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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색깔로 탐색하는 문학의 장-
모색 주은 - 아늑한 위로를 만난 순간, 민바람 작가의 <낱말의 장면들>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아늑한 위로를 만난 순간, 민바람 작가의 -서점 카프카에서. 주은 안녕하세요. 한껏 온화해진 공기 탓에 잠깐 스친 바람이 유독 서늘하게 느껴지는, 초여름에 이야기를 보냅니다. 전주는 책의 도시라고 합니다. 다양한 색을 가진 독립 서점과 동네 책방, 그리고 도서관들이 도시 곳곳에 선물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올해 4월부터 8월까지, 동네 책방에서 다양한 작가를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기회로 6월 7일, 에서 민바람 작가님과 작가님의 우리말 에세이, 을 만났습니다. 서점은 7시에 진행되는 북토크를 위해서, 조금 이른 6시 30분부터 문을 닫았습니다. 평소에는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자리하던 공간에 북토크를 위한 의자들과 빔프로젝터가 놓여있었습니다. 몇 자리 안 되는 의자가 조금씩 채워지고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민바람 작가님은 북토크를 시작하며, 1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 와의 첫 인연을 소개했습니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범상치 않은 입구와 간판을 보고 끌려서 들어온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밟을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마룻바닥 판자의 소리, 판자를 직접 칠해 꾸민 인테리어와 곳곳에 걸린 그림들, 또 세월과 따듯함이 느껴지는 고풍스러운 소품들. 작가님은 서점이 되기 전, 북카페였던 카프카의 모습을 그리듯이 묘사하며‘이 공간에서 조용히 쉬었다가 가는 것만으로도 치유될 것 같은, 안전지대를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던, 사랑하는 공간에서 북토크를 하게 되어 행복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민바람 작가님이 쓰신 글의 온도는 작가님이 사랑하는 이 공간의 온도와 비슷합니다. ‘마음이 뒤척일 때마다 가만히 쥐어보는 다정한 낱말 조각’이라는 부제목에 꼭 맞게도, 들여다보고 낱말을 가만히 곱씹는 것만으로 내면을 차분하게 하는 따듯한 힘이 있습니다. 공간이 가진 다정하고 따듯한 정서가 작가님의 진솔하고 단정한 이야기와 꼭 맞아서 이 순간에 푹 빠지도록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은 순우리말의 단어들과 민바람 작가님의 글, 신혜림 작가님의 사진으로 이루어진, 우리말 사진 에세이입니다. 민바람 작가님은 차분한 속도로, 살아온 이야기와 함께 이 책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를 풀어놓았습니다. 문학과 말놀이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한국어 강사로서의 일에 몰입했던 순간과 무너졌던 순간, 그 과정에서 겪었던 성인 ADHD와 사회
작성일 2024-09-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51상세보기 -
모색 이유빈 - 악어도 새도 못 되지만 여기에선 그래도 괜찮아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악어도 새도 못 되지만 여기에선 그래도 괜찮아 - 독립서점 인터뷰 이유빈 천안역 1번 출구 근처에 있는 독립서점 를 방문했습니다. 는 주로 동화와 시를 다루는 지역 독립서점으로, 책방 주인인 성욱현 작가와 조민주 작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의 경우, 다른 독립서점들과는 조금 다르게 지역 독립서점이자 청년 문학인이 운영하는 독립서점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인터뷰 대상으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해당 지역 출신이 아닌 문학인들이 지역에 정착하여 책방을 운영한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성욱현 작가는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후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으로, 2024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으로 등단했습니다. 현재는 책방 운영과 더불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조민주 작가는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후, 현재 동대학원 석사 과정에 재학 중입니다. 독립출간물 『친애하는 서로에게』를 썼고 성욱현 작가와 함께 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Interview 책방 악어새 대표 성욱현, 조민주] 분류 독립서점 지역 천안 SNS인스타 @crocodilebird.book 책방 운영진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성욱현 : 동화와 시를 쓰고 있는 제가 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독립출간물 『친애하는 서로에게』를 썼던 조민주 작가에게 도움을 받고 있어요. 