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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문장에서 만나는 이야기-
소설 권혜영 - 욕조 안의 볼드모트
욕조 안의 볼드모트 권혜영 내가 아홉 살이고 동생이 여섯 살이던 무렵, 우리 가족은 매일 밤 차를 타고 항아리 바위가 있는 계곡에 갔다. 집에서 차로 20분은 달려야 나오는 곳이었다. 산마루의 고갯길을 여러 번 넘으며 비포장 도로 옆으로 끊어질 듯 이어지는 실개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계곡 주변 바위의 형질이 급변하는 지점이 나타났다. 세차게 흐르는 물 사이로 솟은 기암괴석들에는 하나같이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걸 지리학 전문 용어로는 포트홀이라고 하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항아리의 입구처럼 홈이 패었다고 해서 항아리 바위라고 불렀다. 바위 가운데에 물이 고인 구멍에는 올챙이나 송사리가 서식했고, 물이 마른 구멍에는 이끼 낀 자갈돌들이 쌓여 있었다. 우리 집의 볼드모트는 항아리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볼드모트와 벨라트릭스는 나와 동생이 어렸을 때 해리포터 시리즈를 열심히 챙겨보다가 붙이게 된 아빠와 엄마의 별명이었다. 물론 우리끼리 뒤에서 남몰래 부르는 호칭이긴 했지만. 어쨌든 볼드모트는 민물고기를 잡는 행위로 돈을 번 것은 아니었다. 볼드모트는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농사를 짓는 영농후계자였다. 그런데 농사일엔 소홀하고 밤마다 물고기를 잡는 데만 혈안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아도 단순한 취미생활이라기에는 어딘가 병적으로 집착한 구석이 있었다. 한밤중에. 집 앞 냇가도 아닌. 자동차로 20분을 달려야 나오는 산골짜기를 밤마다 출근했던 것이다. 볼드모트는 그렇게 매일 거센 물살을 헤치고 수심이 허리까지 올라오는 곳으로 향했다. 볼드모트가 양동이 한가득 물고기를 잡아오는 동안, 벨라트릭스와 나와 동생은 자동차 문을 잠그고 계곡 입구에서 기다렸다. 벨라트릭스는 앞좌석에 앉아 ‘Now’와 ‘Max’ 같은 빌보드 최신 팝송 믹스 테이프를 듣곤 했다. 어린 동생은 내 옆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나는 가져온 책을 읽고 싶어서 조명을 켜달라고 졸랐지만 벨라트릭스는 허락해 주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깜깜한 도로 위에서 불을 켜면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될까 걱정되어 그러는 건 아니었고, 자동차의 배터리가 방전될까 봐 그러는 거였다. 나는 할일 없이 벨라트릭스가 틀어 놓은 2000년대 초반 히트 팝송을 들으면서 시커먼 계곡 아래를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다 가끔씩 차들이 고갯길 사이에서 어둠을 뚫고 나타날 때마다 묘한 긴장과 흥분을 했다. 테이프가 A면을 훑은 다음 까드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B면으로 뒤집힐 즈음이면 볼드모트가 돌아왔다. 볼드모트가 손전등을 들고 물가 멀리서부터 걸어오면 희미했던 불빛이 점점 커지다가 계곡 입구의 갓길을 환히 밝혔다. 그때마다 눈뽕을 당한 나는 팔을 들고 이마에 차양막을 쳤다. 볼드모트는 양동이 속 자신이 잡아온 물고기들을 한 마리씩 비추며 자랑했다. 동자개, 꺽지, 쏘가리, 모래무지, 메기. 기억력이 별로인 내가 지금껏 그때 잡혔던 어종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건 볼드모트가 하도 우쭐거리며 말했기 때문에 세뇌당한 탓이 크다.
