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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수필 최지안 - 조개를 캐는 봄
조개를 캐는 봄 최지안 4월의 바다가 앞섶을 풀어 헤쳤다. 뻘이 드러났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이 작은 웅덩이에서 파닥거리고 몽돌에는 널브러진 연초록 해초가 햇빛에 반짝인다. 고둥처럼 뻘에 붙어 호미질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남해의 앵강만. 꾀꼬리 앵(鶯) 자가 들어가는 바다는 아기자기하다. 동그랗게 앵강만을 끼고 멀리는 다랭이마을부터 옆구리로 원천, 신전 화계, 용소마을이 이어져 있다. 음력 다섯 물. 뻘이 드러나면 마을 사람들은 양동이와 호미를 들고 와 조개를 캔다. 나는 용소 아주머니를 따라 물기 빠진 뻘로 들어선다. 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든다. 햇볕이 따뜻해도 바닷바람은 얼얼하다. 아주머니가 준비해 주신 호미와 양동이를 들고 몽돌밭을 걷는다. 발보다 큰 장화를 신어서 걷기가 수월치 않다. “왔나? 늦었네. 퍼뜩 캐라. 몽돌이라 캐기가 되다.” 미리 와서 자리 잡은 동네 아주머니가 우리를 맞는다. 옆 동네에서 캐는 조개보다 여기 용소 조개가 맛이 더 깊다고 한다. 어제도 조개를 캤던 용소 아줌마도 조갯살이 포실한 것이 맛 난다고 했다. 나도 그들 틈에 엉거주춤 자리를 잡고 호미질을 시작한다. 뻘 때문에 조개인지 몽돌인지 구별이 어렵다. 뻘이 뭍은 조개처럼 분간이 가지 않는 일이 있다. 지나고서야 알게 되는 것. 한곳에 오래 있을 땐 몰랐다. 남쪽에 내려와 보니 위쪽의 삶이 보였다. 바쁘게 돌아가던 도시의 일상과 천천히 흘러가는 이곳의 삶. 무엇이 조개이며 무엇이 돌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내게 남을 사람과 그렇지 않을 사람들의 구분이 확연해진다. 몽돌을 헤집어 보니 동글동글한 조개가 나오기 시작한다. 신기하다. 처음엔 조개가 잘 안 보이다 좀 지나니 조개인지 아닌지 알게 된다. 바닷물에 씻으니 무늬가 예쁜 바지락이다. 여기 사람들은 ‘반지락’이라고 부른다. 왼쪽으로 작은 섬이 보인다. 지도상 이름으로는 목단섬. 그러나 여기 사람들은 ‘몰개’섬이라고 했다. 이 작은 섬은 가까워서 수영으로 오가기도 했다고 하는데 몰개섬이 무슨 뜻인지 물어보니 자신들도 모른다 했다.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그렇게 불러 왔다며 ‘목단섬’은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라 한다. 나도 그럴듯한 ‘목단섬’보다는 ‘몰개섬’이라는 말이 더 친근하고 좋다. 뚝방 오른쪽으로는 ‘형제 바위’가 있다. 이것은 섬이 아니라 비슷하게 생긴 두 개의 바위가 나란히 붙어 있다. 형제가 손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난히 평소보다 바위가 더 커 보인다. 물이 차 있을 때는 작아 보이지만 물이 빠지면 물 밑으로 가려졌던 여가 드러난다. 그 바닷속으로 더 숨어 있는 ‘여’는 얼마나 더 클까. 물 위로 나온 바위만 보고는 그 밑의 여를 가늠하기 어렵다. 늘 같은 자리에 있는 모습이 정겹다. 그 두 형제는 좋겠다. 늘 같이 있어서. 나도 내 피붙이랑
작성일 2024-09-05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8상세보기 -
수필 최지안 - 경매장 떡고물은 누가 챙기나
경매장 떡고물은 누가 챙기나 최지안 비탈진 포구로 들어섰다. 앵강만이 보이는 곳에 주차하고 ‘남해군 수협 원천 위판장’으로 간다. 마침 배에서 올라온 생선이 막 부려지고 있었다. 새벽 바다에서 건져 올린 팔팔하고 탱탱한 것들이다. 영문 모르고 잡혀 온 물고기들은 경매장으로 들어오며 물세례를 받는다. 두툼한 물메기, 잘생긴 감성돔, 통통한 갑오징어, 모두 살아 있는 몸이라 귀한 대접을 받는다. 인부들은 생선이 죽을세라 부지런히 호스로 물을 뿌려 준다. 남해군 이동면 원천마을에는 아침마다 경매장이 선다. 물고기들은 둥글고 붉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다. 경매장 바닥에는 물고기가 담긴 플라스틱 용기가 죽 늘어서고 호스로 물을 뿌려 준다. 한쪽에서는 큰 고무대야에 1미터 가까이 되는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철썩인다. 그때마다 물이 출렁이며 사방으로 튄다. 방어였다. 여기선 무엇이든 살아서 퍼덕인다. 살아 있는 것만이 대접받고 거래되는 곳이다. 준비가 다 되면 경매사와 구경꾼들이 슬슬 모여든다. 남해 말씨가 조금씩 커지고 드디어 9시 20분. 경매가 시작된다. 물고기가 든 용기들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중개인이 서고 반대편 오른쪽에는 경매사가 선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듯 좌우로 나누고 중앙에는 갈고리가 달린 긴 장대를 들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일명 ‘갈고리’로 불리는 그는 물고기가 든 플라스틱 통을 끌어서 사람들에게 보여 준다. ‘갈고리’는 활어 경매장에서 만만찮은 힘을 가진 자리다. 바가지를 엎어서 물고기의 이름과 상태 수량을 알려 준다. 만약 바가지를 뒤집어 생선을 쏟았을 때 생선이 파닥이지 않거나 상태가 좋지 않으면 값이 헐해진다. ‘갈고리’는 그의 수족처럼 장대 갈고리를 민첩하고 세심하게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경매장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족집게처럼 낚아채는 기술이 일품이다. 나도 저런 갈고리 하나 있었으면 싶다. 콕 집어서 ‘이것’ 하며 알려 주는 인생 기술이 있었다면 주식도 반토막 나지 않았을 것인데. 경매장엔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퍼덕인다. 일반인은 해독할 수 없는 암호 같은 말이 경매사의 입에서 술술 나온다. 생선의 이름을 말하고 그다음은 무슨 말을 하는데 불경을 외는 것 같기도 하고 기독교의 방언 같기도, 주술 같기도 하다. 일종의 제례 의식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여기서 경매는 저들의 종교일 터. 삶의 터전이며 교회고 신전이다. 그들에게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가치의 척도다. 생명을 흥정하는 신성한 일이다. 그러니 잔꾀나 거짓이 들어 있을 틈이 없다. 오직 눈으로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판단한다. 중개인의 손가락 사인도 마찬가지다. 중개인들의 긴장은 팽팽하다. 경매사가 가격을 부르면 왼쪽의 중개인들은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가격을 흥정한다. 손가락 하나를 세우는 데 신중하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시세가 맞는 것인지 머릿속으로 치열하게 계산한다. 기둥 하나를 세움으로써 손가락의 권위
