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10대 감성쟁이
소설
-
공지 [공지]한 편당 작품 최대 분량은 어느 정도인가요?작성일 2023-11-03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273상세보기
-
공지 [공지]'쓰면서 뒹글' 운영 규정(2024.01.02)작성일 2023-10-23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180상세보기
-
소설 무제
그에게서는 늘 얼얼한 향기가 나곤 했다.그의 눈동자는 늘 넘실넘실 거렸다.늘 터질 것 같은 눈으로, 가슴으로, 그는 세상을 바라보았다.그는 늘 바스락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아야만 했다.그의 심장에는 늘 먼지가 가득했기 때문에.그는 먼지의 색깔을 확인하고자 했다.이후 그는 기억을 상실한 것처럼 행동했다.그의 눈동자는 색깔을 잃어갔다.소리조차 내기가 어려워졌다.그의 눈동자는 메말라갔다.마침내 그의 마음은 가난해졌다. 쩍쩍 갈라지는 마음을 갖고 나서야 그는 결심했다.우주의 먼지가 되어 이 세상을 떠돌겠다고.그는 다시 먼지가 되고자 했다. 가난한 마음으로, 그렇게.
작성일 2024-09-28 작성자 소녀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2상세보기 -
소설 싱크홀 속에서 자유를
내 이름은 김진우. 평범한 대한민국의 중학생이다. 나는 평범한 삶이 싫다. 이 따분하고 지루한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수백 번은 생각해봤다. 하지만 생각해봐도 내 일상은 제자리이다. 뭐 하나 바뀌는 것 없이 시간만 흘러갈 뿐이었다. 오늘, 학교 가는 길에 범죄자가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위협하는 상상을 해봤지만내 상상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학교에 도착했다. 들어가고 싶지 않은 반 앞에 도착했다.들어가서 ‘일진’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애들이 나한테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아무도 없었다.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지금 시각은 오전 7시 24분. 반 친구들이 들어오는 시각은 8시 35분 정도이다. 내 자리는 맨 끝 창가 자리이다. 잠을 자기도 창문을 보면 수업 중 딴 생각하기 딱 좋은 이곳에서 나는 이루어지지 않는 상상을 집어치우고 잠을 청하기로 했다.‘어차피 걔들도 오려면 멀었고 상상하는 건 이제 지겨우니까….’나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러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버렸다. 시끄럽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조금 크니 아이들이 대부분 등교한 것 같았다. 종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조례 시간까지는 시간이 더 남아있는 것 같았다. 이대로 그 일진 무리가 오지만 않으면 아침 조례까지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크나큰 오산이었고 ‘쾅’하는 소리와 함께 일진들이 들어왔다. 한순간에 싸해진 반 애들과 나는 생각했다.‘아…, 그 녀석들이 왔구나….’걔들은 내가 자고 있었을 때 이미 와있었고 떠드는 애들 사이 내가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잠이나 자고 있던 내가 너무 한심했다. 미리 일어나 녀석들 가방을 확인했다면 미리 화장실에 숨어서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어! 김우진! 어디 있었어? 한참 찾았잖아.”쟤는 진우현, 얼굴은 반반하게 생겼고 여자애들한테 얼굴만 인기가 많다. 진우현은 우리 학교에 있는 일진 무리 중 가장 강하고 인맥이 넓어서 다른 학교 일진도 물론 선생님까지 제대로 처벌을 내리지 못했다. 소문으로는 재벌집 아들이라는 소문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면 일진 무리의 대장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다.“야, 진우현, 적당히 해. 내가 너희들 장난감도 아니고 내가 언제까지 너희들 빵셔틀이나 하면서 살아야 되는데 내가 이거 학교폭력위원회에 신고하면 너희들 인생에 빨간 줄 긋는 거야. 그리고 이 일을 지켜보는 너희들도 방관자로 신고될 수 있을걸? 내가 없어지면 이 녀석들 놀림거리는 너희들 중 한 명이 될 수 있다는 걸 명심해. 이래서 교육만 받으면 안 된다니까?! 실제로 일어나면 뭐해. 아무도 피해자를 안 도와주는데 진짜 존나 짜증나네. 별 것도 아닌 녀석들이.”“야, 왜 말을 안 해. 보스가 감히 찐따 같은 너에게 말을 걸어줬잖아.”번뜩‘…아, 현실이 아니구나.’쟤는 황우민. 진우현에 오른팔로 진우현만 믿고 나대는 녀석이다. 진우현과 같이 내가 싫어하는 녀석이다. 근데 어째서 쟤네 둘만 왜 나를 보러 왔을까? 진우현이라면 옆에
작성일 2024-09-27 작성자 서을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6상세보기 -