작성일 2024-09-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1 댓글수 0 조회수 882상세보기 -
소설 임현 - 행복한 소설가
행복한 소설가 임현 1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소설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의 이야기가 제일 많다는 것이었다.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경우까지 더하면 거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근대 문학의 출발이 무엇이냐? 자기 고백 아니냐? 그러므로 그것은 핍진성과 진정성의 문제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수많은 소설가들이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있다는 개연성 때문이라고도 했다. 생각해 보면, 살면서 소설이 잘 써진다고 말하는 소설가를 나는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었다. 있다면 분명 주변에 부러움을 살 만한 재능이었는데도 아무도 그런 자랑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소설이 써지지 않을 만한 이유는 도처에 널려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행복한 소설가는 대개가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불행한 소설가는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할 수밖에 없다, 라고 말한 인물은 러시아의 대문호가 아니라 어느 늦은 밤 만취한 대한민국 출신의 선배 소설가였다. 결과적으로 무언가를 계속 쓰려 한다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그 괴로움에 대해 토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더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무것도 써지지 않는다고 징징대는 동안 기어코 완성하게 되는 것도 다름 아닌 소설이라는 점이었다. 종로구 세종로 소재지의 조도가 낮은 호프집이었고 지하실에서나 날 법한 냄새가 유독 심했던 곳으로 기억한다. 안주 메뉴로 한치를 굽고 쥐포도 굽고 제육볶음과 어묵탕 등을 조리하는데도 좀처럼 그 눅눅하고 고린 냄새만큼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무얼 씹고 삼켜도 다 비슷비슷한 맛이 나는 것도 같았다. 일간지에서 주관하는 문학상 뒤풀이 자리가 줄곧 이어지던 것이었으나, 정작 축하를 받아야 할 사람은 이미 가고 없었다. 마지막 지하철 운행 시간은 한참 지났고 오히려 첫차를 기다리는 편이 더 가까운 시각이었다. 그런 탓에 주로 경기도에 거주하는 사람들만 남았는데, 무엇보다 함께 자리한 여남은 사람들 중 그 이야기에 호응해 주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원고 마감할 시간에 이러고 있으니까 못 쓰는 거잖아요. 근데요, 형. 많이 취했어요? 그거 먹는 거 아니에요.” 주문한 먹태 대신 자꾸 나무젓가락을 씹으려는 선배를 말리며, 나는 나름대로 이 불쾌한 냄새의 발원지를 추적해 보기도 했었다. 고정식으로 설치된 의자와 테이블은 혼자 앉기에는 넉넉하고, 둘이 앉기에는 비좁았는데 어떻게 앉아도 허리가 불편했다. 닦는다고 말끔하게 닦이진 않을 것 같은 지용성 얼룩이 벽마다 눈에 띄었고, 주방의 내부 구조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상태가 어떨지는 대강이나마 예상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런 곳마다 오래 밴 냄새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환풍기 탓인가. 주기적으로 세척을 해주지 않으면 화재의 위험이 크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불이 나도 벌써 여러 번은 났을 만큼 먼지투성이였다. 그러니까 당시에는 뭐랄까, 그런 뜬생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술만 마시면 진지해지는 선배의 주정을 가만 듣고 있기가
작성일 2024-09-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4 댓글수 0 조회수 1273상세보기 -
소설 문진영 - 슬픔은 나의 힘
슬픔은 나의 힘 문진영 침대에서 겨우 빠져나와 커튼을 걷자 어슴푸레한 빛이 방 안에 드리운다. 고양이가 천천히 기지개를 켜고는 사뿐히 침대 아래로 뛰어내린다. 나는 거실로 나가 이번에는 소파에 드러눕는다. 고양이는 곧바로 내 가슴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고 엎드리더니 골골거리기 시작한다. 소리들이 들려온다. 근처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의 새된 목소리. 아랫집 세탁기가 웅, 웅, 하고 돌아가는 소리. 지금 나는 평화로운가. 권태로운가. 판단하지 못하겠다. 주영은 두 달째 부재중이다. 어젯밤 주영의 책상 앞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한구석에 놓인 일력이 주영이 떠난 날짜에 그대로 멈춰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매일의 날짜와 요일, 그리고 문장 하나가 적혀 있는 일력이었다. 