작성일 2024-09-05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0상세보기 -
수필 최지안 - 봄 멸치잡이
봄 멸치잡이 최지안 2월 바다는 숨이 막힐 듯 차다. 아직 미명. 남해, 홍현의 새벽 바다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멸치를 들어 올린다. 인부들이 그물망을 좁히자 청동빛 몸을 뒤치며 꼬리지느러미를 파닥인다. 모여든 멸치는 점멸하는 전구처럼 반짝인다. 불빛보다 환하다. 필사적으로 파닥이는 멸치와 안간힘을 쓰며 끌어올리는 인부들. 몇 그램도 안 되는 작은 생선의 무리를 끌어올리는 일은 커다란 돌덩이를 들어 올리는 것만큼 버겁다. 천천히 양망기를 감아 돌리는 인부의 팔이 천하를 들어 올리듯 무겁다. 돈이 되고 가족의 밥이 되는 삶의 무게를 인부들은 불평 없이 끌어올린다. 들어 올리는 팔에 힘이 들어간다. 그물에는 멸치가 퍼덕인다. 끌어올리려는 자와 그물에서 튀어 나가고자 하는 멸치. 살고자 하는 몸부림은 멸치나 인부나 마찬가지다. 타국의 새벽 바다에 나와 몸으로 버티는 작은 체구의 동남아 인부는 필사적으로 밧줄을 감는다. 사람과 멸치의 싸움이다. 이 바다에서는 살든지, 죽든지 한 가지밖에 없다. 여기서도 멸치와 사람이 별반 다르지 않다. 모두가 가는 길로 가면 살 수 있을까 싶어 모서리로 몰린 놈들이 반이라면 그물 가운데에서 우왕좌왕 정신없는 놈들도 반이다. 혼자라도 살아 보려고 그물코 사이로 머리를 박고 버둥거리는 놈도 있다. 사지로 몰리게 되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구석으로 몰리면서 아무 데나 머리를 처박는다. 인부들의 손은 더욱 바빠진다. 그 일은 조용하게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배 위에서는 입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다. 밧줄을 감고 풀고 그물을 건지고 들어 올리는 일련의 작업은 말이 아닌 몸이 해낸다. 힘든 일일수록 말은 필요 없고 동작만 빨라진다. 인부와 선장은 그물을 들어 올리고 밧줄을 감는 일의 고리를 척척 잘도 연결한다. 어제의 고리를 오늘에 걸듯 어제 했던 순서를 오늘 새벽 위에 재현한다. 거칠고 힘들었던 많은 날들이 겹치고 겹쳐 말없이 일이 진행된다. 스리랑카에서 왔다는 인부와 캄보디아에서 온 인부도 말 한마디 없이 눈빛만으로 일을 처리한다. 선장과 인부들의 손발이 척척 맞는다. 인부들은 타국의 선장 말을 나보다 더 잘 알아듣는다. 한국인인 나도 남해 말을 쓰는 선장의 말을 잘 못 알아듣는데 말이다. 얼추 멸치들이 들어온 시점, 인부들이 그물을 쥔다. 조타기를 놓고 선장도 소매를 걷어 올린다. 멸치를 털어 내기 위해서다. 모두 결심이 선 듯 비장한 얼굴이다. 그물을 터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리라. 이윽고 그물을 털기 시작한다. 순간, 배 안은 장엄한 행사장이다. 멸치의 몸통이 그물에 뜯기기도 하고 바닥으로 튀기도 한다. 눈이 내리듯 갑판은 온천지가 비늘이다. 불빛에 하얗게 튀는 것이 비늘인지 멸치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사위는 조용하고 은빛만 반짝인다. 멸치는 끊임없이 파닥이고 내장, 비늘, 떨어져 나간 몸통 구분할 것 없이 여기저기 살점이 튄다. 멸치로 뒤범벅이 된 인부들은 그물을 터는 일련의 동작을 반복한다. 포화가 날아드는 전장 같다. 음소거해 놓고
작성일 2024-09-05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3상세보기 -
수필 유점남 - 하늘타리 꽃
하늘타리 꽃 유점남 꽃의 고향은 아무래도 하늘인가 보다. 하루하루 하늘을 향해 다가간다. 땅에서 나서 기어이 하늘로 간다. 교회 앞을 지날 때였다. 언뜻 누군가의 기척에 돌아보니 화살나무 울타리 사이로 하얀 꽃 한 송이가 말간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가까이 보니 곱슬머리 앳된 얼굴의 작은 꽃 ‘하늘타리’였다. ‘아! 너였구나.’ 뜻밖의 장소에서 어릴 적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여름이면 나무나 담장을 타고 오르던 무성한 잎과 흰 꽃들, 자랄 때 무심히 보았던 그 꽃을 자세히 보기는 처음이었다. 낮에 잠깐 눈 맞춤했지만 순박한 모습과 향내가 잠자리에 들어도 아른거렸다. 밤새 장대비가 내렸다. 이른 아침부터 꽃의 안부가 궁금했다. 비가 그친 틈을 타 서둘러 집을 나섰다. 막 꽃 앞에 다가서는 찰나, 소리 없이 떨어져 버리는 꽃송이. ‘내가 오기를 기다렸을까!’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켜본 것처럼 가슴이 먹먹했다. 스친 이파리 하나가 잠시 흔들렸을 뿐 사방이 조용했다. 지나던 바람도 숨을 멈추고, 이웃의 꽃들도, 종탑의 종도 침묵하고 있었다. ‘메멘토 모리’ 문구 하나가 선명하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만난 지 불과 하룻밤 사이였다. 잠시 종탑 위에 십자가를 향해 두 손을 모아 본다. 이맘때였다. 20여 년 전, 그해 여름은 유난히 길었던 장맛비로 모두가 지쳐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경찰서로부터 걸려 온 전화는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같이 살다 독립한 지 2년째인 시동생이 혼자 살던 아파트에서 숨진 것이다. 