에 했을 겁니다. 믹서에 넣고 갈고 싶습니다. 이불에 둘둘 말아서 밖에 어디 버릴 데 없나요? 동생은 화가 나면 절 ‘너.’라고 부릅니다. 입에 차마 담지 못할 욕들도 줄줄줄 잘만 합니다. 싸울 때면 이 녀석은 잭키찬입니다. 주판, 팔레트, 가위, 돌, 하키스틱, 칼, 볼펜, 연필, 컴퓨터, 스탠드, 의자가 전부 무기로 바뀝니다. 저는 반사신경이 좋은 편이라서 가위와 볼펜과 주판은 피했습니다. 코끼리 레고에는 머리를 맞았지만 그건 가위가 아니었지요.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맞아서는 안 되니까요. 남동생은 노린데다가 정말 잘 던집니다. 훌륭한 투수지요. (비유법이 아니라 진짜로 야구를 잘 합니다.) 큰 싸움에서 한번 동생은 컴퓨터 액정을 부쉈고, 저는 엄마가 아끼는 팩스를 박살 냈습니다. 전화기와 리모콘이 집안을 날라 다니고(그러고 나면 십중팔구 하나는 망가집니다.), 동생은 라면을 엎지르고, 저는 햄스터 케이지를 뒤집어엎었습니다. 리모콘과 수화기는 시도 때도 없이 새 걸로 바꿔야 했습니다. 가위가 날아왔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극한의 상황에 이르면 열살 아이도 초
작성일 2008-09-11 작성자 초가집에비오는날 좋아요 0 댓글수 4 조회수 4250상세보기 -
수필 나는 패배자가 될꺼야
하지만 문은 꼭꼭 걸어 잠겨 있었어. 길 따위는 보이지도 않았다구. 그런데도 아빤 그런 것들이 있다고 믿고 있었어. 그런 게 있다 해도 내겐 애초에 그걸 통과할 힘 따윈 없어. 아빤 자신이 날 하나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해. 아니! 내가 더더욱 그렇다는 걸 알아야해." - [BUG] 갈매기의 꿈 넌 그렇지 않았니? 네가 가고 싶은 길, 네가 가야했던 길, 네가 걸어오던 길.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니? 아무 잘난 것 없이 어른이 된 너를 반갑게 맞이해 줄 그 어떤 이도 이곳엔 없다는 것도. 이래야 하는 것. 저래야 하는 것. 그들이 정해놓은 규칙을 따라 네 팔뚝에 낙인처럼 찍힌 붉은 글씨의 불합격 도장에 눈물 흘린 적은 없었니? 말끔한 차림에 웃음 띤 얼굴. 세상이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즐거운 그들의 안으로 나는 들어갈 수 없을까. 세상의 버그가 날 이렇게 만든걸까. 아니면, 내가 세상의 버그인걸까. 세상이 날 망가뜨리는 걸까. 아니면, 내가 세상을 병들게 하는가. 넌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니? 나도 가끔은 묻기도 했지. 분함을 참지 못해 울기도 하고, 며칠을 굶은 거지처럼 빌고 매달려 사정도 해봤어. 하지만, 언제나 그의 대답은 똑같아. 나의 이야기는 듣지 못한 듯 엉뚱한 말만 녹음기처럼 반복할 뿐이지. "너에겐 꿈을 이룰 자유가 있어. 아무도 그걸 막을 순 없어" 마치 날개 부러진 갈매기에게 그런 헛소리나 지껄여 대던 새대가리 조나단처럼 말이야. 빌어먹을,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난 날 수 없다니까. 그리고, 날고 싶지도 않다니까. 새라고 해서 모두 날아야하는 건 아닌거잖아. 모두 하늘을 나는 꿈을 꿔야 하는 것도 아닌 거잖아. "Choose life. Choose a job. Choose a career. Choose a family. Choose a big fucking television, choose washing machines, cars, compact disk players and electrical tin openers... choose DIY and wondering who the fuck you are on a Sunday morning. Choose sitting on the couch, watching mind-numbing, spirit-crushing game shows, stuffing junk food into your mouth. Choose rotting away at the end of it all, pishing your last in a miserable home, nothing more than an embarrassment to the selfish, fucked-up brats you spawned to replace yourself. Choose your future. Choose life. But why would I want to do a thing like that?" - [Trainspotting] dear Me 나는 달리고 있었다.