나는 그것을 한 장 한 장 뜯어내기 시작했다. 거기 적힌 문장을 읽고, 종이를 구겨 곧바로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그러다 구기지 못하고 한참 동안 들여다본 문장은 바로 이것이었다: 사람의 탄생은 슬픔의 탄생이다. 장자의 말이라는,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덩그러니 놓여 있던 그 문장에 나는 온 마음으로 동의했다. 과연, 나는 한 시절을 사람의 모양을 한 슬픔과 함께 살았으니까. 그렇다면 잔디는? 한때 우리 — 주영과 나 — 는 잔디가 고양이의 몸을 가진 기쁨 그 자체라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아니었다. 잔디도 슬픔이었다. 잔디는 함부로 만지는 걸 싫어했다. 여간해선 울지 않았고 골골거리지도 않았다. 말이 쓸데없이 많고, 내가 움직일 때마다 다리에 몸을 비비고, 시도 때도 없이 꾹꾹이를 하는 이 작은 얼룩 고양이는 아직 이름이 없다. 나는 천천히 녀석을 쓰다듬는다. 따뜻하고, 부드럽다. 너도 슬픔이구나. 너를 슬픔이라고 부를까. * 엄청 웃기는 꿈을 꿨어. 그날 아침 샤워 부스에서 나온 주영이 수건으로 머리를 틀어 올리며 말했다. 그래? 뭐가 웃겼는데? 내 물음에 주영이 기억 안 나, 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꿈속에서 깔깔 웃다가 잠에서 깼는데, 실제로도 소리 내서 웃고 있었다고 주영은 말했다. 그렇다는 걸 깨닫는 순간 섬뜩했고 기분이 나빴는데, 언제인지도 모르게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고. 그런데 막상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불쾌한 기분보다는 그 꿈이 정말로 웃겼다는 것,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진심으로 깔깔 웃었다는 느낌만 남아 있다고 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음. 내 생각엔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데. 네 뇌가 너를 보호······ 주영은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헤어드라이어의 전원을 켰다. 내 말끝은 드라이어의 소음 속으로 순식간에 휘말려 들어갔다. 듣기 싫다는 뜻. 주영은 내가 그냥 그렇구나, 하면 되는 일에 꼭 의견을 덧붙이고 가르치려 든다고 힐난하곤 했다. 나도 그게 좋지 않은 버릇이라는 걸 알았지만 잘 고쳐지지
작성일 2024-09-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487상세보기 -
소설 천운영 - 등에 쓴 글자
등에 쓴 글자 천운영 그녀는 발가락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하루를 연다. 발바닥 오목한 아치 부분에 저릿한 느낌이 올 때까지 발가락을 꽉 오므렸다가 활짝 펴기. 몸의 좋은 기운은 바로 그 오목한 곳에 모였다가 나간다고 그녀는 믿고 있다. 스트레칭으로 잠기운을 지우고 나면 맞추어 놓은 알람이 울린다. 오전 일곱 시. 그녀를 깨우기 위해 알람이 있는 게 아니라, 알람을 끄기 위해 그녀가 일어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두유 만들기. 전날 불려 놓은 검은콩에 호두, 아몬드, 단백질 분말, 오트 우유와 물 한 컵을 넣고 돌리면 두 잔 분량이 나오는데, 한 잔은 아침에 먹고 남은 한 잔은 저녁 식후에 마신다. 콩 불린 물은 따로 담아 머리 감을 때 헹굼 물로 쓴다. 두유가 완성되기까지 15분. 아침상을 차리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식사는 가볍게. 한 끼 분량으로 담아 놓은 채소 스틱과 아보카도 반 개, 달걀 두 개. 채소는 색과 식감을 고려해 조화롭게 구성하고, 달걀은 현미유를 사용해 프라이를 하거나 수란으로 먹는다. 입안에서 완전히 가루가 되고 곤죽이 될 때까지 적어도 오십 번 이상 씹어 넘긴다. 의식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소화기가 약해 생긴 오랜 습관이다. 배변은 하루 한 번 아침 식후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물 내리기 전에 꼭 변 상태를 확인하는데, 색이나 냄새 단단한 정도가 아주 좋으며, 가끔은 그녀가 먹는 양보다 배출되는 변의 양이 더 많아 보일 때도 있다. 체중계에 올라가 보지 않아도 몸무게는 이십 년째 변함이 없다. 건강보조제는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진 것들로 두어 가지 유행을 따라가지만, 단백질만큼은 꼭 산양유 초유 단백질로 넉넉히 쟁여 두고 먹는다. 간단한 집안일을 하고 외출 준비를 마치면 열 시 반. 집에서 노인복지관까지는 걸어서 십오 분 거리. 수업은 11시부터 시작된다. 월요일 수요일은 줌바댄스와 밴드 스트레칭. 화요일 목요일은 노래교실. 수강생은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선정하는데, 다섯 강좌 지원에 셋 성공했으니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실버 줌바댄스는 40명 선발에 지원자가 123명이었다. 점심은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먹는다. 일반 5천 원, 65세 이상 4천 원, 기초생활수급자 무료. 그녀가 천 원 할인을 받은 지는 삼 년 남짓이다. 저렴한 가격에 비해 반찬 구성이 다양하고 맛도 좋아 인근 주민들에게 인기가 좋다. 특히 막 무친 겉절이가 그녀의 입맛에 맞는다. 주 고객층은 70세 이상 남성들로 일찌감치 몰려와 줄을 서는데, 그들을 가리켜 ‘집에서 밥도 못 얻어먹고, 혼자서는 해먹을 줄도 모르는 불쌍한 노친네들’이라고 빈정거린 사람은 노래교실 선생이다. 그날 배운 노래의 흥으로 남은 하루도 즐겁게 보내시라는 말로 수업을 마무리하는데, 그녀는 그날 배운 노래는 그 시간에 바로 잊어버린다. 노래를 부른다고 흥이 나는 것도 아니고, 흥을 내려고 춤을 배우는 것도 아니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오후에는 아쿠아리움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짧