제가 글쓰기 강연이나 지원 사업 등을 주로 맡는다면, 조민주 작가가 디자인, SNS 관리, 커뮤니티 행사를 주로 담당해요. 특히나 책방 큐레이션의 경우, 동화는 제가, 시와 성인문학은 조민주 작가가 맡아주고 있습니다. 아기자기하게 책방이 꾸며져 있는데, 이것도 조민주 작가님께서 담당하셨을까요? 성욱현 : 네, 책방 안에 있는 그림이나 책 추천 문구 등은 전부 조민주 작가가 담당했습니다. 추천 문구는 보통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책을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서 책 속의 글귀를 많이 가져와요. 책을 소개받는다는 건, 그 사람의 삶의 방식 일부가 나에게 오는 일이자 그가 읽는 책을 나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하잖아요.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잠깐, 『친애하는 서로에게』는 어떤 프로젝트였는지 궁금해요. 조민주 : 『친애하는 서로에게』는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동기 사이인 황예솔 작가와 조민주 작가가 함께한 독립 출간 프로젝트입니다. 서간체로 서로를 ‘서&rsqu
작성일 2024-09-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35상세보기 -
모색 이형초 - 문장의 방 한 칸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문장의 방 한 칸 ― 창작촌 탐방기 〈예버덩문학의집〉 편 이형초 안녕! 문똑이들! 나는 문장웹진의 숨겨진 자식 문장이라고 해. 글월 문(文)에 담 장(墻) 담장마다 나의 글을 새기라는 의미에서 아버지가 지어주셨지만 그래서 강원도 횡성에 있는 문학 창작촌으로 향하고 있어. 문장웹진 독자들의 열띤 삶을 보면서 나도 문학 활동을 활발하게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았거든! 삼면이 주천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숲과 들판이 아름답게 펼쳐진 흰 집! 한 시인의 개인 사유지가 창작촌으로 만들어졌다고 해. 어딘지 궁금하지? 날 따라와! 바로 〈예버덩문학의집〉이야! 내가 한 달간 묵을 창작촌을 소개할게. 이곳은 작가들과 작가지망생들이 훌륭한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할 수 있도록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창작 공간을 제공하고 있어. 입주와 관련해서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상단의 QR코드로 접속해서 홈페이지를 살펴봐! 잠깐! 저 익숙한 뒷모습은?! 〈예버덩문학의집〉을 관리하는 대표이자 시인인 조명 작가님이셔! 선생님을 따라 창작촌을 둘러볼까? 입구로 들어오면 잣나무 숲속에 방강로 3개가 쭉 이어져 있고 오른쪽엔 주천강이 훤히 보이는 야외무대가 있어. 이곳에서 문학 특강, 연주, 연극, 낭독회 등 문학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를 주최한다고 해. 참여 작가들에게는 소정의 활동비가 주어진다고 하니 문장이는 지금부터 낭독 연습을 시작할 거야! 안쪽으로 쭉 가면 주천강이 보이는 둥근 마당이 있는데 이곳을 ‘노을버덩’이라고 부른대. 입주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거나 주천강과 노을을 바라보며 심신을 정화하고 싶을 때 문화쉼터로 활용된다고 해. 강물 소리가 들리는 노을버덩, 예쁘덩! 이곳이 〈예버덩〉 본관 입구야! 안으로 들어가 볼까? 입구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야외 테이블! 날씨가 좋으면 이 테라스에서 다 함께 식사해. 공동 도서관부터 둘러보자!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독서와 창작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이곳에서 작가를 초청해 특강을 하거나 소규모 작가와의 대화, 낭독회, 예버덩 워크숍을 주최하는 등 여러 가지 문학 프로그램을 연대. 문장이의 방을 소개할게! 입주하는 동안 개인 집필실에서 방해받지 않고 창작에 몰두할 수 있어. 문장이가 오기 전에 이불도 깨끗하게 세탁해 주시고 방도 청소해 주셨어. 청소도구, 세면도구(샴푸, 린스, 비누), 생
작성일 2024-09-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02상세보기 -
모색 채미나 - 문학과 예술의 경계, 그 사이로 ‘그냥’ 뛰어들기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문학과 예술의 경계, 그 사이로 ‘그냥’ 뛰어들기 : 강혜빈 시인 편 채미나 시도, 사진도, 강의도, 타로도 결국 타인에게 힘을 불어넣는 일이잖아요.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강혜빈 시인 강혜빈 시인. 사진가 ‘파란피paranpee’. 뉴 노멀이 될 양손잡이. 빛과 컬러를 중심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이미지를 발명하고 있다. 201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미래는 허밍을 한다』, 『밤의 팔레트』가 있으며 사진 산문집 『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 외 다수를 펴냈다. 