며칠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아 찾아간 친구에게 발견되었고 사인은 돌연사였다. 순서도 절차도 뒤죽박죽인 채 장례를 치러야 했던 우리는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TV에서나 보았던 일이 가족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이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슬픔이었다. 사형제 중 아직 결혼하지 않은 막내여서 애틋함은 각별했었다. 각자 마지막 만났던 때를 기억해 보고 휴대폰에 연락했던 날짜를 확인해 보니 잠깐이라고 생각했던 게 벌써 한참 지나 있었다. 그의 마지막을 지켜 주지 못한 죄책감과 평소 잘해 주지 못한 미안함으로 힘들어하며 그가 살던 흔적들을 정리했다. 현관 앞에는 그가 타던 차가 비를 맞고 있었고, 혼자 살던 살림살이는 외로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습하고 무더운 여름이라 생명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냄새는 닦고 또 닦았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안타까워하며 보낸 며칠은 몇 년을 살아 버린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가며 그의 시선이 머물렀을 창밖의 도시는 여느 때와 같이 분주했고 흙탕물로 불어난 강물은 앞서간 물길을 따라 밀려가고 있었다. 시댁에 처음 인사 오던 날, 방문 틈으로 빼꼼히 내다보다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듯 뒤통수를 매만지던 그는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던 중학생이었다. 유난히 흰 피부에 까만 학생모가 잘 어울렸던 귀여운 소년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그의 도시락을 싸고
작성일 2024-09-05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19상세보기 -
수필 유점남 - 되돌아온 편지
되돌아온 편지 유점남 30년을 같이 살았지만 시아버님은 참 어려웠다. 그래서 꼭 하고 싶은 말이나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는 편지를 썼다. 진지하게 읽어 주고 호응해 주는 아버님이 있었기에 편지를 쓰고 나면 고백성사를 한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해지곤 했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쓰던 방을 정리했다. 장롱 속의 옷가지부터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신문까지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평소에도 잠겨 있어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지 못했던 서랍이었다. 서랍은 속마음을 담아 두고 끝내 말이 없던 아버님의 모습처럼 자물쇠로 단단히 채워져 있었다. 닫혀 있던 서랍을 열자 아끼시던 유품 몇 가지와 내가 썼던 세 통의 편지들이 날짜별로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것들을 꺼낸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편지들이 아버님의 발걸음을 더 무겁게 한 것 같아 가슴이 먹먹했다. 늘 아낌없는 신뢰와 지지를 보내 주시던 아버님에게 나는 턱없이 모자라는 며느리였다. 살갑지도 않았고 재미도 멋도 없는 옹졸한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단점은 덮어 두고 장점만을 보신 아버님의 배려 덕이었다. 직장생활을 잠시 접고 시댁 식구들과 서로 정을 붙이자고 시작한 한집살이였다. 하지만 일곱 명이나 되는 식구들의 뒷바라지는 녹록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새장에 갇힌 것처럼 답답했다. 그 마음을 아버님이 아셨는지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아라, 천천히 하다 보면 알게 된다” 하시며 다독여 주었다. 경찰관이었던 아버님은 불쌍한 사람들이 집에 오면 먹을 것을 가져다주거나 얼마간의 돈을 손에 쥐여 보냈다. TV를 보거나 책을 읽다가도 슬픈 장면에선 눈물을 흘릴 만큼 속이 여린 분이었다. 시부모님 마음에 들고 싶었다. 하지만 연달아 집안을 덮친 우환은 나를 점점 움츠러들게 했다. 중풍으로 병석에 든 시어머님이 있었고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아이는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이었다. 거기에 심장이 좋지 않아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자신감을 잃게 했다. 집안은 우울하고 할 일은 많았다. 곧 돌아가리라던 교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세상과 고립된 채 집 안에서 볼품없이 변해 가는 며느리가 안타까웠던지, 아버님은 한약을 지어다 주고 화장품을 사 오기도 했다. 신문을 보다가 좋은 글귀나 생활의 지혜가 담긴 내용을 메모해 주기도 하고, 가끔 화제가 된 책도 사다 주었다. 속옷은 손수 빨아서 입었고, 틈나는 대로 어머니를 목욕시키고 식사를 도와주었다. 아들아이와 남편은 어떻게든 치료해 보자며 용기를 내자고 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고 낫는 것은 아니었다. 어찌할 수 없는 답답함을 아버님께 편지로 썼다. 그럴 때면 항상 “네 맘 안다. 너만 건강하면 나는 바랄 것이 없다” 하는 말로 답장을 주셨다. 지쳐 있을 때 내 맘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든든함이 다시 살아갈 용기를 내게 했다. 오랫동안 병석을 지키던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아버님에게도 병이 찾아왔다. 뇌종양이었다.