작성일 2007-02-03 작성자 아마도생선 좋아요 0 댓글수 11 조회수 3677상세보기 -
수필 10년 후의 나의 모습.......
10년후의 나의 모습은 어떨까? 내가 과연 행복할까? 내 꿈이 이루어져있을까?나는 지금 핛생이다. 학생으로서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다.꿈도 갖고 있고, 미래를 위해 노력한다. 나의 꿈은 인테리어다. 내가 10년후 나의모습에서 뿌듯함과 보람을 느끼며 살수 있을까?나도 여러번의 고생을 각오하고 있다.시련이 없다면, 나의 진정한 모습을 찾을 수 없으니까..내가 10년후에 인테리어의 길을 걷는다면, 나는 과연 어떤 인테리어가 되어있을까?나의 가치관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구애받지않고 나타내고 있을까?물론, 인테리어는 쉬운일이 아니다. 확실히 느낀다. 수학도 잘해야하고, 공부도 잘해야할것이다.부실공사를 해야하지 않기때문에....무엇보다도, 좋은집과, 아늑한 공간, 공간을 잘 구성하기까지도 모두가 필요하고 나는 사람에게 건강하고, 편안함을 주는 좋은 집을 만들고 싶다. 내가 사람에게 이로운집을 지은다면, 사람이 건강하게 살수 있는 집을 만든다면, 나는 정말 뿌듯할것이다.나는 돈, 높은 지위, 보다 더 중요한것은 건강을 챙기는 일인것같다.건강을 찾기위해 내가 지은 집을 찾게될테니까....무엇도 나의 작품을 찾아준다는 사람에게 감사할것이다.그래서 더 열심히 만들고, 노력하겠지이일을 완전 마스터하여 최고의 경지에 올른다하더라도, 그건 진정한 마스터가 아니다.나는 이 외에도 여러가지 꿈을 가지고 있다.심리의사, 요리사 사람에게 건강이나,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 10년후 나의 모습은 지금의 내가 열심히, 긍정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 중요할것같다.성공하고도 싶고, 무료로 집을 지어주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작성일 2005-09-16 작성자 김효정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3280상세보기 -
수필 우리 집 금붕어는 배를 뒤집고 죽지 않았다
우리 집 금붕어는 배를 뒤집고 죽지 않았다. 할머니네 집 금붕어는 날이 더워 배를 뒤집은 채 쪄 죽었고 이전에 키우던 금붕어는 엄마가 먹이를 한 움큼 던져주는 바람에 배가 터져 죽었다. 좋아하는 시에선 ‘열 마리 모래무지를 담아두었는데 바다로 돌려보낼 때 배를 드러낸 채 헤엄치지 못했다고 했다.’*란 구절이 나오고 읽었던 소설에선 배 터져 죽은 금붕어가 어항 위를 떠다니고 있었는데, 우리 집 금붕어는 배를 뒤집고 죽지 않았다. “금붕어가 바닥에 가라앉아 있더라.” 언니에게 말을 전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엿들으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던 금붕어의 죽음은 온통 배를 뒤집은 채 수면 위를 방황하는 모습뿐인데 그 금붕어는 죽어서도 바닥으로 가라앉았다는 점이. 사람은 죽을 때 몸을 던져 바닥에 내리꽂히고 물고기는 죽을 때 둥둥 떠올라 하늘을 나는데 그 금붕어는 어째서 바닥에 가라앉은 채 이리저리 치여댔는지 알 길이 없다. 그 금붕어는 어항 속에서 가장 몸집이 작았다고 했다. 나의 철저한 무관심과 이따금 동생이 던지던 열렬한 관심 그 어중간한 사이를 찾아 뜯어 먹었을 금붕어는 죽은 뒤에도 여전히 몸집이 작았다. 물고기는 물에서 죽더라도 익사체처럼 퉁퉁 불어 몸집이 커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 금붕어는 내내 몸집이 가장 작았다. 동생은 몸집 작은 그 금붕어를 아기 금붕어라 불렀다. 아직 어려 단순한 연결밖엔 되지 않는 탓이다. 몸집이 작으니 새끼일 거라고 무작정 단정 짓고 자꾸만 ‘작은 물고기’를 ‘아기 물고기’로 정정하던 그 목소리 탓에 나는 금붕어의 나이를 모른다.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새끼로 분류된 금붕어의 나이를. 몸집도 작은 주제에 물 위로 떠 오르지 못하고 바닥에 가라앉은 그 모습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익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익사할 리 없는 생명체가 익사한 것 같은 행색으로 죽었다. 물에서 태어나 물이 버거웠던 것처럼. 그 금붕어는 아가미를 달고 익사하는 법을 배웠을지도 모르겠다. 관심 하나 주지 않았던 금붕어가, 죽은 뒤 바닥을 기는 금붕어가, 그 무렵 자꾸만 내 머릿속을 침범했다. 