최근 새로운 자아가 추가되어, 타로마스터 ‘강이도’로 활동 중이다. 문학의 탈경계 현상이란 무엇인가? 문자로만 이뤄진 글에서 벗어나, 다른 예술의 형식이나 본질을 섞어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탈경계 현상은 문단을 더욱 융합적인 예술의 장으로 데려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학을 향유하고 싶으나 작품 이해 혹은 흥미 느끼기에 어려움을 겪는 독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이에 필자는 ‘탈경계’의 한가운데에서 문학과 사진을 횡단하며 자기 세계를 자유로이 펼치고 있는 한 시인을 만나 보았다. 안녕하세요, 혜빈 님! 반갑습니다. 혜빈 님은 현재 시인으로도 ‘파란피’(사진가)로도 활동하고 계시죠. 두 가지 일을 함께하면서 느꼈던 기쁜 점이나 고충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안녕하세요. 강혜빈, 그리고 파란피입니다. 저를 찾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글쎄요, 두 가지 일을 하면서 가장 기쁜 점은······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거. 그리고 지금처럼 누군가가 저를 궁금해 한다는 거요. 벌써 짜릿해요. 내가 왜 궁금하지? 나에 대해 뭘 알고 싶지? 하고요. (웃음) 그동안 제 행보를 독특하게 생각해 주시는 분들이 꽤 있었어요. 시인과 사진가의 겹쳐진 얼굴로 살아가다 보니 입체적인 아이덴티티가 생기더라고요. 작업을 하면서 색이나 빛을 섞는 행위와도 비슷하다 느끼고요. 아무래도 텍스트나 이미지를 함께 다루다 보니, 시를 쓸 때도 사진을 찍듯 이미지를 중점적으로 다루게 돼요. 사진을 할 때도 짧은 텍스트를 함께 배치하는 편이에요. 그래서인지 두 장르를 섞는 작업이 제겐 익숙하고 편
작성일 2024-08-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91상세보기 -
모색 팅팅 - 타향에서 온 책, 타향에서 온 사람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타향에서 온 책, 타향에서 온 사람 팅팅 "이 근처에 중국인이 하는 중문 책방이 있던데, 너 아니?" 밖에서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가 현관에서 우산을 닦으면서 말씀을 꺼내셨다. 휴가차 한국에 놀러 오신 어머니는 마지막 날 저녁 내가 사는 동네를 혼자 산책하시다가 '시절'이라는 책방을 발견하셨다. 어머니 덕분에 한국에서 유학한 지 6년이 넘은 나는 서울에 중국인이 운영하는 중문 책방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다음날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어머니를 보내고 나서, 나는 곧바로 그 중문 책방으로 향했다. 전날 밤부터 내린 비는 좀처럼 그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떠나기 전, 공항의 높은 유리벽 너머로 수없이 많은 빗방울이 비행기가 이륙하는 반대 방향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로부터 '엄마 이제 비행기 탔어 우리 딸, 혼자지만 스스로 자기를 잘 챙길 수 있도록 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집에 도착한 후, 어머니가 알려준 책방을 찾아갔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줄곧 내리던 비가 마침내 나를 따라 쫓아오지 않았다. 사실 책방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탓인지 휴대폰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아 어머니가 알려준 방향을 되짚어 보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집을 떠나 걸어온 지 약 30분, 왜 어머니가 내비게이션 없이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확신했는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한글로 쓰인 다양한 간판이 가득한 거리에서 이 책방의 간판만이 자신의 얼굴에 한글보다 더 큰 한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拾光中文書店’,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어머니에게 확실히 이 책방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책방의 정문은 도로를 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먹구름 때문에 흐려 보이는 거리와 따스한 노란색 불빛으로 뒤덮인 책방이 얇은 유리문 하나로 분리되어 있었다. 찾기 쉽지 않았던 시절 책방은 내비게이션의 데이터 세계에서는 미처 자리를 잡지 못했지만 책방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활짝 열려 있었다. 마치 나만의 9와 4분의 3승강장을 찾은 기분이었다. 시절 책방은 고려대 근처, 서울 동대문구 제기로 10(현재는 휴대폰 지도에 등록되어 있다)에 위치하고 있다. 책방 주인 락천은 고려대의 중국인 유학생이었다. 책방으로 운영되기 전 건물엔 카페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시절 종종 커피를 사러 자주 오던 곳이었지만, 나중에 이곳에서 책방을 차리게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고 한다. 경제학 석사 과