소설 나뭇가지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수중에 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무것도 곁들이지 않은 채 가장 싼 우갈리를 먹으며 버티다 결국 나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검색하고 있었다. 어둡고 좁은 방 안, 삐걱거리는 허름한 나무 책상과 그 위에 쌓인 외국어로 된 두꺼운 책들이 책상을 방석 삼아 얹어져 있었다. 벽 위로 이름 모를 벌레가 돌아다니는 소리가 나는 건 한국의 자취방과 별 다를 바 없었지만, 조금 질척한 떡 같은 식감의 우갈리는 내가 아프리카로 어학연수를 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하얀 우갈리를 건조한 입속으로 집어넣으니 자연스레 목이 말랐지만, 물을 살 돈도 없는지라 그저 침을 모았다가 삼키기를 반복했다. 한참 동안 아르바이트를 검색하다가 핸드폰에 뜬 알람 덕분에 잠시 모니터를 훑던 눈을 멈춰 세웠다.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지?’ 한국은 이제 막 화요일을 지난 이곳과는 달리, 수요일의 화창한 아침이 밝아올 시간이었다. 엄마는 아직 어두운 세상 건너편에 있는 나를 항상 걱정하고 있었다. 땀을 흘릴까 챙긴 수건 하나를 목에 둘러맨 채 강한 땡볕 아래를 버티고 있었다.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가온 트럭 짐칸은 검은 천으로 덮여 있었다. 저 안에 무엇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짐칸을 가리키며 타라는 시늉을 하던 운전자는 겁에 질린 내 표정을 보고선 내 손을 덥석 잡아, 검은 천으로 덮인 짐칸에 나를 데려갔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비치는 햇빛에 눈을 가리다 새로 들어와 앉는 나를 보고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돌리고는 했다. 카사바가 잔뜩 담긴 트럭 모서리에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가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어린아이인데도 한껏 굽은 어깨와 영혼 없이 텅 빈 눈빛에 조금 움츠러드는 듯했다. 나도 작은 틈이 난 사이에 쭈그려 앉아 트럭이 움직이는 곳으로 향했다.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에 엉덩이가 아려왔지만, 입술을 꾹 누르고서 아린 통증을 참으며 기다렸다. 오랫동안 달려온 길 때문에 이미 도착했을 때부터 온몸이 지쳐버린 상태였다. 뭉쳐버린 어깨 근육이 내 몸 상태를 말해주는 듯했다. 이미 일을 시작하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 끼어, 남은 카사바를 캐고 줄기를 뽑아내는 것이 하루 노동이었다. 이리저리 퍼져 있는 사람들 중앙에 키가 크고 콧수염이 나 있던 남자는 아주 기다란 나뭇가지를 들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긴 나뭇가지였지만 일을 하고 있던 이들에게는 저 나뭇가지가 마치 모두를 빈틈없이 압박시키는 압박붕대와 다름없었다. 나뭇가지로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지시하는 듯했으나, 잠시 카사바를 옮기던 사이, 자신의 앞을 지나가다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나뭇가지로 위협을 가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나뭇가지를 위로 들어올리기만 했을 뿐인데도 아이는 기겁하며 주저앉았다. 옆에서 함께 일하던 노인이 무거운 줄기를 내려놓고 아이를 부축해 주지만, 그 남자는 노인에게도 나뭇가지를 들어 올려 보였다. 놀란 아이는 파란 바지가 젖어 어정쩡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그 아이를 부축하는 노인은 허리가 한껏 굽어 있었다. 해가 지고, 얼마
작성일 2024-09-26 작성자 한솔림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66상세보기 -
소설 신뢰에 의한 불신에 대해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20240907주제 : 어떤 가짜뉴스가 세상에 돌고 있다.이 가짜뉴스 때문에 일어나는 일을 바로잡으려는 인물의 노력과 그 결과가 담긴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이 작문 시험은 수험생의 상상력, 구상력, 표현력을 테스트 하려는 것이다.주어진 문제에 대한 답을 산문 형식으로 작성하시오. (희곡, 대본 형식 금지)제목을 반드시 명시하시오예대 극작과 기출문제입니다.[유명 배우 진 씨, 마약 복용 논란.][유흥 주점 점장, 마약 판매 인정. 배우 진 씨 해당 주점 단골인 것으로 밝혀져…….][(단독)종업원들의 증언 입수.]진민우가 핸드폰으로 뉴스를 훑어보았다. 자고 일어나보니 마약 사범이 되어 있었다. 기사에는 진 씨라고 뭉뚱그려서 나왔지만, 이름만 안 나왔을 뿐 진민우임을 밝히고 있었다. 스타 배우 진 씨, 모 드라마에 출연한 진 씨, 이런 말장난을 해대며 어떻게든 진민우라는 걸 알리려고 하는 중이었지.하늘에 맹세코 마약 따위는 해본 적 없는 그였다. 가끔 동료 배우들과 주점에서 노는 경우는 있었지만, 마약은 듣도 보도 못 했었다. 