배를 뒤집고 죽지 않은 우리 집 금붕어를 죽은 뒤에야 멋대로 상상한다. 아주 가끔 들여다보던 어항 속에서 이따금 마주쳤던 금붕어의 형형한 눈깔이 그 금붕어의 눈깔이라고 멋대로 단정 짓고, 한 번도 본 적 없어 가늠할 수 없는 몸집의 크기는 새끼손톱보다도 작았을 거라고 멋대로 판단하고, 금붕어조차 알지 못할 금붕어의 나이는 백 살이었을 거라고 멋대로 설정한다. 새끼가 아니라 아주 오래 살아낸 노어(老鱼)였다고. 내내 갇혀 있던 탓에 이뤄내지 못한 꿈들을 먹이 대신 뱃속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느라 아주 작은 몸집으로 꿈의 무게만큼 가라앉았을 게 분명하다고 금붕어의 죽음에 서사를 부여한다. 한집에 살았지만 살아있을 적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금붕어의 생애를 멋대로 날조한다. *하재연, 양양
작성일 2021-06-29 작성자 카임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2702상세보기 -
수필 보호병동에 핀 들꽃월장원 선정
-경고- 정신과 보호병동(폐쇄병동)을 주제로 하였습니다. 극단적인 선택, 자학, 폭력 및 성적 요소가 있습니다.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숙고해 주세요. 위와 같은 내용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람할 수 있는 청소년들의 읽기를 권합니다. 이 수필을 올리는 이유는, 정신적인 위기에 빠졌거나 정신 병동에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보호 병동의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 그들의 고정관념과 비관을 타파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특히 언제 어디서나 깊은 상처를 숨겨온 청소년 친구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고 더욱 조심하겠습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가명을 썼습니다. 성별과 나이(호칭)과 같은 설정도 몇몇 변경하였고, 사건도 이야기에 걸맞도록 재구성했습니다. 9월, 제가 글틴에 올린 수필 '코스모스'와 내용상 연계되어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1. 치유를 향한 첫걸음인데 "……새사람 병원? 거기가 어디야?" "거기 종합병원인데 같이 정신과 가보자고." 엄마는 어물쩍거렸다. 나는 정신과에 가서 약이나 받아오는 줄 알았다. 몇 달 치 받아가는 걸까. 그럼 수면제도 받을 수 있을까. 차가운 공기를 온몸으로 들이켜도 정신이 맑아지지 않았다. 나 잠들어도 될 것 같아. 그냥 오십 알 정도만 받아 가도 좋겠다며 꾸벅이는 졸음을 참는다. 부모님 차를 타고 30분 동안 얄따란 도로 위를 달렸다. 차창에 서린 김을 손가락으로 지우며, 지루한 낙서를 새긴 자리에 커다란 간판이 보였다. 물방울 맺힌 검지 끝에 목적지가 있었다. 아빠가 입을 열었다. "저기 있네. 주원, 보이니?" "네. 생각보다 크네요." 거대한 감옥이네요. 목젖을 누르고 치밀어오르는 속앓이를 또 혀로 짓눌러, 다시 삼켰다. 광활한 사거리 도로에서 차들은 알아서 갈 곳을 찾았다. 눈이 굳은 자리에 박힌 타이어 자국은 거무죽죽하게 녹아 있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차들은 유턴하지도 않는다. 하나의 점이 될 때까지 달려나간다. 아빠는 길이 미끄럽다며 투덜거리다, 핸들을 확 꺾는다. 다시 유리창을 손으로 닦으니, 수백 개의 유리로 덮인 병원 본관이 보였다. "내려라. 난 지하에 주차하고 올 테니 먼저 가 있어." 나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망연히 엄마 손을 잡고 세 번째 층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계단을 올랐다. 숨이 차오를 때쯤, 3층 바닥을 딛고 주변을 살폈다. 근데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다. 알고 보니 정신과는 구석진 곳에 있었다. 좁겠구나. 감이 바로 왔다. 나는 별 기대 없이 성큼 그 안으로 들어갔다. "어……?" 생각보다 넓다. 상담실이 3개나 있었고 모두 비밀을 간직한 듯이 문이 꼭 닫혀있었다. 다만 걸리는 것은 문서들을 정리하던 간호사들의 냉정한 눈빛이었다. 엄마는 한 간호사에게 다가가 예약이 되어있는지, 상담 전에 무슨 절차가 필요한지, 교수님을 언제 뵐 수 있는지 꼬박꼬박 물으셨다. 모든 질문을 일목요연하게 답한 간호사는 종이 몇 장을 내밀더니 되물었다. "환자분은……?" 내 몸에서 갑자기 땀이 났다. 떨