작성일 2024-09-05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82상세보기 -
수필 유점남 - 특별한 여행
특별한 여행 유점남 어쩌다 그곳에 있었을까. 아카시아 꽃내음이 향기로운 봄날, 산책길 나무 아래서 고랑에 빠진 두더지 한 마리를 만났다. 놀란 녀석이 발버둥을 쳐대지만 높고 긴 시멘트벽은 숨을 곳이라곤 없었다. 뾰족한 코는 벗겨지고, 발톱에도 상처가 있었다. 털은 부스스하고 몹시 지쳐 보였다. 녀석을 구해 주고 싶었다. 들고 있던 등산용 지팡이로 고랑의 끝을 향해 몰아갔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간신히 빠져나온 녀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풀숲으로 사라졌다. 며칠 전 아들아이가 다니는 회사에서 특별한 ‘체험 여행’으로 초대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북촌에 있는 ‘어둠 속의 대화’라는 전시장 앞에 아들과 같은 발달장애 자녀를 둔 여덟 명의 부모들이 모였다. 처음 만났지만 장애가 있는 자식을 키우며 비슷한 길을 걸어왔을 사람들은 저간의 사정을 아는 듯한 눈빛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사전 정보는 없었다. 100분 동안 하게 될 여행의 간단한 주의사항만 들었다. 한 손으로 흰 지팡이를 짚고 다른 손으론 앞사람의 옷자락을 잡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순식간에 캄캄한 어둠에 갇히고 말았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진행자를 따라 출발했다. 어디선가 숲을 흔드는 바람 소리, 새 울음이 들려왔다. 무슨 냄새도 났지만 알 수 없었다. 폭신했던 바닥이 갑자기 기울어지고, 벽면은 들쑥날쑥 이어졌다. 캄캄한 가운데 부딪치고 주저앉고 넘어지며 앞사람을 놓치기도 했다. 어둠에 익숙해 보려고 눈을 감았다 떴다 해 보고 크게 부릅떠도 소용이 없었다. 끌어 주는 사람과 같이 걷는 사람들이 없다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다 졸졸 물소리가 들려오고 딱딱한 나무판자 위를 걷고 있는 것 같았다. 다리를 건너고 있다고 했다. 진행자의 도움을 받아 더듬더듬 보트에 오르자 차가운 물보라가 얼굴을 스쳤다. 강이라고 했다. 거리를 지나는지 경적이 울리는 시끄러운 곳을 지나자, 물건 파는 소리가 왁자하게 들렸다. 시장에 왔으니 물건을 사 보라고 하는데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무나 배추가 만져지기도 했지만 말려서 포장한 물건들은 산나물인지, 해산물인지 구별하지 못했다. 내 지갑에 든 돈도 얼마인지 알 수 없었다. 이번에는 진한 커피 향이 나는 카페로 안내받았다. 자리에 앉자 따끈하고 연한 커피 한 잔이 나왔다. 잠시 후, 소리를 들려주며 알아맞혀 보라고 했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크게 손뼉 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시작된 소나기 소리라고 했다. 이어서 들려온 잔잔한 파도 소리는 먼 도시에서 들려오는 소음이라고 했다. 피로도 풀 겸 캔 음료 하나를 맛보았다. 새콤하고 달달한 게 매실인가 했더니 석류란다. 조금 전에 마신 커피도 기계가 고장 나서 따뜻한 물만 준 것이라고 했다. 시각이 배제된 그곳에서는 나도 장애인이었다. 장애란 고쳐지지 않는 불편함이라고 한다. 장애 중에도 중증이라는 발달장애가 아들에게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사
작성일 2024-09-05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1 댓글수 0 조회수 44상세보기 -
수필 박지유 - 바림하다
바림하다 박지유 동트기 전의 여명인 듯, 어스름한 저녁인 듯 밝음을 덜어낸 공간. 그림에 쏟아지는 은은한 빛이 시선을 붙잡는다. 민화 전시장 한쪽 벽에서 호랑이 세 마리가 나에게 눈 맞춤을 한다. 책거리와 〈장생도〉가 화려한 색채로 다가선다. 그림 한 폭에 온 우주를 담았다는 〈일월오봉도〉는 그 크기와 색감이 나를 압도한다. 그 틈에서 보일 듯 말 듯 수줍게 걸려 있는 그림, 소박하고 다정한 〈초충도〉에 마음이 머문다. 나비의 작은 날개가 팔랑이고 꽃잎은 살아 있는 듯 생기가 있다. 민화는 섬세한 선과 채색, 바림으로 완성하는 예술이다. 현실적인 염원을 담은 소박하고 진실된 그림이기에 더 마음이 끌렸다. 민화를 배워보기로 했다. 변화 없던 일상에서 나의 오늘을 새롭게 하고 싶다. 아침을 여는 햇살처럼, 빛을 품고 날아가는 새처럼 마음은 들뜨지만 설렘과 걱정이 함께한다. 붓을 든다. 마음은 훨훨 나는 새들, 예쁜 꽃들과 품고 있는 향기까지도 다 그려낼 성싶다. 마음과 달리 손은 떨리고 긴장이 된다. 초보자가 연습용으로 해보면 좋다는 모란을 그리기로 했다. 밑그림을 그리는데 선이 삐뚤삐뚤 제 갈 길을 잃는다. 분채와 물감을 섞어 모란 꽃잎에 하얗게 바탕색을 칠해준다. 다음으로 꽃잎 안쪽에 붉은색을 칠하고 바깥으로 향해 바림을 한다. 선명했던 색이 빨강에서 분홍빛으로, 분홍에서 흰색으로 은은하게 풀어진다. 꽃잎마다 색을 입히고 풀어주고 몰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바림은 색을 칠한 후에 붓으로 펴서 한쪽을 짙게 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차츰 엷게 나타나도록 하는 방법이다. 