그런데 자주 가던 술집의 점장 한마디에 진민우는 약쟁이가 되고 말았다.띠리리리-!핸드폰이 울렸다. 아침이라 찌뿌둥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핸드폰을 집어들고 확인했다. 발신인은 진민우의 매니저였다.- 형! 큰일났어요! 뉴스에 지금 형이……!“나도 봤어. 어떻게 된 거야?”대문짝만하게 적힌 마약범이라는 이야기가 적혔지만, 진민우는 침착했다. 정확히는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상황에서 흥분해봤자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아는 그였다. 그럴 시간에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추스렸다.- 저도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는데…… 경찰이 마약을 유통하는 주점을 단속했는데, 그게 형이 자주가던 술집이었대요.“점장이 내 이름을 불렀다고?”- 네에…… 그렇대요. 형, 진짜 아니죠?진민우가 표정을 구겼다. 매니저는 몇 년을 같이 일해 온 사이였다. 옆에서 자신을 그렇게 많이 봐왔을 텐데, 이딴 걸 질문이라고 하는 걸 보면 못 미더웠던 모양이었다.“야. 난 마약 같은 거 안 했어. 너도 알잖아..”- ……그쵸. 예. 그렇겠죠. 죄송해요. 저도 너무 정신이 없어서.“됐어. 지금 대표님하고 하고 만날 수 있나?”이 정도로 뉴스까지 나간 일이라면, 자기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일개 배우가 전화 몇 통 돌린다고 뉴스를 내릴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진민우가 소속되어 있는 엔터테인먼트 사장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사장이라면 일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 여, 연락 해볼게요. 일단 형도 밖으로 나오세요. 제가 데리러 가는 것보다, 회사로 바로 오시는 게 빠를 거예요.“알았어.”전화를 끊은 진민우는 씻지도 않고 옷을 챙겨 입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술집 점장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왜 하지도 않은 걸…….”했다고 거짓말을 했을까.덕분에 입장이 아주 난처해졌다. 배우는 이미지가 생명이었다. 물론 거짓말이기 때문에 금방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이미지에 입은 타격은
작성일 2024-09-26 작성자 a1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94상세보기 -
소설 올라갑니다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20240822주제 : 고층빌딩 1층의 높고 넓은 로비.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시간이다.정장차림의 노인과 장년과 청년 세 사람이 나란히 무릎 꿇고 앉아 있다.무슨 일인가? 어떤 결말일까?제목을 반드시 명시하시오.예대 극작과 기출문제입니다.SMD. 대한민국 방송 3사 중 한 자리를 맡고 있는 대형 방송사였다. 그곳의 1층 주차장, 한 남자가 반쯤 긴장한 얼굴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김진욱, 오늘 처음으로 메인 앵커로서 9시 뉴스에 나가게 되었다.“엄마, 티비 꼭 켜놔. 아들이 메인 앵커로 나가는 첫날이잖아.”9시 뉴스 자리는 앵커로서 최고의 자리였다. 다년간 방송국장을 비롯한 여러 방송사 선배들에게 비위를 맞춘 덕분이었다. 연봉도 연봉이지만 이대로 잘만 풀린다면 은퇴한 이후 정치계 쪽으로도 빠질 수 있었다. 전국민에게 얼굴을 알릴 수 있는 자리였으니까 무리가 아니었다.“어. 알았어. 끊어.”어머니와의 통화를 끝마친 김진욱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에게는 있는 힘껏 강한 척 했지만, 김진욱의 심장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약국에서 먹은 청심환은 아무 소용 없었다.“후우.”주차장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SMD 방송국 건물이 유난히 커다랗게 보였다. 김진욱의 집은 가난했었다. 김진욱이 기자가 된 건 가난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김진욱은 어린 시절 허름한 빌라에서 살았다. 어느날 건설사에서 재개발을 한다며 제대로된 보상도 없이 김진욱의 가족을 내쫓아버렸다. 요즘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예전에는 흔하다면 흔한 일이었다. 철거 용역, 그러니까 깡패 비슷한 사람들이 집에 억지로 들어와 그의 가족을 끌고 나갔다. 김진욱의 어머니는 그때 크게 다쳐서 거동도 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분하고 억울했지만 풀 수가 없었다. 누구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방송국에 들어오기로 했다.자신 같은 사람이 또 없었으면 했다. 분통함을 풀어주고 싶었다. 언론인을 지망하게 된 이유였다.“……지랄.”생각해보면 참 지랄 맞은 생각이었다. 무슨 방송사 직원이 원통함을 풀어준다는 말인가. 위에서 적어준 대로 말하거나 취재하거나, 그게 끝이었다. 