작성일 2024-08-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2 조회수 877상세보기 -
모색 배연주 - 최진영 작가님의 다정한 목격자 되기 − 우리가 작가님의 북토크에 계속 가는 이유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최진영 작가님의 다정한 목격자 되기 − 우리가 작가님의 북토크에 계속 가는 이유 배연주 삶에 활력을 주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공연이나 전시를 보러 가는 일. 아름다운 예술을 접하는 건 일상에서 이벤트가 되어 준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특정 예술가가 생기면 그 사람의 작품이나 공연을 계속 보러 간다. 소위 ‘덕질’을 하게 된다. 나는 공연도 전시도 좋아하지만 가장 오래된 덕질 분야는 소설이다. 공연을 보는 일이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인 즐거움을 준다면, 문학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여파를 남긴다. 읽으면서 마음에 남았던 문장도, 당시에는 와 닿지 않던 문장도 시간이 흘러 다시 읽으면 새로운 감동을 준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작품에 관한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건 책 출간 직후뿐이다. 그래서 나는 북토크 소식이 들리면 꼭 찾아간다. 최근에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최진영 작가님의 북토크에 자주 다녀왔다. 얼마 전에 내가 또 최진영 작가님의 북토크에 간다고 하니 한 친구가 물었다. “같은 작가님 북토크 가면 항상 똑같은 말만 듣는 거 아니야?” 나는 곧장 아니라고 대답했다. 동시에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최진영 작가님을 좋아하게 된 계기와, 계속 북토크에 가는 이유에 대해 말이다. 1. 독자, 수강생, 팬 작가님의 책을 처음 읽었던 때는 2011년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으로 넘어가던 겨울이었다. 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 단지에는 2주에 한 번씩 도서관 버스가 왔다.(지금 찾아보니 공식 명칭은 ‘이동도서관’이라고 한다.) 개조된 버스 내부 서가에 있는 책을 빌려갈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때 최진영 작가님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빌려 읽었다. 이 시기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당시에 내가 침대에 거꾸로 엎드려서 책 읽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이 두꺼워서 오래 읽느라 어깨가 아팠던 기억이 있다. 14살의 나는 분명 ‘소녀’ 이야기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좋았다. 실제로 내가 겪어 보지 않거나 알지 못해도, 감각으로 좋다고 받아들이는 것들이 있다. 멋진 그림을 보면 그것이 왜 아름다운지 기술적으로 분석해서 설명할 능력은 없더라도 마음속에 박히는 것처럼. 가령 이런 문장들이 그랬다. ‘죽는 순간 공포나 고통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다. 죽으면 끝이니까. 끝이란 걸 어떻게 아느냐고? 왜 모
작성일 2024-08-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831상세보기 -
모색 고비읍 - 아무 문제 없음
아무 문제 없음 고비읍 오른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입을 틀어막고 참아 보려는 듯하지만, 결국은 끕끕 새어 나오는 소리. 내 바로 왼편에 앉은 아이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기 바빴다. 사방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 건 무대 위의 한 남자애가 울기 시작하고서부터였다.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많은 사랑을 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그 사랑 다 돌려드릴 수 있도록 더 노력할게요. 저를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 그 애는 울먹이느라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누군가가 크게 그 애의 이름을 연호하자 팬들이 한목소리로 그 애의 이름을 외쳤다. “연홍아, 울지 마!” “연홍아, 사랑해! 더 많이 사랑할게!” “최연홍! 행복하자!” 반짝거리는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눈부신 조명을 받는 무대 위의 남자애를, 이미 많이 행복해 보이는 그 애를 팬들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커다란 공연장 안을 둘러보았다. 2만 명이 앉아 있는 이 공연장 어딘가에 송리윤도 있었다. 다른 팬들처럼 송리윤도 그 애를 보고 울었을까. 더 사랑해 주겠다고 외쳤을까. 따로 연락도 한 적 없고, 밥 한 번 같이 먹은 적 없지만 그 애는 송리윤에게 사랑받았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대가 없이. 