화폭에 살랑 바람을 일으키며 나비의 날갯짓을 만들고 꽃잎을 피워내는 신비의 순간이다. 응축된 색의 경계가 힘을 풀고 부드러워지는 이 시간만큼은 내 마음도 경계가 풀어지는 시간이다. 진한 색의 물감에서 물붓을 사용하여 색을 펴고 물감을 들어내듯 내 삶의 무게에서도 풀어주고 덜어낼 일이 많은 것 같다. 색을 여러 번 올리고 바림을 하는 과정이 반복되지만, 얇은 한지가 견뎌낼 수 있는 물감의 두께는 무한하지 않다. 그림에 욕심을 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달뜬 마음으로 시작한 민화 수업이지만 몇 시간을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차분하고 깊어지는 나를 만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화폭에 또 하나의 나를 담아내는 작업이다. 붓이 지나간 곳에는 삶의 희로애락을 보는 듯 자국이 남는다. 서툰 바림으로 순지 위에 곱게 얹어 놓았던 색이 벗겨지기도, 화사하게 피어나기도 한다. 화실에 걸려 있는 궁모란도를 본다. 금색 테를 입힌 푸른 바위가 가파르게 서 있고 수십 송이의 모란은 화려하게 피어 있다. 거칠게 표현한 푸른 바위처럼, 붉은 꽃잎처럼 내 삶에도 푸른 멍이 들고, 붉은 피도 흘리면서 수많은 흔적이 그려지고 있다. 아픈 기억은 생각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불현듯 떠오른다. 삼십여 년 전, 자식을 잃을 뻔했던 그 순간은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된 상흔이다. 병원에 입원 중이던 딸은 뇌수막염이 의심된다며 정밀검사를 받았다. 첫돌도 안 된 아기가 검사실에서 나오자마자 숨을
작성일 2024-09-04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98상세보기 -
수필 박지유 - 또 다른 나
또 다른 나 박지유 산책로에 가로등이 켜지고 그림자 셋이 나타난다. 나를 비추는 불빛으로 생긴 또 다른 나. 불빛의 방향이나 밝기에 따라 그림자의 크기와 명암이 달라진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행자가 되어 함께 걷는다. 앞서 걷는 길고 커다란 그림자는 온 가족을 포용하고 살아야 하는 내면의 내 모습 같다. 뒤따르는 두 번째 그림자는 건장하고 뚱뚱한 모습의 짙은 검은색이다. 타인에게 보이는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보이지만 만질 수는 없는 존재, 가득 채울 수 없는 욕망의 실체인 듯 두려움이 스친다. 아주 희미하고 작은 그림자는 움츠러든 나의 마음일까. 자멸하는 꿈을 붙잡고만 있는 어스름한 속마음처럼. 행여 사라질까 마음이 쓰이는데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게 옆을 지킨다. 내 삶에도 사방의 불빛에 의식하지 못할 그림자가 너무도 많이 만들어지고 나는 그것을 다 안을 수 없다. 가족들에게 맞춰진 일상 속에서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림자들은 흩어진 나의 모습인 듯 혼란스럽다. 내 삶엔 내가 주체가 되는 가장 또렷한 하나의 그림자만 만들어지길 원한다. 끝없는 물음표에 답은 있는 걸까. 불빛에 따라 잠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동행자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가고 있다. 좁아진 길에서 마주친 사람과 나의 그림자들이 서로 얽힌다. 삶의 부딪힘에서 만들어지는 그림자들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내 것이 어느 것인지 알 수 없다. 다시 길을 걷는다. 앞서간 남자가 흘린 담배 연기가 안개처럼 퍼진다. 희미한 불빛 아래서 그림자도 희미하게 나타난다. 마음속 아픔이 사라지면 내 진정한 그림자를 볼 수 있을까.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의 연속성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경계선. 선을 넘어서면서 그림자와 실상(實像)의 순간이 겹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 의사와는 상관없는 일들은 예고 없이 일어난다. 가슴 졸이고, 당황하고 갈등하고…. 누구에게나 벗어날 수 없는 굴레는 있다.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는 요양보호사의 돌봄을 받으며 혼자 산다. 며칠 전 시어머니가 외출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집에 갈 수가 없다고 전화를 했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무섭게 내리는 날이었다. 급히 차를 몰고 나갔다. 어머니를 태운 후, 무거운 휠체어를 싣느라고 요양보호사와 난 비를 흠뻑 맞았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요양보호사는 울먹이며 소리쳤다. “어르신, 비 오는 날은 나오지 말자고 했잖아요. 어르신은 우산을 쓰지만 저는 두 손으로 휠체어를 밀어야 하니까 우산도 쓸 수 없어 옷이 다 젖는다고요. 사람들 많은 데서 저를 사람 취급도 안 하고 왜 무시하는 말만 하세요? 이런 대접 받으며 일 못해요. 지금 당장 그만둘 거예요.” “그래 오지 마. 내가 뭘 어쨌다고 큰소리야.” 시어머니도 같이 언성을 높였다. 시어머니의 요양보호사는 자주 바뀐다. 하루 만에 그만두는 이도 있다. 길어야 몇 달이다. 시어머니는 어려웠던 젊은 시절 때문인지 요즘 사람들이 이해하