원통함을 풀어줄 거면 변호사를 하던가 했어야지.어쨌든 그래도 결론적으로는 좋은 판단이었다. 이렇게 9시 뉴스 앵커 자리까지 꿰차지 않았는가. 적어도 자기 가족 정도는 지킬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섰다.“슬 들어가 봐야지.”김진욱은 시계를 확인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첫 방송이니 만큼 일찍 들어가서 준비를 해둘 생각이었다.“제 아내의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세요!”들어선 로비는 소란스러웠다. 직원들이 난처한 얼굴로 서 있고, 그 중심으로 세 명의 남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무슨 일이야?”김진욱이 근처에 있던 후배 직원을 붙잡고 물어보았다.“아 선배. 저 아저씨 아내분이 자살을 하셨대요. 아저씨 옆에 계신 어르신은 아내 분 아버지고, 다른 한 분은 아드님이래요.”“자살?”“다단계 사기에 당했다네요. 빛까지 지고 가족들 볼 면목이 없어서…… 예.”“그럼 경찰서를 찾아가야지 왜 여기를 찾아왔어?”“경찰 쪽에
작성일 2024-09-25 작성자 a1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19상세보기 -
소설 주류 동창회
1 어정쩡한 걸음걸이. 숨을 언제 쉴지 손을 어디에 두고 걸음을 옮길지조차 헷갈린다. 내게 고등학교 생활이란 그런 것과 비슷했다. 하도 어색해서야 투명한 물들 사이 흘러들어온 누런 기름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학년말이면 돌리던 롤링 페이퍼에 쓰여있던 말들처럼, 나는 조용한 녀석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자리에 내가 나오게 될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정말로 주류들의 모임이라 생각했는데, 그 주류 중에 졸업하고 나서 어쩌다 같은 대학에 진학한 승빈이 덕에ㅡ탓이라고 하여도 틀리진 않을 것 같다ㅡ나는 또 물들 사이에 빠져들게 되었다. " 허어···. 너 혹시 긴장하는 거냐? " 승빈이는 앞서 걷다 나를 힐끔 뒤돌아보곤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는 여전히 앞장서 걸으며 덧붙였다. " 그래. 물론 나도 졸업하고 널 알았지만, 걔네나 너나 똑같이 나랑 친하게 지내는데 뭘 그렇게 어려워해? "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걸었다. 동의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그런 척이었다. 분명히 저건 무지였다. 죽어도 구름 밑은 알아챌 수 없는 것이었다. 저 아래 열등 종의 심리를 승빈이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마찬가지로, 나 또한 구름 위의 생각을 알 순 없었기에 동의하는 척을 한 것이었다. 우린 친하지만, 누구보다도 동떨어져 있었다. 승빈이도 이런 생각을 할까?2 호프집의 문이 열린다. 딸랑. 문에 달린 종이 방문객의 존재를 알린다. 승빈이가 먼저 들어서자 동창회는 들썩인다. 나는 그런 관심이 불편해서, 승빈이의 그림자라도 되는 듯 몸을 숙이고 들어섰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소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창 친구들과 즐겁게 인사를 나누는 승빈이를 외면하고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얼굴들을 조심히 바라보았다. 혹여 눈이라도 마주치면 불쾌할까 봐. 다른 곳을 둘러보는 척 이따금 얼굴을 흘기고 곰곰이 생각했다. 어떤 아이더라. 시끄럽고도 화사한 분위기 속 격양된 목소리를 내뱉는 구름 위 주류들. 나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학창 시절엔 분명 격 떨어지는 천박한 자식들이라고 여겼고, 지금도 그렇게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명확했다. 내가 혐오하는 군집은 주류고, 멀찍이 그들을 관찰하는 나는 비주류다. 그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척 연기를 했다. 주류이고 싶지 않은 척. 이대로가 좋은 척. 나는 맥주 거품 위로 떠오르는 기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고개를 조금 숙이니 샛노란 알코올 향이 느껴졌다. 한 모금 마시면 내가 싫어하는 인공적인 맛이 혀를 두들긴다. 음주의 과정 하나하나를 뜯어 분석해 보아도 결론은 하나다. 술 마시는 건 역시나 별로 즐겁지 않구나. 그렇지만 할 일도 딱히 없어서, 적응 안 되는 동창회의 소란에 괴로울 바에는 저 샛노란 알코올 속으로 빠져야겠구나 싶었다. 지각자가 있다. 출입문의 종소리가 알려왔다. 잡념에 빠져 맥주나 홀짝이던 나는 곧장 구름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사람이었다. 고교생 내가 동경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항상 주류에 얽혀있는 걸 저
작성일 2024-09-25 작성자 흠흠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93상세보기 -
소설 우리의 밤이 조금 더 다정했으면 좋겠다.