작성일 2020-10-24 작성자 사랑하마 좋아요 0 댓글수 2 조회수 2315상세보기 -
수필 주민등록증이 나오는 나이
대한민국 열여덟 살이면 누구나 거쳐야만 하는 통과의례가 있다. 통과의례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가까운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증 신청서를 또박또박 작성하고, 시퍼런 잉크를 열 손가락에 골고루 묻힌 뒤, 작성한 신청서의 뒷면에 손가락의 지문이 또렷이 드러나도록 손가락을 하나씩 찍어나간다. 대략 10분이면 상황이 종료되는 간단한 의식이다. 사실 지난 여름방학 때에 주민등록증을 만들기로 마음을 크게 먹고 사진까지 찍었다. 그러나 조금 더 사진을 예쁘게 찍고 싶다는 괜한 욕심에 사진관에 가기 전, 미용실에 갔던 것이 화근이었다. 이렇게 나보다 조금 더 빨리 세상을 접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충실히 자리잡아가는 친구가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 자신에 대한 반성도 절실했다. 그동안 공부하는 게 유세인 마냥 유난 떨지는 않았는지, 그러면서 열심히 공부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지, 혹여나 그렇다면 이것들을 바탕으로 내 꿈에 대해 자신할 수 있을까? 머리 자르는 내내 고민했다. 어떻게 머리가 잘려나가는 지는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내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을 때, 다행히 만족스럽게 머리는 잘려져 있었고 친구는 원장님께 내 머리 예쁘게 잘라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다음번에 내가 미용실에 왔을 때에는 파마말고 있겠다고 말했다. 이토록 자신감 있는 친구를 볼수록 솔직히 조바심이 났다. 나는 애써 웃으며 미용실을 나왔다. 그리고 다짐했다. 속상하기는 하지만, 특별한 재주가 없는 관계로 나는 공부하는 것 이상의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는 없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기로 했다. 내가 가진 것을 모두 여기에 쏟아 붓기로 했다. 보란 듯이 원하는 대학에 가서, 내 꿈에 다가가기로 나와 약속했다. 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정작 세상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은 없다고, 그래서 잘 해야 한다고 마음먹었었다. 열여덟 살이라 주어지는 ‘다시 한번’이라는 기회가 잇기에, 오늘도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이 “낭랑 십팔세”는 축복받은 나이이므로 말이다. ●
작성일 2005-12-31 작성자 검정머리민영 좋아요 0 댓글수 2 조회수 2047상세보기 -
수필 나는 이제 더 이상 무서운 게 없다
사실 여전히 많다. 나는 겁쟁이니까. 그렇지만 내가 세상에서 제일 두려워하는 것에 대하여 다른 자세를 취할 수 있어 좋다. 그 자체가 사라질 수는 없지만 반갑게 맞이할 수 있어 기쁘다. 전에는 어떤 방송에서 웹툰 작가가 새해 맞이하는 거 보면서 내심 찔렸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블로그에서도 한 번 말한 것 같은데, 청춘과 그로부터 따라 나오는 어떤 것들을 작품의 소재이자 주제로 삼던 작가의 이야기다. 이제 더는 청춘이라고 말할 수 없는 나이를 갖게 되면서 괴로워하는 모습. 새해가 되어서 눈물 흘리다 잠 드는 모습 보면서 패널들하고 우리 엄만 웃었는데 난 어쩐지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작년 캠프에서 합평할 때만 해도 이런 걱정 할 필요 없었는데. 너무 교실의 시만 쓰는 거 아닐까요 묻자 합평 진행하는 시인이 그랬다. 여세실 시인보고 <분홍이 끓어오를 때> 같은 시 다시 쓰라고 하면 못 쓸 걸요? 지금을 즐기세요. 맞는 말이었다. <후숙>도 진짜 명작인데, 그때만 쓸 수 있는 그때의 시가 있으니까. 그러나 막상 지금의 유효기간이 길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 건 얼마 가지 않아서다.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드는 생각 '어 이상하다'. 