작성일 2024-09-04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80상세보기 -
수필 박지유 - 마지막 선물
마지막 선물 박지유 낡고 작은 집 한 채가 토라진 노인처럼 웅숭그린 채 돌아앉아 있다. 땡볕 아래서도 한기가 느껴진다.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 햇빛이 들고 날 공간도 없이 더벅머리처럼 무성해진 소나무 두 그루가 호위병인 듯 당당하다. 집은 세월의 무게를 낡은 지붕에 얹고 움츠리고 있다. 우리 오 남매의 시간을 품은 집이다. 예전엔 집 주위에 작은 길만 있었는데 집 옆과 뒤로 큰 도로가 생겼다. 집의 절반이 묻힐 정도로 높게 난 도로 때문에 집이 더 낮게 보인다. 얼굴을 가린 채 뒤통수만 내보이는 듯 어색한 뒤태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모퉁이 작은 집이 큰길가에 나앉은 모습은 불안하고 안쓰럽다. 골목길엔 작은 집이 정겹고 큰길가엔 큰 건물들이 있어야 번듯하게 어울리는 풍경이지 싶다. 수없이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무심한 시선에 낡고 작은 집 한 채가 어떤 모습으로 담길지 궁금하다.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한 군데라도 있을까. 집 뒤 작은 텃밭은 도로가 나고 남은 부지다. 엄마가 떠난 텃밭은 서울에서 오가며 집을 돌보는 오빠 덕에 제법 모습을 갖추고 있다. 고추며 들깨, 상추와 부추 등 정성껏 가꾼 몇 가지의 채소가 작은 잎을 늘어뜨리고 비를 기다린다. 노란 금화규 꽃이 아침 햇살을 품고 잔뜩 오므렸다. 옥수수는 긴 팔을 바람에 흔들며 옥수수 알갱이를 키운다. 옥수수 껍질을 벗겨가며 설익은 알갱이를 파먹던 까치가 인기척에 놀라 푸드덕 날아간다. 텃밭 가장자리에 엄마의 손때 묻은 호미 한 자루가 쓸쓸하게 엎드려있다. 뾰족하던 끝이 동그래지도록 들며 나며 텃밭을 가꾸던 엄마의 모습이 바람에 흩어진다. 마당 툇마루엔 엄마가 텃밭으로 들고나던 귀퉁이 깨진 빨간 바구니가 쓸쓸하게 자리를 지킨다. 푸성귀를 다듬던 작은 칼도 하릴없이 들어앉아 있다. 자식들에게 나눠줄 생각에 정성껏 푸성귀와 알곡을 가꾸던 엄마. 농약을 치지 않고 구부리고 앉아 벌레를 잡던 엄마. 예쁘고 튼실한 것들은 자식 입에 넣고 못난 것은 당신의 입에 넣으면서도 행복하셨지. 누구라도 오면 상추며 부추, 풋고추 등을 따다가 주섬주섬 챙겨주던 당신. 싫다고 밀쳐내도 맛있다며 더 안겨주던 해말간 웃음과 거친 손길을 이젠 어디에서 만날까. 시선이 닿는 곳마다 낡은 기억의 뒤척임에 처연하다. 울컥울컥 치솟는 그리움을 바람에 맡긴 채 엄마를 그려본다. 정화수를 떠놓고 자식의 안녕을 빌던 장독대도 이젠 없다. 송아지를 팔면 슬피 울던 어미 소의 커다란 눈망울이 머물던 낡은 외양간도, 올망졸망 농기구를 품고 있던 창고도 사라졌다. 남아있는 것들엔 엄마의 숨결이 깃들어 무거운 시간을 읽는다. 낡은 조립식 담장엔 세월을 품은 이끼가 까맣게 붙어있다. 문짝 하나, 손잡이 하나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이 스쳤을까. 주인을 따라 물건들도 하나둘씩 그 집을 떠나간다. 콩이와 두콩이는 엄마의 반려견이다. 주인 없는 집의 지킴이다. 엄마가 영원히 곁을 떠났다는 걸 알고는 있을까. 며칠 만에 나타난 사람이 이내 반가워 펄쩍펄쩍 뛰며 달려든다. 흰 바지에 두콩이의 발자국이 꽃처
작성일 2024-09-04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00상세보기 -
수필 이양순 - 소나기
소나기 이양순 한여름날 오후, 과천 종합청사 뒤안길에서였다. 계곡에서 물놀이하고 오던 길에 뜻밖의 장면을 목격했다. 갑자기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이는가 싶더니 불과 몇 미터 앞에서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우박 같은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장애물을 통과하듯이 구간을 맞춰 내리는 모습이 수백수천의 군사가 말을 타고 적진을 향해 달려오는 것만 같았다. 너무 진귀한 광경이라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거리를 좁힌 소나기는 기습적으로 우리를 덮치더니 온몸을 흠뻑 적셔놓고는 사라져갔다. 순식간이었다. 1989년 시월 어느 날이었다. 오전 열 시경에 남편은 웃는 얼굴로 “다녀올게” 하고 나섰었다. 두어 시간쯤 지났을 무렵에 매장으로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남편이 위급하다는 소식이었다.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손쓸 겨를이 없었던 것 같았다. 낚시 가던 길에 일어난 교통사고였다. 형부와 언니는 지금 수술 중이라며 나에게 안정제를 먹이고는 응급실로 들여보내지 않았다. 