너를 껴안고 너의 냄새를 맡으며, 너의 하루를 회상하며 네가 눈을 뜨면 나는 눈을 감고 내가 눈을 뜨면 너가 눈을 감기를 반복한다. 너의 순간과 나의 순간이 몇번이고 계속해 교차한다. 너와 눈이 맞으면 너는 몇번 빠르게 눈을 깜빡이더니 베시시 웃는다. 시선은 잠깐 너의 옷을 향한다. 그러고는 다시 너에게. 살짝 올라간 입고리. 멀뚱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네게 입을 맞춘다. “술냄새..”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웃는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를 보고 생각을 고쳐먹은 듯 돌아 누운다. 그녀도 따라 눕는다. 밝게 불이 켜진 방. 불을 꺼야되는데. 생각한다. 무시하고 핸드폰을 꺼내 알림을 확인한다. 광고 알림 외에는 딱히 온 것이 없었다. 손으로 잠깐 눈을 가린 체 잠에 든다. 방의 불은 여전히 밝게 켜져있다. 내 옆에 있던 그녀는 밤 사이 어디론가 사라졌고 나는 홀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방에 시계가 따로 없다. 핸드폰을 확인한다. 9시12분 여전히 알림은 없다. 무한히 넓어지는 침대 위 어딘가에 핸드폰을 던져놓고 나는 다시 잠에 든다. 여전히 불은 켜져있다. 나는 바다 위에 떠 있었다.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내 두 눈으로는 전부 담을 수가 없는 광활한 하늘 한마리 새가 지나간다. 금새 하늘에는 먹구름이 진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그제서야 나는 주위를 둘러본다. 눈이 닿는 한 육지는 보이지 않았고 아까 지나간 새도 보이지 않았다. 바다 위에 홀로 남아있다. 이제 내게는 새도 없고 핸드폰도 없다. 아까 바다에 던졌다. 그러고 보니 내게는 돛단배도 없다. 그걸 깨닫는 순간 이미 가라앉고 있었다. 눈 앞에는 물이 차올랐고 위에서 본 투명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눈앞을 가렸다. 잠에서 깬다. 여전히 그녀는 내 옆에 없다. 꿈에 대해 생각한다. 그 새가 어떤 새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바다위를 나는 새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그런 새. 하지만 그런 새만을 추려보아도 너무나 많다. 공상 속에서 빠져나와 옆에 있어야 할 그녀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그녀는 없다. 언제부터? 언제부터 그녀가 내 옆에 없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 꽤나 긴 시간이 지났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무한히 넓어지는 침대 위에 누워있다. 그것도 언제부터 인지 모르겠다. 불을 꺼야한다. 침대를 벗어나야 한다. 눈이 아프게 불은 계속 켜져있다. 일어나려고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필사적으로 발버둥친다. 침대는 계속해서 넓어진다. 이내 내 방은 사라지고 이곳에는 침대와 나만 있다. 나는 침대 위를 달린다. 그곳의 끝에는 그녀가 있다. 달리고 달린다. 하지만 평소 운동을 안한 탓인지 금방 지쳐버린다.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그녀를 향해 달린다. 숨이 터져 나온다. 가파지는 숨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는 주저앉아 하늘을 본다. 바라본 하늘은 천장에 막혀 있었고 그 중심에는 불이 켜진 가정용 전등이 있었다. 땀에 젖은 체 잠에서 깬다. 천장의 불은 꺼져 있었고. 어두운 방 안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도시의 불빛들이 그녀의 얼굴을 밝힌다. 긴
작성일 2024-09-24 작성자 이형규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112상세보기 -
소설 초콜릿
그날은 비가 내렸다.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밖에서 굳이 보자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투영해 보려 했지만 모두 뜻이 있으리라, 그만두었다. 비가 내리는데도 머리를 만지고 비 오는 날씨에 전혀 도움 안되는,옷을 입었다. 너를 사랑해서. 정성을 쏟아주고 싶어서.너를 보기로 한 곳에 서서 바로 앞 횡단보도 건너편을 응시했다. 건너편은 너를 제외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다. 딱히 너와 싸우거나 한 것은 아니었음에도. 신호등 신호가 바뀌는 것을 딱히 기다리지도, 네게 인사를 건네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오로지 너의 몫일 테니. 문득 생각해 보니 네게 우산이 없었다. -’왜?‘ 그 물음표 하나만이 머릿속을 감돌았다. 비를 맞고만 있을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빗길 속을 가르고 달리고 달리던 너는 한 손엔 초콜릿 박스 손잡이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론 초콜릿 박스가 흔들리지 않게 받쳐 보였다. 초콜릿 박스는 예뻤다. 곡선으로 예쁘게 떨어지는 디자인에 옅은 분홍색. 너는 세차게 비가 내리는 데도 우직하게 아랑곳하지 않았다. 움찔거리지도 않았다. 주변에서 풍덩거리는 물웅덩이들은 모두 무시한 채로 나만을 응시하는 너에게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나를 사랑하는구나 하고 와닿았다. 당장이라도 곁에 머무르고 싶었다.내가 서있는 식당가 모퉁이에 다다랐을 때가 되어서야 내가 들고 있던 우산 속에 한쪽 어깨만 간신히 걸친 채 괜찮다는 듯 생긋 비에 젖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눅진하고 축축하게 젖은 네 바지가 신경 쓰였다. 눌어붙은 너의 청바지를 누구보다 불편하게 느낀건 나였다. 네 웃음조차도 비에 젖은 네 얼굴 탓에 비 비린내 맛이 났다. 초콜릿 박스에서 달큰한 냄새가 났다. 젖은 네 옷가지들에서 비비린내도 났다. 어련할까 좋았다. 희미한 향수 냄새도 났다. 내가 선물해줬었던 그 향수 다 썼다더니 새로 샀나 보다. 맘에 들었나 봐.우산을 슬쩍 빼앗아 들고 초콜릿 박스를 내게 쥐여주더니 입을 떼었다. 두 손에 꼭 쥐여주던 그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추워서 그런가.-미안. 이렇게 끝이어서.씁쓸한것들을 모두 삼킨, 아주 애틋한 미소였다.그날은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이었다. 거리엔 우리뿐이었고 지나가는 차는 거의 없었다. 비가 쏴 하고 내리고 있었지만 서로의 음성과 체취는 선명했다.-뭐라고? 빗소리 때문에 잘 못 들었어. 가는 길에 천천히 얘기해줘.그 애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랫입술에 네 이가 입술이 패일 듯 닿이고 있었다. 피가 날 것 같았다. 피가 나지 않기를. 그렇지 않다면 당장이라도 입 맞추고 싶은 기분이 들것 같다. 오랜 정적이 감돌았다. 비가 오는데도. 오랜 정적이.-미안.목 끝까지 울음이 차올랐다. 목이 매여도 울 수가 없었다. 눈물을 보인다면 필시 네 진심이 나오지 않을 테니. 목 끝에서 따가운 음성을 죽여갔다. 아아.. 이렇게 끝인가.-무슨.. 의미야?- 널 사랑하지 않아. 질렸어. 싫어졌어. 그러니 헤어지자고. 안녕.네가 딱 잘라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는 바로 등을 보였다. 미련 따윈 오로지 내 몫이라는 듯. 점점 멀어졌다.