작성일 2024-08-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1 댓글수 0 조회수 1244상세보기 -
소설 백온유 - 부활
부활 백온유 0 세주가 다시 나타난 건 반년 만이었다. 그 애가 신용카드를 훔쳐 달아난 후 내가 분실신고를 하기까지는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그사이에 세주는 370만 원을 사용했다. 그 돈을 지금까지 분할해서 갚고 있는 내게 이번에는 현금 500만 원을 빌려 달라 찾아온 것이었다. 세주는 오만 원 권이 아닌 만 원 권으로 준비하라고 문자를 보냈고, 나는 퇴근하는 길에 ATM기가 있는 편의점에 들러 100만 원을 뽑았다. 세주는 화분 밑에 있던 열쇠를 용케 찾아내 나보다 먼저 내 집에 들어와 있었다. “지금 당장 가능한 건 이 정도야. 더 이상은 나도 힘들어. 미안해.” 내 눈앞에서 돈을 세어 본 세주는 피식 웃더니 서늘하게 뇌까렸다. “이럴 줄 알았어. 너는 항상 말로 때우려 하지.” 미안하다는 얘기말고 너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그렇게 하나마나한 말을 건넨 후에 처분을 기다리겠다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 세주는 내 얼굴에 돈을 던지며 악을 썼다. 미안하지도 않으면서 미안한 척하지 마. 정말 미안하면 네가 나한테 이래서는 안 되지. 무책임한 건 네 엄마를 닮은 거지? 네가 멀쩡하게 사는 건 다 내가 봐줘서야. 신랄하게 나를 모욕하다가 어느 순간 퓨즈가 꺼진 것처럼 잠잠해진다. 감정의 낙차가 너무 커서 당혹스러울 때가 많지만 세주의 감정 변화를 따라 동요해서는 안 된다. 감정이 새어 나가지 않게끔 최대한 웅크린 채 일관된 표정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잠시 혼자서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던 세주는 곧 이성을 되찾았는지 침착한 목소리로 묻지도 않은 근황을 얘기했다.(돈은 한 장 한 장 다시 주워 봉투에 담아 가방에 잘 챙겨 넣었다) 오늘 알코올중독 집중치료센터에서 퇴원했다고. “사실 강제 퇴소 당한 거지. 내가 치약 튜브에 몰래 술을 넣어 갔거든. 정말 필요할 때 한 모금 마시려고. 안 들킬 수 있었는데······ 거기까지 검사할 줄은 몰랐네. 이번에는 정말 포기하지 않기로 아빠랑 약속했는데 실망이 컸나 봐. 내 전화를 안 받아. 이제 아버지도 포기한 거겠지, 나를.” 나는 세주가 술을 마신 게 아닌지 의심했다. 언젠가부터 세주는 취했을 때보다 취하지 않았을 때 더 횡설수설했다. 오늘의 세주는 발음도 또렷했고 나를 마주 보는 눈빛도 차분한 편이었다. 세주의 상태를 가늠하듯 그 애를 살피다가 거실 테이블 아래에 빈 술병이 놓여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아버지 입장도 이해가 돼. 아버지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었어. 아버지는 그때 그 꼴을 보고도 나랑 내 어머니를 놓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었어. 너희 엄마랑 너희 가족만 아니었어도 우리가 이렇게 될 일은 없었겠지.” 삶에서 위독한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그 근원을 나와 내 어머니로 지목하는 세주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느낀 바대로
작성일 2024-08-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162상세보기 -
소설 이주혜 - 여름 손님입니까
여름 손님입니까 이주혜 호텔 출입구에 향이 타오르고 있었다. 향은 호텔 안과 밖의 경계인 회전문 안에서 온종일 흰 연기를 피워 올렸다. 향이 가장 먼저 손님을 맞이하고 맨 마지막으로 손님을 배웅했다. 문이 돌고 돌면 향도 돌고 돌았다. 시작과 끝이, 손님과 주인이 향과 함께 돌고 도는 어지러운 호텔이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9층 방에 올라가 암막 커튼을 열어젖히자 저 아래 묘지가 보였다. 회색 묘비가 빽빽이 들어찬 작은 묘지였다. 호텔이 자리한 골목에는 묘지를 품은 절과 숙박업소들과 카페가 비슷한 비율로 섞여 있었다. 호텔 바로 옆에도 절이 있었는데 호텔 방에서 묘지가 내려다보일 줄은 몰랐다. 산 자들의 세계와 망자들의 세계가 자연스럽게 포개진 도시였다. 어쩌면 호텔 입구에 피워 놓은 향은 투숙객들만을 위한 게 아닐지도 몰랐다. 호텔에 예약해 둔 저녁 식사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는데, 외출하기엔 애매한 시간이라 꼭대기 층의 온천탕부터 다녀오기로 했다. 옷장에 비치된 유카타로 갈아입고 수건을 챙기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방문에 외시경이 따로 없어 큰 소리로 누구냐고 영어로 물었더니 뜻밖에 한국어가 들려왔다. 