나는 언제까지나 학생이고 혁명을 기다리고 교실을 부수고 나가고 싶어하면서도 그곳에서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 아니었나, 정말로 언제까지나? 대답은 X였고 늘 그렇듯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말. 시의 시작부터 매번 갱신되는 마지막 지점까지 학교로 가득 차 있는데 난 이제 무슨 이야길 해야 하나. 하루 아침에 직장에서 잘린 사람, 재취업도 불가한 사람이 되어버린 기분. 1월 내내 이번 일 년을 진짜 잘 보내야 한다. 그런 강박감에 휩싸인데다 주변에 잘 쓰는 친구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깨닫기까지 해서, 솔직히 힘들었다. 잘 쓰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건 좋다. '잘 쓴다' 는 건 우선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글을 사랑한다는 전제 하에 탄생하니까. 그런 이들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동시에 자꾸 나를 저울질하게 되어서, '걔는 걔고 나는 나다'라고 되뇌어도 잘난 사람들 사이에 동네 바보 한 명 낀 것 같아서 불안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예전에 그림 그리는 친구랑 이런 이야기 했는데, 수용도와 나이는 비례한다고. 나이가 많을수록 잘 그려도 '그럴 수 있지' 하는 생각이 쉽게 든다는 이야기. 단 한 살이라도 나보다 연상이라면 잘 포용할 수 있는데, 그 반대라면 자꾸만 나 인생 헛살았구나 하는 기분이 든다는 것. 그때야 취미로 미술하는 나야 공감하며 웃고 넘어갔지만 문학에도 이 법칙이 똑같이 적용된다는 걸 깨닫고 알고 웃지 못했다. 나는 작년에 뭐하고 있었지? 그 제작년에는? 공부 덜 해도 되는 시간에는... 아, 완전히 놀고 있었구나. 나름대로 생산적인 걸 해볼 걸. 하는 후회가 가득했다. 진짜로 인생 잘못 살아온 기분이 들었다. 모든 단추가 이상하게 끼워진 듯한 기분. 결론적으로 내 나이가 부끄러웠다. 앞으로 가기엔 아직 붙잡아두고 싶은 게 많지만 또 적지 않은
작성일 2023-02-19 작성자 모모코 좋아요 1 댓글수 2 조회수 1977상세보기 -
수필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프러스라는 나무가 있다. 사이프러스 나무는 엄청 크게 자라는 나무이다. 훗날 나무가 완전히 자랐을 때 서로에게 그늘을 지우지 않을 만큼 어린 묘목부터 뚝 떼어서 심는다고 한다. 나에겐 사이프러스 나무처럼 서로에게 그늘을 지우지 않고 오랫동안 지내고 싶은 친구가 하나 있다. 나는 자라면서 유난히 친구 복이 없다고 생각했다. 늘 친구를 사귀면서도 진짜 친구라고 생각해보지 않았고 커서도 연락하고 지낼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 앞에 거북이를 닮은 친구가 나타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보이기 시작했다. 외모가 거북이를 닮은 게 아니라 툭 치면 껍질 속으로 숨어버리는 습성이 닮은 친구. 초등학교 때부터 알던 사이지만 조용하고 도도해보이고 공부도 잘한다고 소문났고….늘 자기 혼자만 고고한 척 해 보이는 , 나랑은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진 듯 보이는 그 애가 괜히 미웠다. 어렸을 적부터 알던 사이라 엄마 역시 그 애를 알고 항상 나와 그 애를 비교 하셨다. [니 친구 ○○좀 봐라, 걘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착하다고 하더라~] 엄마는 늘 입이 닳도록 그 애 칭찬을 하셨고, 나는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그 애에 대해 더 삐뚤어진 생각을 가지게 됐다. [‥누가 내 친구야!! 난 그런 애랑 친구 한적 없거든!! 걔~ 학교에서는 완전 애들 사이에서 싸가지 없다고 소문났어!! 엄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급기야 나는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그 애에 대한 내 삐딱하고 신랄한 생각을 합리화 시키려 했다. 그래서 중학교에 진학하고도 아는 척 을 잘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중3 겨울 방학 때, 즉 고등학교 배정을 받고 입학을 기다리고 있었을 때, 우연히 나간 성당에서 그 애 역시 나와 같은 고등학교에 배정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때마침 성당이 행사기간이라 우연히 정말 우연히 그 애와 행사 중 하나를 같이 하게 되었고, 그게 계기가 돼서 우리는 서로 핸드폰 번호를 교환 했다. 