작성일 2024-09-21 작성자 김구불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90상세보기 -
소설 새파래지는
칭찬받기에는 늦은 나이가 되었다. 날 보는 시선이 이전과 같진 않으리. 앞으로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혹은 더 야박하게 대해질 것이다. 기대 어린 시선은 여전하지만 따뜻함이 빠지고, 실수하면 조롱보다도 끊어질지 모르는 관계에 조급해야 한다. 아니, 그전에 마음속 우선순위에서 차츰 떨어지는 낯차가운 과정을 겪을 테다.집필 중 떠오른 불안은 초를 태운 듯이, 어렴풋한 실연기가 되어 내 방을 긴다. 나는 목받이에 기대며 모니터를 벗어난다. 오른쪽에 놓인 책장은 빼곡하여, 책 위에 책이 놓여있거나 책 앞에 책이 매달려 있다. 상장이라곤 단 한 장도 없다. 누구나 학교에서 받은 적 있는 노란 상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미숙한 사람이 미숙한 누군가와 겨루어 확연한 차이를 보였기에 받는 상장, 빛나는 황금 테두리에 흰 종이가 억눌려 검은 욕바가지를 토해놓는 상장, 나는 받은 적 없는 상장. 내가 자랑할 것이라곤 원래도 보이지 않던 칭찬이 더욱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 정보에 씻긴 칭찬뿐이다. 그것조차 듣는 사람이 따로 있는 소수의 칭찬. 실제로 남에겐 자랑할 수 없는 칭찬이다. 칭찬을 해준 아무개 씨는 알까. 내가 이렇게 배은망덕한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또한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시시한 호기심은 서로를 물다 이내 배때지를 갈라 원래의 고민을 보여준다. 다시 모니터를 쳐다본다. 첫 문장만이 쓰인 글은 집중하란 듯이 커서를 깜박인다. 나는 이미 안다. 집중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는 것을.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이라 세뇌한 점심을 먹고자 기우뚱한다. 언제나 그런 듯 잡동사니가 쏠린 식탁이 부엌을 알린다. 라면을 끓이고자 찻장을 연다. 물렸지만, 귀찮다. 물을 올리고 봉지를 찢어 면과 스프를 꺼낸다. 부스러기를 먹고자 봉지를 기울인다. 고소해서 맛있다.이제 나는 3분이라 느껴질 때까지 불안을 끓인다. 칭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니, 밍숭맹숭해진다. 칭찬보다도 평가받는 나이지만, 성공할 수는 있다. 마흔에도 기타를 잡는 사람이 있고, 아흔에도 결혼하는 사람이 있는데, 내 나이가 늦은 나이겠는가. 다만,1.다른 이들 옆에 서는 것이 싫다… 2.내가 무엇을 해도 남들보다 앞선다는 칭찬을 받지 못해 싫다…3.다른 이라면 그저 그랬을 것이 내가 해서 대단하다는 소리를 듣지 못해 싫다…4.나를 나로서 대하지 못해 싫다.5.점심을 아침이라 우기지 못해 싫다…6.사람을 온전히 대하지 못해 싫다… 7.방만한 자유가 닥쳐 싫다…8.특별한 존재에서 그렇지 않은 존재가 되어 싫다…9.사람을 억지로라도 대해야 하는 것이 싫다…10.제풀에 거기서 거기인 처지를 만나 싫다…11.잊을 때가 많아 싫다…12.기대보다는 한심으로 대해져 싫다…13.책임 대비 쾌락이 줄어들어 싫다…14.아침 하늘보다 저녁 하늘을 보게 되어 싫다…15.쉬이 지쳐 시도가 없어 싫다…16.고작 100원 차이를 두고 멈춰 서는 것이 싫다…17.걷기보단 뛰어다녀야 해서 싫다…18.친절을 의심해야 해서 싫다…19.잊어버려 할 때가 많아 싫다…20.싫은 것들을 세고 있는 것이 싫다…다
작성일 2024-09-21 작성자 NUAE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92상세보기 -
소설 유목민
가을비가 내려 일찍 집으로 들어왔던 날 밤, 우리 집에서 조금 떨어진 들판에서 굉음이 들렸다. 저녁 식사 중 벌떡 일어난 아빠가 말했다. “헤르만, 동생 데리고 방에 있거라. 네 친구는 오늘 제대로 걸렸다.” 아빠는 벽에서 엽총을 집어 매고 집을 나섰다. 아마도 동네 꼬맹이들이 농장에서 폭죽을 터뜨렸을 것이다. 소들이 놀라니 그만하라고 경고도 했으나 계속 왔다. ‘엽총 소리 들으면 알아서 도망가겠지.’라고 생각하며 설거지통에 빈 접시를 두고 방으로 들어갔다. 데미안에게 헤드셋을 씌우고 유튜브 영상을 틀어주었다. 헤드셋이 불편하다고 칭얼거렸지만, 사탕까지 쥐여주자 조용해졌다. 그러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총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헤르만! 헤르만! 데미안 데리고 빨리 나와봐라!” 아빠는 다급하고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데미안에게는 우비를 입히고 장화를 신겨서 내보내고 나는 대충 우산을 챙기고 슬리퍼를 신고 나갔다. 도착한 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들판이었다. 아빠가 플래시로 들판 바닥을 비추었다. 