학교에 갔던 아이들이 보였고 친정 동생이며 지인들이 달려왔던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누군가가 나를 남편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하얀 천을 젖혔을 때는 남편은 의식이 없었고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조차 없었다. 계속 안정제를 먹은 탓에 잠에서 깨어보니 다음 날 새벽이었다. 넋이 나간 것처럼 입에서는 ‘어떻게 해!’하는 소리만 나왔다. 아이들은 안방으로 옮긴 아빠의 주검 앞에서 흐느끼고 있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 대청마루와 마당에선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무엇을 준비하려는지 바쁘게 움직이며 내 손을 마주 잡고 무어라고 말을 건네기도 했지만,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눈물 속에 장례를 치렀다. 그날 후 49일 동안 매일 두 시간씩 남편의 극락왕생을 바라며 지장경을 독송했지만, 가슴 한구석은 휑하니 서늘했고 머잖아 나도 남편이 간 길을 따라갈 것만 같았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너무 평화로웠는데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였을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입시를 코앞에 두었던 아들은 대학에 낙방했고 유난히 아빠를 좋아했던 딸은 충격으로 심리 치료를 받아야 했다. 세상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라곤 없었다. 부처님 전에 엎드려 삼천 배를 하고 나면 마음의 거처를 찾을 수 있으려나 싶어서 통도사를 찾아갔다. 도착하니 어스름한 저녁이었다. 사람들을 따라 극락전으로 향했다.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염불 소리가 처량하게 들렸다. 법당으로 들어서니 마음이 고요했다. 방석도 깔지 않은 체 오체투지를 했다. 두어 시간 지났을까. 지난날들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리더니 새벽녘이 되어도 멈추질 않았다. 여덟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텅 빈 듯한 느낌이 들었고 몸에서는 돌덩이가 빠져나간 것처럼 가벼웠다. 법당을 나서니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1991년 하던 사업을 접었다. 이월에 우리가 살던 집터에 건물을 착공하기 위해서였다. 남편이 생전에 노후대책으로 함께 계획
작성일 2024-09-04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05상세보기 -
수필 이양순 - 얼음새꽃
얼음새꽃 이양순 잔설을 뚫고 나온 노란 꽃잎이 파르르 떨고 있다. 무엇을 갈망하였기에 꽁꽁 언 땅을 헤치고 올라온 것일까. 오랜 고난 끝에 세상 밖으로 방긋이 얼굴을 내민 꽃잎이 애잔하여 발길이 머문다. 우리 가족은 일본에서 살았다고 했다. 나는 피란 중 대마도에서 셋째딸로 태어났다. 해방 후 아버지 고향인 제주도로 귀향했으나 일 곱살 되던 해에 한국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삼십 초반인 엄마는 달랑 재봉틀 하나를 머리에 이고 세 살 된 아들의 손을 잡고 딸 셋과 함께 서울로 왔다. 전쟁 끝의 용산역 앞은 황폐하기 그지없었다. 우리는 피난민들과 어울려 적산가옥 마당에 천막을 치고 거처를 정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철거반에 쫓겨 보광동으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나는 서빙고 초등학교 사 학년으로 전학했다. 그러나 사친회비를 내지 못한 학생들은 집으로 쫓겨 다녀야만 했다. 집에 가봐야 헛걸음이 될 것을 아는 나는 학교 뒷산에 올라 입버릇처럼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집 내 집뿐이리”하고 흥얼거리곤 했다. 슬플 때면 습관처럼 부르곤 했는데 아마도 그것이 나의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빈손으로 돌아온 벌로 복도에서 두 팔을 들고 앉아 지나가는 아이들의 손가락질을 보지 않으려고 두 눈을 질끈 감곤 했다. 쫓기면서 벌서느라 사 학년이 되었는데도 구구단도 외우질 못했다. 다시 용산으로 이사했다. 엄마는 궁여지책으로 역전에서 국수 가게를 했다. 엄마를 도우며 어영부영 지내면서도 학교에 가고 싶은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이웃집 언니가 삼각지에 있는 천막학교에서는 사친회비 없이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열세 살이었던 나는 천막학교를 찾아갔다. 좁은 골목에 들어서니 진회색 나무 울타리가 보였다. 작은 키로도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마당에는 천막 다섯 동이 있었고, 싸리문같이 생긴 정문 기둥에는 ‘삼각성경구락부’ 라고 세로로 쓰여있는 현판이 걸려있었다. 마음 한구석에서 서글픔이 밀려왔다. 그러나 공부만 할 수 있다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앞섰다. 