세븐플래닛은 마지막 무대라면서 팬들에게 함께 부르자고 했다. 팬들은 노래 가사 전체를 다 알고 있는지 막힘없이 따라 불렀다. 3시간쯤 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세븐플래닛이 불렀던 노래 대부분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노래들이었다. 애초에 나는 세븐플래닛에 관심이 없었다. 멤버가 몇 명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관심도 없는 세븐플래닛 콘서트 티켓을 산 건 오로지 송리윤 때문이었다. “여러분, 오늘 즐거웠나요?” “네!” “행복했나요?” “네!” “저희도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멤버들은 돌아가면서 엔딩 멘트를 던졌다. 아까는 우느라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던 최연홍이 이번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세븐플래닛과 가디언이 함께한 지 벌써 5년이 됐어요. 이만하면 한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평생 서로 사랑하고 아껴 줘요. 알았죠?” 팬들은 큰 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어딘가에서 송리윤도 같이 외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뭐야? 할 말 있어?” 송리윤이 근처에서 쭈뼛대는 내게 물었다. “저기…….” “쉬는 시간 다 끝나 간다. 아까운 시간 잡아먹지 말고 빨리 좀 말해 줄래?” “나도 갔었어, 어제. 세븐플래닛 콘서트 말이야.” 혹시나 반가워해 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송리윤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았다. 하지만 송리윤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여느 때처럼
작성일 2022-10-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933상세보기 -
모색 김젬마 -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백온유, 『페퍼민트』(창비, 2022) 김젬마 재난이 남긴 것들 백온유의 『페퍼민트』는 준비 없는 재난 앞에 닥친 기약 없는 기다림과 불투명해진 미래를 견디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프록시모 바이러스’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돌보는 ‘시안’과, 슈퍼 전파자라는 낙인으로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고 사는 ‘해원’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전염병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안과 해원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였지만, 바이러스가 삶에 침투하자 이들의 평범한 일상과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의 세계가 멈추고 자신의 미래까지 멈춰버린 시안은 돌봄 노동을 수행하느라 정작 자신의 세계여야 할 학교와는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그저 자신의 하루를 견디고 버티며 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희망이나 미래를 품을 수 없는 고단한 삶 속에 놓여 있는 시안의 일상은 위태롭고 무력할 뿐이다. 엄마가 깨어날 거라는 희망보다 엄마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진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엄마를 누구보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돌보지만 결국 모든 정성과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들에 지쳐 있다. 한편 슈퍼 전파자라는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불안함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지원’으로 개명하고, 이사와 전학을 선택한 해원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마치 바이러스가 자신의 삶에 없었던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 가족만큼이나 끈끈했던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들의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이 공백은 두 사람의 잃어버린 시간과 멀어진 마음의 거리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시안과 해원은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낀다. 시안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해원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감정의 화살을 해원에게 돌린다. 해원은 유일하게 자신의 과거를 아는 시안의 등장이 당혹스럽기만 하고 지난 시간을 들추는 것 같아 불편하다. 