그뿐 이였다. 딱히 연락을 자주 한 것도 아니었고, 그 애는 그냥 내 핸드폰 주소록에 그저 이름 세 글자만 차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같은 학교에 배정을 받은 상태였지만 오히려 다른 학교에 간다는 성당 친구랑 더 자주 연락을 할 정도로 나는 더 유별나게 그 애에게 무심했다. 그런데 이렇게 못되게 굴던 나에게 변화를 준 사건이 있었다. 내 생일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거의 항상 방학중이여서 아이들과 생일파티는커녕 생일선물조차 기대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성당을 가는 날과 생일이 겹쳐 내 생일 때 그 애와 만나게 되었다. 정말 혹시나 내 생일을 누가 알아줄까 하는 기대감 없이 간 성당에서 마주친 그 애는 한참을 내 앞에서 꼼지락 거리더니 작은 조각케익 하나를 내주었다. 내 얼굴엔 순간 당혹감이 스쳤고 그 애는 정말 순진하게 [안 받을 꺼야?]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이게 뭐야?] [아, 응~ 성당 오다가 그냥 빵집이 보이 길래 샀어. 오늘이 네 생일이라고 해서.] &nbs
작성일 2011-01-12 작성자 검은강아지 좋아요 0 댓글수 2 조회수 1971상세보기 -
수필 연명의 가치월장원 선정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여러모로 노력해야 해요. 이를테면 숨을 허파로 밀어 넣었다가 다시 끄집어내야 하고, 모든 장기의 생명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살기 위한 극소량의 의지가 있어야 하죠. 몇몇의 사람들은 후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해요.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더라도 자신이 살아가려고 어떻게든 발버둥 친다면 살아갈 수 있다고. 사실관계를 따지자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할 수는 없겠지마는, 실은 그것은 양질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지 그저 ‘생을 이어간다’라는 전제 하에서는 과도한 노력을 들이고 있는 셈이죠. 사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ㅡ그 극소량의 의지조차도 없어서 스스로의 생을 끊어버리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아주 조그마한 불씨는 바람을 불어넣어 키울 수 있다지만, 불씨조차도 미약하고 산들바람에도 꺼져버릴 불이라면 차라리 유리 온실에 넣어 두고 공깃구멍만 뚫어 간신히 연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선인 것처럼, 의지라거나 희망도 같은 맥락상에 위치하고 있어요. 책꽂이에서 찾아보자면 같은 행의 책인 것이에요. 나는 내 불씨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어요. 저기 전부 타 버린 잿더미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빛이 보이잖아요. 나는 지금 내 불씨를 위한 유리 박스를 세울 여건이 되지 못해요. 더더욱 돌보아 줄 여건은 되지 못하구요. 나는 실은 내 불씨를 바라보는 것을 무서워해요. 끔찍하고 또 끔찍하거든요. 지금까지 내가 보아 왔던 나의 화려한 불꽃은 전부 환영인 것처럼 스러져 버렸고, 이제 아주 초라한 잿더미만이 남고야 말았어요. 그래서 나는 눈을 감고 차라리 도피해 버리고야 말았어요. 내가 더 이상 무너지는 건 싫었거든요. 더 이상 가라앉는 것은 싫었거든요. 그렇지만 불씨를 지키는 일은 퍽 어려운 일이라서, 내가 항상 들여다보지 않으면 꺼져 버리고 말 것처럼 위태로이 흔들리고 있었어요. 바람이 불면 새빨갛게 달아오르다가 그치면 픽 하고 명을 다할 것만 같았죠. 생을 놓고 싶다는 생각과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항상 충돌하고 있었어요. 있잖아, 학교에서는 이런 상황이 왔을 때 어떻게 하라고 했더라? 나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들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멍청이예요. 그렇지만 사리분별은 할 수 있는 그런 멍청이. 