쭈뼛거리고 있는데 마침, 나보다 훨씬 키가 커 보이는 여학생 두 명이 마당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정문을 열고 들어가 단박에 “언니! 나도 이 학교에 다니고 싶어 찾아왔는데 어디로 가면 될까요?” 하고 물었다. 언니들은 내가 당차 보였는지 아래위를 살피곤 교무실이 있는 왼쪽 천막을 향해 손으로 가리켰다.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끄거리는 소리가 났다. 선생님 한 분이 친절한 목소리로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차렷 자세로 서서 “저는 공부가 하고 싶어서 왔어요.” 하고 아주 똘똘한 목소리로 말했던 것 같다. 동시에 다른 선생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향했다. 작달막한 키에 까무잡잡했던 나를 바라보던 선생님은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의자를 내어주며 앉으라고 하곤 어느 학교에서 몇 학년까지
작성일 2024-09-04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51상세보기 -
수필 이양순 - 어머니의 승무
어머니의 승무 이양순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마당 한가운데서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서글프리만치 푸른 달빛은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 일렁거렸다. 무대 위에선 하얀 고깔을 쓴 남자의 버선발이 구름 위를 걷는 듯하고 장삼 자락은 허공에 힘차게 뿌려지며 현란하게 나부꼈다. 끝없는 번뇌와 해탈을 기원하는 것일까. 겹겹이 쌓인 한을 풀어내고자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찢어질 듯 이어지는 구슬픈 피리 소리와 자진모리장단에 맞춰 아들인 듯한 어린 소년이 아버지를 따라 무대에 올랐다. 소년의 춤은 아버지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사뿐거리는 듯하였고 춤사위에서 풍기는 애달픔이 절절하고 아릿하여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이십여 년 전 어느 사당에서다. 지인의 인연으로 우연히 보게 된 민속 공연이었다. 1951년 어머니는 스물아홉에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었다. 고향인 제주도에서 달랑 재봉틀 하나를 머리에 이고 네 남매를 데리고 서울로 왔다. 우리는 용산역 앞 적산가옥 마당에 천막을 치고 살았다. 삯바느질로 끼니를 이어가고 있었으나 다섯 식구 입에 풀칠조차 어려웠던 어머니는 안 해 본 장사가 없었다. 어느 날이었다. 엄마는 냉차를 팔기 위해 한강 백사장으로 향했다. 아홉 살인 나를 데리고서였다. 한여름날 모래사장은 얼마나 뜨거웠던지 사뿐거리며 걸어야 했다. 어느새 냉차 통 안에 들어있던 얼음덩어리는 녹아들어서 조각으로 변하고 있었다. 엄마는 나더러 얼음을 사와야 할 것 같다면서 다녀오라고 했다. 얼음창고는 한강 다리 입구에 있었다. 그곳까지 가려면 어른 걸음으로도 한참 걸려야 했다. 새끼줄에 묶인 메줏덩어리만 한 얼음을 사 들고 부지런히 걸었지만, 엄마 있는 곳까지는 멀기만 했다. 얼음은 점점 녹아들었고 새끼줄은 헐거워졌다. 어린 맘에도 빨리 가야 할 것 같아서 뛰려고 했다. 하지만 새끼줄에 매달린 얼음을 들고 뜨거운 모래사장을 맨발로 뛰기란 쉽지 않았다. 비틀거리다가 중심을 잃고 그만 넘어졌다. 새끼줄에 묶여 있던 얼음은 내팽개쳐지면서 두 동강이 되고 말았다. 모래를 떡고물처럼 뒤집어쓴 얼음을 보고 나는 어쩔 줄 몰라 금방 울음보가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얼음을 기다리던 엄마는 넘어진 나를 발견하고 눈물을 삼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는 그날로 냉차 장사를 그만두어야만 했다. 사람들은 은근히 엄마의 미모를 들먹이곤 했다. 그만한 인물이면 얼마든지 팔자를 고칠 만도 한데 고생을 사서 한다는 거였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불속에서 밤새 흐느끼곤 했다. 언니들이 서로 싸우거나 말을 듣지 않을 때면, 그렇게 속 썩일 거면 고아원으로 보내버리고 말겠다며 겁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는 끝내 우리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차라리 고아원에라도 맡겨준다면 학교엘 다닐 수 있지 않았을까, 훗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엄마는 한복 가게를 하면서부터 차츰 생활도 안정되어 갔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을지로에 식당을 개업했다. 어느 유명 인사와 동업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옥이었고 꽤 큰 규모였던 것 같
작성일 2024-09-04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44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