희망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있는 시안과 과거로부터 도망쳐 평범한 삶을 꿈꾸는 해원, 이 두 사람은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고여 있는 삶 재난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엄마와 이별을 한 시안은 식물을 돌보듯 엄마를 간병한다. 엄마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엄마가 썩지 않도록 기저귀를 자주 갈아 주는 것뿐이지만, 시안은 엄마의 미각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엄마가 좋아하던 페퍼민트 차를 매일 우려 입에 적셔 준다. 시안은 매일 같이 차를 우리며 어린 시절을 회상할 뿐 아니라, 절망과 무력함으로 점철된 일상에 작은 희망을 품으며 나름의 의식을 행하고 있다.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98쪽) 시안이 오랜 간병 경험으로 얻은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
작성일 2022-10-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003상세보기 -
모색 남지원 - 나쁜 사랑
[청소년소설] 나쁜 사랑 남지원 1. 지렁이 밤사이 내리던 장대비가 물러가고 푹푹 찌는 아침이었다. 나는 아파트 단지가 끝나는 놀이터 샛길에서 내 오랜 벗이자 청박쥐왕 오광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른세수로 호기롭게 눈곱을 떼면서 땅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슬리퍼로 끌어와 뒤로 차버리기 연습을 반복 중. 현재 시각 오전 7시 20분. 보통 우리가 등교하던 시간보다 일렀으나 그래도 광수 자식, 아니 내 벗인 청박쥐왕에게 문자를 넣어 바로 튀어나오라고, 안 그럼 먼저 간다고 해놓고서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이게 다 성가신 옆집 때문이었다. 사나이 가는 길을 막는 것은 언제나 옆집 낭자 혹은 아낙인 것이다. 옆집 사는 동갑내기 지설연의 등교 시간은 대략 7시 40분. 잘못하다 아파트 복도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밤새 안정을 되찾은 나의 공력이 한순간에 뚝, 맥이 끊기기 때문이다. 나는야 강한 남자, 파주고 1학년 백미응왕 이로운. 모름지기 무림의 고수는 여자에게 잡혀 살지 않는 법. 때는 바야흐로 강호를 평정하고 입신양명에 힘쓸 시기인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은 몇 달 전 입학한 파주고를 이 몸이 슬슬 접수하려 하는 중요한 시기이고. 무릇 강호의 실력자는 옆집 사는 같은 반 여학생 따위에게 호색한으로 몰린다 하여도 제 갈 길을 갈 뿐, 신경 쓰지 않는 법이다. 흠, 그렇고말고. 대신 쿠울하게. 최대한 남자답고 무심하게. 알아서 피할 뿐. 그렇게 나, 이로운. 7시 20분에 집을 나와 천하를 나의 발아래에 두려고 하고 있었다. 시선을 틀다가 꼴사납게 펄쩍 튀어 올랐다. “깜짝이야.” 지렁이. 팔뚝만한 지렁이다. 웅덩이에 엄청나게 거대한 놈이 떠 있었다. 비온 뒤라 나온 건가. 나뭇가지를 주워와 쪼그리고 앉아서 슬슬 건드려 보았다. 어릴 적 논에서 많이 봤었다. 그 시절 지렁이만 보면 징그럽다던 어린 내게 아빠는 말했었지. 비가 오면 흙 구멍 속으로 물이 들어가 산소가 줄고 이산화탄소가 늘어나서 지렁이가 구멍 밖으로 기어 나오는 것이라고. 흙을 숨 쉬게 해주는 고마운 동물이니 예뻐해 주라고. 징그럽지 뭐가 예쁘냐는 내게 아빠는 말에는 힘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 예쁘다, 예쁘다 해보라고. 아, 예쁘고 굵기도 하여라. 이놈은 필시 여러 해를 살아낸 지렁이 문파의 대왕 줄지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꿈틀거리는 이놈을 계속 보고 있자니 어째 좀 모양새가 남자 거시기와 비슷해 보이기 시작했다. 아차. 상상해 버렸다. 남사스러운 상념은 내공을 쌓는 데 좋지 못한 법이거늘. 그런데도 한참을 빨려 들어갈 듯 지렁이에게서 눈을 땔 수 없었다. “지렁이네?” 불쑥 내 얼굴 옆으로 들어온 이는 광수였다. 번쩍 일어나 우산을 검 삼아 그를 노렸다. “청박쥐왕. 늦게 온 죗값을 치르라.” “잠깐만. 으, 징그러. 얘네 자웅동체란 거 아냐? 근데 짝짓기는 둘이 필요하다더라?” 징그럽게 웃기는. 같은 남자로서 부끄럽구나. 광수가 지렁이를 밟을 뻔해서 나뭇가지로 풀밭 쪽으로
작성일 2022-09-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282상세보기 -
모색 김젬마 - K-할머니의 이름은
[리뷰 - 청소년소설]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K-할머니의 이름은 유은실, 『순례 주택』(비룡소, 2021) 김젬마 불편한 것들에 대하여 동화나 청소년소설에서 노년 여성 캐릭터는 대개 죽음이라는 소재와 연관되거나 주인공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고 성장을 돕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주로 돌봄 노동과 모성의 주체로 호명되다 보니 자신의 이름보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불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호칭들에 매우 민감한 이가 있으니, 바로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다. 75세인 순례 씨는 어머니, 할머니, 사부인, 동거녀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과 가족 단위로 엮이는 호칭들을 불편해한다. 