이 생각들을 털어놓고 함께 고민하고 울어 버리고 털어내고 묻어 버리고 다시 일어나기에는 이미 이 사회가 너무 팍팍하게 나를 둘러싸고 있었어요. 나는 이 사회가 나를 받아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요. 죽도록 학생의 본분을 다해 만들어낸 가면으로 나의 겉모습을 받아들일 수는 있겠죠. 외려 환영할지도 몰라요. 학교와 사회가 학생들에게 바라는 이상에 가까운 사람이니까요. 어쩌면 사회는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인재들을 뽑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지도 몰라요. 우리는 모든 것을 짊어지고 아파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숨기고 감추는 법을 배우고 있을지도 모르겠구요. 그러니까 예컨대, 어릴 때의 당연한 본성마저도 우리는 억압받아 왔어요. 아플 때 우는 것은
작성일 2016-07-31 작성자 윤별 좋아요 0 댓글수 2 조회수 1839상세보기 -
수필 오늘은 좋은 곳에 갈 거예요, 당신과 함께월장원 선정
좋은 곳에 대해 오래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시간이라는 게 있다면 사랑하는 것에 목숨을 걸고 싶었고, 목숨을 아무에게나 쥐여주고 싶었고, 좋은 곳에 쓰세요 덕담하듯이 쨍그랑 던지고 싶었고 사랑 때문에 죽고 싶지 않았고죽고 싶어서 사랑하지 않았고 김소형, 좋은 곳에 갈 거예요 中*제목 또한 상기 시의 일부 변형이다 좋은 곳으로 가는 법 나는 종교인이 아니지만, 우리가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음을 믿는다. 여기서 당신은 우리는 누구고 좋은 곳은 또 어디인가, 싶을 것이다. 우선, 나는 우리라는 말을 참 뜻깊게 생각한다. 우리는 같은 종의 동물이라는 이유로 한 축사에 갇힌 돼지들의 ‘우리’처럼 한 집단을 옥죄어오는 단어가 될 수 있다. 동시에 또 ‘우리’는 상대에게 나를 낮추는, ‘우리나라’와 같은 공손한 표현도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단어를 발음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나와 당신들을 아우르는 ‘우리’다. 내가 말하는 좋은 곳으로 가는 우리는 첫 번째와 세 번째의 의미를 반반 지녔다. 사랑과 연대로 이어진 사람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일컫는 말이자 아무것도 아닌 내가 감히 당신들을 함께라고 불러보는 것. 나는 참 오지랖이 넓은 편이다. 그렇다고 소위 말하는 ‘인싸’라는 아닌데, 낯이 두껍거나 친화력이 아주 좋지 않으면서도 공감 능력과 사회에 관한 관심은 많다. 반장이나 학예부장으로 나서서 반의 분위기를 형성하지는 못하지만, 변방의 부반장으로 살아가며 학급의 서류 정리를 하고 학급 행사를 진행할 때 말수 없는 친구들의 이야기까지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부당한 일이 생긴다면 길거리에 피켓을 들고 나가긴 두려워하면서도 SNS에 긴 주장문을 우선 올려보고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는 사람. 그게 나다. 좋게는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나쁘게는 삶을 피곤하게 사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같은 성별, 나이, 국적인 이들, 그리고 그걸 넘어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든 이들이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길 바라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테다. -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이렇게까지 말하니 내가 대단한 인권 운동가가 된 것 같지만, 현실은 또래보다 타인과 나의 행복에 조금 더 관심이 많을 뿐인 사람이다. - 그렇다면 좋은 곳은 또 어디일까. 거듭 말하지만 나는 종교인이 아니기에 절대적인 천국이나 우리가 평생 안주할 수 있는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대신 우리가 머물 좋은 곳을 직접 일구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구원은 스스로’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는데, 이건 구원, 천국, 아름다운 곳과 좋은 곳은 특정한 곳에 존재하지 않고 스스로가 찾아 나서야 한다는 의미로서 말한다. 다만 사람은 홀로 살아가지 않고 ‘우리’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서로에게 기대 스스로-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스스로-구원은 피상적인 것 같으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듯한 조건에서 발생한다. ‘좋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었을 때’. 여기도 나쁘지 않잖아, 라고 말한다면 앞서 나는 행복에 대한