손님입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더니 큼직한 나팔꽃 무늬 유카타를 입은 백발의 노부인이 서 있었다. 부인은 묘하게 낯이 익으면서 기이하게 낯선 인상이었다. 어느 일본 영화에서 사랑하는 맏아들을 사고로 잃고 둘째 아들과 조용히 불화 중인 엄마 역의 배우와도 닮았고 어떤 드라마에서 재혼한 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딸을 지극히 사랑해 전남편 곁에 두고 온 첫째 딸을 외면하는 엄마 역 배우와도 비슷했다. 사실 두 배우는 주로 맡아 온 캐릭터도 풍기는 인상도 달랐는데, 왜 문 앞에서 빙그레 웃고 있는 노부인을 보고 두 배우를 동시에 떠올렸는지는 모르겠다. 그때 부인이 한국어로 말했다. 그만 갈까요? 투숙객을 온천탕까지 안내하는 직원인가 보다 생각하며 부인을 따라갔다. 그런데 호텔은 내가 지금 온천탕에 가려고 준비 중인 걸 어떻게 알았지? 나도 모르는 사이 안내 서비스를 신청했던가? 체크인 때 데스크 직원과 의사소통이 잘 안 되기는 했다. 주로 영어로 대화했는데 그가 사용하는 영어와 내 영어는 같은 언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달랐다. 부인은 발소리도 내지 않고 복도를 걸어갔는데 종종걸음 같으면서도 바닥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걸음걸이가 독특했다. 보폭은 아주 좁은데 상체를 거의 움직이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부인이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렸다. 먼저 안으로 들어간 부인은 내가 탈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서야 천천히 12층 버튼을 눌렀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어디서든 서두르는 법이 없군. 버스든 엘리베이터든 나만 못 타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이 없나 봐. 이렇게 생각하는데, 부인이 내 마음을 읽은 듯 말했다. 가려고 하면 가게 됩니다. 온천탕은 아담했다. 탈의실에 로커가 따로 없어 비치된 대바구니에 옷을 벗어 두어야 했다. 부인은 탈의실까지 따라와 내
작성일 2024-08-01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1 댓글수 1 조회수 1626상세보기 -
소설 지혜 - 미싱링크
미싱링크 지혜 네 동생을 데려와. 엄마가 그렇게 말하던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내 동생이 될 뻔한 존재는 오래전 엄마의 뱃속에서 사산했고 그 사실에 나는 아무런 혐의가 없는데. 이름도 없는 존재를 사랑하는 건 본능일까 재능일까? 엄마는 사랑의 능력을 타고난 걸까 단지 사랑할 존재가 필요했던 걸까? 나는 엄마가 시게루, 그러니까 우리의 삶에 잠시 머물뻔했던 아빠의 이복형제의 아들에 대해 종종 말하고 싶어했던 마음에 대해 알고 있다. 정작 엄마는 시게루를 만난 적도, 그가 사는 곳에 가본 적도 없었으면서. 나는 엄마가 만난 적 없는 아이를 그리워하듯 시게루라는 실존 인물 ― 그는 나고야의 한 전자상가 사장이 되었고 얼마 전 결혼을 했다 ― 을 주기적으로 언급하는 이유를 끝끝내 묻지 않았다. 세상에는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진실도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한 가지, 엄마는 모르고 나만 아는 기억에 대해 언젠가 발설하고 싶은 마음을 영원히 억누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 우리 가족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빠가 회사에서 승진하며 우리 가족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셋집 ― 아빠 쪽 먼 친척의 소유였던 ― 을 떠나 도시 외곽의 넓고 큰 아파트로 이사했다. 지은 지 오 년쯤 된 아파트는 당시 손에 꼽게 비싼 집이었고 고급 자재와 세련된 인테리어, 빌트인 가구 ― 요즘 말로 ‘옵션’이라 불리는 ― 가 놓인 점을 자랑하며 요란하게 광고를 해댔다. 세 개의 방과 거실, 기역 자 싱크대가 놓인 부엌과 두 개의 베란다가 있는 정남향의 아파트에는 오래된 피아노와 십자 장롱, 족보가 놓인 커다란 장식장이 제 자리인 듯 거실과 방 한구석을 장승처럼 차지하고 있었다. 삼십여 년이 지난 지금 재건축을 앞두고 철거를 기다리는 와중에 호러 유튜브를 찍거나 퇴마를 한다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컬트적인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때 아빠에게는 무리를 해서라도 아파트로 이사 갈 이유가 있었다. 오랜 노력 끝에 엄마는 임신 사 개월에 접어들었고 산부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마른 몸은 난산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절대 안정. 그게 당시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납작한 배를 문지르며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분명 아들일 거야.” 엄마는 커다란 거북이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꿈을 꿨다고, 그건 분명 아들을 낳는 꿈이라고 말했다. “그럼 나는?” 나는 줄곧 궁금했던 나의 태몽 ― 물을 때마다 답이 바뀌던 ― 에 대해 다시금 물었다. “넌 향긋한 과일 밭에서 온갖 열매를 따 먹는 꿈이었지.” 과일? 고작 열매 먹는 꿈이라고? 나는 엄마의 빈약한 상상력과 취향에 비웃음이 났지만 과거를 회상하는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입을 다물곤 했다. 당시에는 병원에서 태아 성별을 알려주는 게 불법이었지만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파란 옷을 준비하시면 좋겠네요”라든가 &ldquo