이러한 호칭들은 순례 씨의 다채로운 삶과 이력들을 괄호 칠 뿐 아니라 순례 씨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무례함을 담고 있다. 순례 씨는 사별한 남자친구의 손녀인 수림을 손녀가 아닌 최측근으로 호칭 정리하며 할머니와 손녀라는 전형적인 관계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순례(巡禮)로 개명할 만큼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착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소환될 뿐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경험이 없는 ‘K-할머니’의 이름은 자신을 옭아매는 규범적인 호칭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재정의 된다. 순례 씨는 호칭뿐만 아니라 물질과 돈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덜어내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과 쓰고 남는 돈, 썩지 않는 쓰레기가 인생 최대의 고민인 그는 푸짐하고 손 큰 할머니의 밥상이 아닌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하는 간단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순례 씨는 정직하게 땀 흘려서 노동하는 삶을 추구하며 세상과 물질에 욕심 없는 다소 초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기만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다. “월세 밀리는 건 참아도,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하는 건 못 참”(80쪽)을 만큼 그는 순례 주택의 생활 수칙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단호하다. 이렇게 순례 주택 입주민들은 공용 생활 수칙과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며 사는 것을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이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53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유은실의 『순례 주택』은 고정된 공간과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순례 주택이라는 공동체의 복작거리는 삶을 그린다. 이는 사건이 인물과 장소의 활용도가 높고 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트콤의 형식과 비슷하다. 『순례 주택』은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특징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이
작성일 2022-09-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053상세보기 -
모색 임형진 - 팬데믹 시대의 연극적 일상
[리뷰 - 창작희곡]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팬데믹 시대의 연극적 일상 - 이수진 희곡-텍스트 「이선생은 피곤하다.」 임형진 “성과사회, 활동사회는 그 이면에서 극단적 피로와 탈진 상태를 야기한다. 이러한 심리 상태는 부정성의 결핍과 함께 과도한 긍정성이 지배하는 세계의 특징적 징후이다. 그것은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을 전제하는 면역학적 반응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해 유발되기 때문이다. 과도한 성과의 행상은 영혼의 경색으로 귀결된다.”1) 한병철 이수진 작가의 희곡-텍스트 「이선생은 피곤하다.」는 전통적인 드라마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포스트드라마적 요소가 동시에 발견되는 독특한 성격을 지닌 작품이다. 텍스트에 장착된 일상의 재현성은 사건의 개연성, 그리고 플롯과 장면의 개별적 완결성에 영향을 미친다. 작가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을 설정함으로써 시대에 반영된 언어와 사회적 행동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게 하였다. 이들의 사회적 관계를 발생시키는 ‘학교’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일상의 문제들을 정치하게 드러내는 연극적 공간으로서 기능한다. 일상에서 비롯된 갈등의 요인들은 이 작품의 사건 구성과 그것의 개연성을 통하여 합리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노출된다. 이 과정에서 희곡-텍스트 「이선생은 피곤하다.」의 전통적인 연극적 정서가 구축되고 또한 발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작품은 사건 자체에만 집중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작가가 제시한 사건은 끝까지 명료하게 해결되지 않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어떠한 힘이나 능력, 논리적인 방식은 개입되지 않는다. 