크기가 조금 큰 눈사람의 물통 크기의 구멍 안에 5살짜리 데미안보다 살짝 큰 구가 땅에 박혀 있었다. 근처 풀이 살짝 그을린 흔적도 보였다. 아빠는 장갑을 쓰고 구를 바닥에서 들어 올렸다. 마치 눈사람을 만드는 것처럼. 구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제국군 모함이다!” 요즘 스타워즈에 빠진 데미안이 말했다. 데미안의 말대로였다. 제국군 모함의 미니어쳐 같았다. 근데 이 정도 크기도 미니어쳐라고 할 수 있나? “근데 이게 왜 여기 있지?” “ 글쎄다…. 동네 애들이 이걸 던질 수 있을 리가 없고 새총을 크게 만들어서 쐈나? 데미안이 좋아하는 것 같으니 일단 잘 씻어서 줘라.” 집에서 수레를 가져와 구를 실어 옮겼다. 소들을 씻기던 호스로 구를 닦고 1층으로 옮겼다. 데미안은 침대로 옮겨 안고 자고 싶어 했지만 침대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1층 거실에 구를 대충 놓고 자러 갔다. 뉴스를 봤다면 그렇지 않았을 텐데. 다음 날 아침, 데미안은 뭐라 알 수 없는 말을 소리 지르며 나를 깨웠고 나를 끌고 거실로 내려갔다. 구는 알처럼 깨져있었다. 구의 안쪽에는 딱 봐도 끈적거릴 것 같은 점액이 묻어있었다. “아빠? 아빠!” 부엌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아빠를 찾았다. ‘응 꿈이구나. 그래, 꿈이겠지. 왜 우리 집 부엌에 웬 미친 벌거숭이 남자 꼬맹이가 있겠어. 와, 심지어 손가락은 4개밖에 없네? 부모한테 버림받았나? 꿈이니까 원래부터 부모가 없었으려나.’ “?” 눈이 마주쳤다. 검정 눈에 데미안과 비슷한 키, 무언가 모자란 것 같은 모습, 4개밖에 없는 손가락. 가까이 다가가서 손에 들고 있던 햄을 뺏었다. 쫙 뺨을 맞았다. 아팠다. 많이 아팠다. 아프네. 아프다. 꿈이라면 아플 리가 없겠지. 꿈이 아니다. 이 이상한 아이는 어딘가에 부모가 있는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다. “아빠! 아빠!” “아침.. 아침 준비하고 깨워. 어제는 내가 했잖아.” 베개로 양쪽 귀를 절반쯤 막
작성일 2024-09-21 작성자 카페라떼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85상세보기 -
소설 절규
저는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다리는 도무지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명의 사도(使徒)는 나의 뒤를 천천히 쫓아옵니다. 나는 그들이 내게 내릴 벌이 두려워 앞으로 계속 걸을 수 밖에는 없는 슬픈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붙잡히고 싶지 않지만 그렇지만 난 이미 너무나 오래 걸었습니다. 다리는 도무지 끝나지 않고 나는 차라리 이 다리가 어서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다리가 끝나면 그들에게 붙잡힐 테지만 나는 그들에게 붙잡혀 끝없이 걸어가는 굴레를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멈춰서는 그런 바보 같은 짓 또한 하고 싶지 않습니다.흐릿한 안개 속에 일렁이는 강의 풍경 사이로는 새파란 물결을 자르고 빛의 파란을 일으키는 조각배가 간간히 지나갑니다 그것들은 내가 걷는 길 반대로 반대로 점점 멀어지며 하는 수 없이 내가 걷는 방향이 어찌할 수 없는 파멸임을 알지만 나는 멈출 수 없습니다.하늘 위로 장막 진 새빨간 노을의 모습은 앞을 향해 걸어가는 나의 시야를 방해하며 걷는 다리에 힘이 빠지도록 만듭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으로 일렁이는 것들은 마침내 내가 걷고 있는지 멈춰선 건지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이는 아주 중요한 사항이고 나는 잠시 멈춰서 이에 대한 것을 생각해보려고 우뚝 섰습니다.저는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다리는 도무지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리는 도무지...... 다리는 도무지 끝나지 않고...... 두 명의 사도(使徒)는 나의 뒤를 천천히 쫓고...... 시지푸스의 형벌 속에 간힌 채 저 일그러지는 풍경 안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나는 깨닫습니다.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했다는 것을! 나는 이제 그들에게 닿을 수 없는 허상이 되었습니다. 이 다리를 계속해서 걸어도 일그러진 나는 더이상 어떤 곳에도 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천천히 멀어지고, 틀에 갇힌 내가 보입니다. 남은 현실은 일그러지지 않은 다리와...... 두 명의 사도(使徒)......내 얼굴을 덮은 가면 때문에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가련하게 다리를 걸어가는 나의 모습이 거울에 비치는가?