작성일 2024-08-01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1 댓글수 0 조회수 1191상세보기 -
소설 전예진 - 우리는 작고도 찐득한
우리는 작고도 찐득한 전예진 나는 작년 가을에 태어났다. 세진이 막 취업 준비를 시작한, 피딱지의 말처럼 영 좋지 않은 시기였다. 오른쪽 코 안쪽에 몸을 늘어트린 피딱지는 세진이 한동안 코 파기를 멈춘 시절을 전설처럼 이야기했다. 피딱지의 말에 따르면 세진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코 파는 습관을 고쳤다. 고등학생 때 밤샘 공부를 하다 가끔, 주위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코를 후비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자주는 아니었다. 코 파는 습관은 세진의 대학 졸업과 함께 다시 찾아왔다. 학창 시절보다 3밀리미터 더 기른 무자비한 새끼손톱과 함께. 우리 중 누구도 피딱지가 얼마나 나이를 먹었는지 알지 못했다. 피딱지는 세진의 손길에 조금씩 뜯어졌지만, 남은 손으로 피와 이물질을 그러안아 매번 되살아났다. 피딱지는 말하기를 좋아하고 오지랖이 넓었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나면 촐싹거리며 점막을 두들겨댔다. 우리는 점막을 타고 울리는 피딱지의 말을 들었다. 피할 길이 없으니 듣는 수밖에 없었다. 무릇 코딱지는 코로 들어오는 공기에 실린 먼지와 세균을 거르며 생겨나는 존재다, 이 말이야. 이 한몸 바쳐 비강을 지키는 역할이라는 거지. 그러려면 세진의 몸과 마음에 들어오는 이물질을 걸러 줘야 해. 공기에 바이러스가 있다? 그럼 잡아야지. 세진이 악몽을 꾼다? 그것 또한 가만히 있으면 안 될 일이야. 피딱지는 사람의 목소리도 낼 수 있었다. 비강 안쪽을 향해 소리치면 세진은 잘못 들은 소리나 이명 정도로 생각하고 애꿎은 귀를 후볐다. 기껏해야 늦었으니 일어나라, 자전거 조심해라, 같은 짧은 말에 불과했지만, 어쨌거나 코딱지가 말을 한다니 얼마나 놀랄 일인가. 적어도 막 태어난 나에게는 코 아래 입이라는 곳이 있고 그곳엔 혀가 돌아다닌다는 말만큼이나 놀라웠다. 피딱지는 심지어 아주 희미하지만 냄새도 맡는다고 했다. 콧속에 오래 살면 그럴 수 있다고,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듯이 오래 버텨낸 코딱지는 냄새를 맡게 된다고 말했다. 처음에 나는 피딱지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또 들었다. 피딱지가 하는 모든 말이 흥미로웠다. 그러다 몇 번의 대학살을 겪었다. 친하게 지내던 코딱지들이 몇 초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즈음 나는 더 이상 아주 작은 코딱지가 아니었고 피딱지의 말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노인의 잔소리로 들렸다. 시간이 지나면 너도 이해하게 될 거야. 피딱지는 말했다. 삶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그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작고 그럼에도 또 중요한 존재인지. 그날 오후 피딱지는 새끼손톱에 뜯겨 나갔고 그 말은 피딱지의 유언이 되었다. 세상을 떠난 많은 코딱지들처럼 나도 몇 번의 위기를 맞이했다. 다른 이들이 쫓겨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콧구멍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코털에 맺힌 먼지와 이물질을 싸잡아 몸집도 불렸다. 마침내 콧구멍과 비갑개 사이, 그러니까 콧구멍 가장 안쪽 천장에 자리 잡았을 때쯤 내 몸은 우리의 숙적 새끼손톱보다 두 배는 컸다. 어느새 나는 오른쪽 콧구멍에서 가장 크고 오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코끝에 붙은
작성일 2024-08-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1 댓글수 0 조회수 1543상세보기 -
소설 김지연 - 좋아하는 마음 없이