이 작품이 사건의 해결을 목표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후반부로 이어지면서, 인간의 자아가 분열되는 순간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물의 자아분열은 이성과 합리성의 실패와 그것의 불가능성, 그리고 현실의 한계와 모순을 지각하도록 지시하는 포스트드라마적 정서와 감각의 작동방식을 공유한다. 사실적인 일상의 묘사와 사실적일 수 없는 인물의 분열방식은 상호대칭적 관계에 따른 갈등의 무게와 이질적 질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1) 한병철, 김태환 옮김, 『피로 사회』, 문학과지성사, 2012, 66쪽. 사회적 공간 작품의 배경은 한국의 한 인문계 남자 고등학교이다. 이 공간은 팬데믹 이전의 전통적인 학교 환경과 일정한 차이를 보인다. 텅 빈 교실에는 두 개의 스크린이 있으며, 그 뒤에는 칠판이, 스크린 앞에는 교사용 책상과 그 앞에는 학생이 사용하는 빈 책상이 놓여 있다. 무엇보다도 학생이 없는 빈 책상은 대면 방식이 아닌,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진행된 학교의 최근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담임인 이선생의 컴퓨터와 핸드폰 역시 동일한 연극적 공간성을 부여받는다. 이선생과 학생들은 이 장치를 통해 온라
작성일 2022-09-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937상세보기 -
모색 임형진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리뷰 - 창작희곡]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1) - 윤지영 희곡-텍스트 「황금동의 죽음」 임형진 “나 자신의 죽음과의 관계는 비록 그것이 예감이나 예지의 차원에서라 할지라도 앎이나 경험을 의미하지 못한다. 우리는 알지 못하며, 설령 죽음이 무화(無化 aneantissement)라고 해도 그 무화에 대해 관여할 수 없다.” 2) 임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 윤지영 작가의 희곡-텍스트 「황금동의 죽음」은 다소 복합적인 연극-내부-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은 일상의 사건과 행동을 담담하게 재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물과 공간, 상황과 환경 사이에 ‘보이는’ 물리적 요소와 ‘보이지 않는’ 내면적 요소는 문학적 텍스트를 넘어 연극의 수행적 특성으로 이어지게 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섯 인물(character)은 단순히 인간-존재로서만 설정되어 있지 않다. 여기엔 동물도 포함되는데, 바로 황금동이란 이름을 가진 개다. 작가는 이 개가 50세에 가까운 건장한 사람이며,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구체적으로 말한다. 이러한 극적 장치는 우화적(allegory) 특성이 강조된 상징(주의)적 연극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동시대 사회와 일상의 보이지 않는 실체를 연극적으로 목격하게 만드는 ‘새로운 사실(주의)적’ 특징을 예상하게 한다. 그리고 개와 인간의 대화가 동시적으로 어긋나는 소통의 불가능성은 부조리극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러나 개와 관련된 연극적 장치의 주요한 목표 지점은 바로 그 존재를 사실적으로 재현하지 않음으로써 획득하게 될 인간에 대한 성찰의 가능성에 있다. 인간이 개의 정서를 혹은 개가 인간의 정서를 확보하려는 연극적 시도와 노력은 독자의 문학적 수용과 해석을 “공동현존(co-present)”3)의 신체화 과정에 이르는 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동물이 포함된 「황금동의 죽음」의 여섯 인물은 인터넷 포털 신문의 사회면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유형이다. 그러나 이들은 일상 속 내 주변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들은 분명히 사회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독립적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양가적(ambivalent)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제목에 제시된 개의 죽음은 잘 드러나지 않는 누군가의 소외된 상태를 강조하려는 의도와 연관돼 보인다. 작품 속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소외의 양상과 흔적들은 존재자의 관계성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만든다. 동물의 실존을 이야기하기 위해 포스트휴먼(posthuman)에 대한 개념적 정리가 필요하겠지만, 이 작품의 개의 역할은 연극을 위한 알레고리적 장치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조금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 이유는 이 개가 동물의
작성일 2022-08-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638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