작성일 2023-06-24 작성자 모모코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1815상세보기 -
수필 그 애, 그 애들월장원 선정
1. 그 애한테서는 독특한 향이 났다. 나는 처음 맡아보는 향이었다. 언제 한 번 향의 이름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애는 향의 이름부터 출처까지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지금 시점에서 그 애의 음성을 떠올리려 하자, 자음과 모음이 뒤섞이다가 뭉그러지고 말았다. 기억 한 줄기를 겨우 건져냈다. 스리랑카에 산다던 그 애의 할머니가 주기적으로 보내주는 거라고 말했던 것 같다. 어쩌면 떠올리지 못하는 게 자연스러운 순리일지도 모른다. 다른 곳에서 그 애의 향을 맡은 적이 없다. 그러니까 향은 그 애의 오롯한 색깔인 셈이다. 그 애의 이름 세 글자면 향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충분했다. 향은 낯선 거리감을 상쇄하려는 듯 그 애의 흔적이 깃든 거의 모든 곳에서 자기 존재를 드러냈다. 그 애의 옷가지, 그 애의 머리카락, 그 애의 책, 그 애의 침대에서. 그 애의 육체를 이루는 분자에도 향이 스며있을 것처럼. 언제 한 번 그 애가 긴팔을 걷어 올린 채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을 때, 손등을 붙잡고 체취를 맡고 싶다고 생각해봤다. 그 애의 향기는 여름에는 서늘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다가왔다. 사람에게는 집의 냄새가 난다고 했다. 대부분의 애들이 그랬다. 다들 집이 품고 있던 향기를 몰고 왔다. 어렸을 때 친구들의 집에서 숨바꼭질을 하다 보면 온갖 냄새를 섭렵했다. 옷장 속의, 이불 속의, 화장실 속의 냄새. 그렇게 다른 애들이 갖던 냄새의 출처를 금방 알아챘다. 그 애는 내가 알던 것과 반대였다. 마치 사람과 공간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것 같았다. 우리의 집은 기숙사였다. 우리는 기숙사에서 공부했고, 잤고, 먹고, 울었고, 놀았다. 그러니까 기숙사는 우리 집이었다. 기숙사에서는 기숙사의 냄새가 났다. 지하실 창고에서는 누군가 햇볕 아래 땅콩을 말리는 것처럼 고소한 향이 났는데, 어떤 애는 그 향을 두고 지네의 발자취 냄새라고 했다. 어떤 때는 녹슨 냄새가 나기도 했다. 수돗물이 잘 정비되지 않은 쇠파이프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처럼. 그러면 우리는 청소 대행업체가 기숙사비를 떼어먹었다면서 수군거렸다. 북쪽을 바라보는 벽에 위치한 방들에서는 단단한 나무의 냄새가 났다. 밤에 방에서 자다가 아침에 교실로 막 나온 북쪽 방의 학생들에게서는 숲의 어둠이 희미하게 비쳤다. 그 애와 내가 쓰는 방은 이도저도 아닌 곳에 있었다. 지하와 옥상의 딱 중간에 걸친 층, 사감실 쪽 화장실과 연결된 덕에 녹슬 일 없는 수도관 파이프, 학교 본동과 기숙사를 연결하는 통로 근처에 위치한 방. 우리 방 앞에 서면, 문이 닫혀있는데도 그 애의 향이 흘러나왔다. 나는 호실 숫자를 따로 읽지 않더라도 냄새만 맡고서 우리 방을 찾을 수 있었다. 가끔 복도에 아무도 없을 때면, 방에 들어가지 않고 문밖에 서서 새어 나오는 냄새를 맡았다. 만약 사생 중에 몽유병 환자가 있었다면, 우리 방을 이정표 삼을 수 있었을 것이다. 향은 문에 코를 갖다 대지 않아도 될 만큼 풍요로웠고, 그만큼 품위 있었다. 두개골 속의 뇌가 향기로 완전히 잠길 때쯤이면 황급히 문고리를 돌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작성일 2020-02-10 작성자 김한세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1773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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