좋아하는 마음 없이 김지연 안지는 이른 결혼을 했는데 실패로 끝났다. 아니, 그걸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이혼을 한 건 사실이었지만 안지는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그때 이혼한 일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 조금 더 자기 자신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늘 그에 대해 변호하고 싶은 여러 말들이 떠오르곤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결혼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때문에 이혼했다는 사실은 안지의 비밀은 아니었지만 먼저 나서서 밝히지도 않았다. 어릴 때 안지는 무척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이 속해야 하는 집단에서 튀지 않는 사람, 아주 평균적인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다. 찬반투표를 할 때면 눈치를 보다가 다수의 의견에 따라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서 좋아하고 친구의 것과 비슷한 브랜드의 신발을 사서 신었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선생을 따라서 싫어했다. 사실 안지는 그 선생에게 남몰래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다가 술술 흘러나온 그 선생에 대한 욕을 듣고 재빨리 노선을 바꿔 함께 욕을 했다. 한동안 안지는 수학 시간마다 왜 애들은 저 선생을 싫어할까? 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 더 열심히 선생의 행동거지를 살폈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점만 빼면 딱히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다. 학생이 쉽게 답할 수 없는 내용을 골리듯 물어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학생들한테 사과를 할 줄 알았다. 뭔가 잘못 알고 섣불리 화를 냈을 때, 그러다 결국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른 선생들은 그러게 헷갈릴 만한 짓을 왜 하고 다니느냐고 도리어 짜증을 부렸는데 그 선생은 재빨리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 알았어. 미안해. 가끔 안지는 머릿속으로 그 목소리를 재생해 보곤 했다. 그 때문에 선생이 더 좋아졌지만 여전히 싫어하기 위해 애썼다. 누구나 다 그런 식으로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나?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 보려고 노력하면서? 안지는 대학에 갔고 연애를 했고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다. 결혼도 했다. 아주 평균적인 삶이었다. 조금씩 빠르기도 했다. 조바심이 나 있었으므로. 자신도 남들처럼 지극히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빨리 증명해 보이고 싶었으므로.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이 바람이 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식도 올리기 전 임신을 해 낳은 아이가 막 돌을 지난 참이었다. 임신이 아니었으면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남편은 계속 후회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낙태를 밀어붙이지 않은 것을, 시간을 끌다가 영영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만 것을, 어떤 결단력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뼈저리게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새로운 여자가 생겼을 때는 안지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혼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겨우 육 개월을 만났을 뿐
작성일 2024-07-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4 댓글수 0 조회수 2191상세보기 -
소설 정한아 - 소금 샹들리에
소금 샹들리에 정한아 호주에 사는 김이 오랜만에 귀국해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4명이 만나는 건 대략 7년여 만이었다. 방을 잡고 밤새 보자고 해서 오기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남편이 등을 밀었다. 정민이와 자신에게도 내가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밤새 전화 한 통 없었다. 친구들과는 대학 동기였다. 전공은 문예 창작이었는데, 나는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렇지만 정작 작가가 된 사람은 나뿐이라고 친구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십 수 년 전 내가 낸 단 한 권의 책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세 명 모두 미혼이었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예전 그대로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철 지난 옷차림에 좀처럼 대화에도 섞이지 못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술자리도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7년 전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울어 줬고, 이후에도 종종 아이의 간식과 선물을 집으로 보내 줬다. 