작성일 2024-09-21 작성자 방백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25상세보기 -
소설 울타리를 넘어뜨린 학자
운자(雲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춘추전국시대의 학자다. 그 정도가 심해 관련 전문가라도 모르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는 성무선악설을 주장한 고자의 제자로, 오늘날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사상과 행동으로 주변인들을 자주 놀라게 했으며 무시당하였다. 그래서 때론 어리석을 치(癡)자가 붙여져 운치(雲癡)라고 불리우기도 하였다.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고 전해진다. 작은 것을 대하더라도 항상 진지했으며 그 나이 또래와는 다르게 홀로 산이나 강가에 앉아 사색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운자는 사내아이답지 않게 소심했지만 예의 없는 상대를 대할 때만은 엄해 물의를 빚었는데, 이에 관해 전해져 내려오는 일화가 수두룩하다. 밑은 일화 중 일부이다.어느 날은 운자가 도시락을 싸 강가로 놀러 갔는데,주변에 있던 매춘부의 아들과 시비가 붙었다.그는 곧 운자를 쓰러뜨리고 도시락을 게걸스럽게 뺏어 먹기 시작했다.운자는 옷을 털며 말했다.“그러다 니 어미까지 먹겠다”하루는 운자가 시장을 거닐고 있었다.갑자기 목줄을 한 개가 튀어나와 모두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는데,이는 운자도 마찬가지였다.그는 분한 나머지 곧장 일어서 개를 물었다.엎치락덮치락 하는 것을 주인이 겨우 떼어 내 발길을 돌리게 했는데,운자는 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짖어댔다.지나가던 노인이 타이르자 그는 말했다.“제가 이겼습니다” 언뜻 보면 운자의 기행 중 하나일 수 있으나, 현대 학자들은 이를 생명평등주의 사상에서 기인했다고 추정한다. 운자가 길을 피하지 않고 개에게 덤빈 것은 동물 대 동물로서의 벌인 싸움이었다고 말이다. 개를 혼낼 목적이었다면 시장 바닥에 널린 돌멩이를 던져도 됐으나, 굳이 개처럼 물거나 할퀴었다는 것은 이상하다. 게다가 행동이 사상과 일치하기까지 하다.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언젠가는 여자아이가 운자를 불러 같이 소꿉놀이를 하였다.여자아이는 틈을 타 좋아하는 그의 뺨에 입을 맞추었는데,되려 뺨을 맞게 된다.여자아이는 놀이라 항변했지만 이에 운자가 말하기를.“어찌 계절 없이 수확했는가. 나는 말라 죽은 것일 뿐이다”성인이 된 운자는 고자를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가르침을 받은 지 4년째 되던 날, 그는 스승에게 작별을 고하고 도시의 광장으로 가 그곳에서 살며 가르침을 전하였다. 그가 주장한 학설 중 유일하게 밝혀진 것은 만물유수(萬物流水)설로, 만물은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행하고 그 행함에는 선과 악이 없다는 뜻이다. 언뜻 보면 스승인 고자의 성무선악설 같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고자는 인간의 본성적인 욕구들은 옳고 이를 억압하는 반대의 것들을 그르다고 보았지만, 운자는 모든 것을 옳다고 보았다. 인간이 욕구에 따르려는 것도, 억압하려는 것도, 이 주장에 반대하는 것도, 찬성하는 것도.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행하든 모두 옳다고 주장했다. 그는 살아생전 만물유수설을 설명할 때마다 ‘누군가가 약탈하거나 살해하여도 되고, 이를 방해하거나 처벌하는 것도 괜찮다. 만물은 단지 원하고 행할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만물유수설은 법이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작성일 2024-09-20 작성자 NUAE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23상세보기
선택하신 작품으로 월장원 선정을 하시겠어요?
목록 아래에 있는 '월장원 선정 저장하기'
버튼을 클릭하시면 월장원 선정이 완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