서서히 연락을 거둔 것은 내 쪽이었다.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힘에 부쳤을 뿐, 그들에게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술에 취해서 침대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cctv 속 거실은 엉망이었다. 엎어진 식판, 사방에 흩어진 블록 조각, 길게 늘어진 옷가지들. 남편은 불도 끄지 않고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정지화면 같은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해 뜰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맛집마다 대기가 길어 종로의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앞장서 구글 맵을 보며 걷던 김이 갑자기 작은 서점 앞에서 멈춰 서더니 책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지난 이사 때 내 책을 분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책을 다시 보내 주겠다고 김을 달랬다. 다섯 평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작은 서점에 내 책이 있을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김은 막무가내로 서점에 들어갔다. 할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가 전면 책장에 전시된 내 책을 발견했다. 죽은 친구를 만났다고 해도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애 씨!”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린넨 바지에 화이트 셔츠, 큼지막한 호른 목걸이를 한 여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반장님?” 나는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여자는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안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전 나와 함께 공부했던 문우였다. H 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창작 교실의 반장. 친구들이 책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그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ldqu
작성일 2024-07-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1 댓글수 1 조회수 2348상세보기 -
소설 최예솔 - 그동안의 정의
그동안의 정의 최예솔 작정하고 사라진 사람은 작정하고 찾아야만 한다. 나는 윤정수를 작정하고 찾지 않았다. 보통의 남매 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정수와 나를 그냥 보통 남매, 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윤정수는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 적지도, 그리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차이 덕분에 윤정수와 나는 딱히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정수는 중학교에 갔고,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윤정수는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윤정수와 내가 영 친해지지 못한 건 우리의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정수는 내게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말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공부머리도 없고 돈도 없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나? 아무튼 남매 사이에 정이라도 있었다면 걱정이라도 했을 텐데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쥐뿔도 없는 윤정수니까. 특이사항이라곤 개그맨 윤정수와 동명이인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는. 그러니 윤정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지. 뭐 내가 찾는다고 윤정수가 나타났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나는 막연히, 어련히 때 되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정수는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윤정수가 죽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니까, 윤정수는 서른넷에 죽었다. 이제 내게 남은 혈육은 없다······ 아닌가? 고모. 그렇게 부르지 마. 왜요. 낯설어. 저도 고모가 낯설어요. 윤현수는 맹랑하다. 윤정수와 장현아의 딸이라고 해서 윤현수. 그거 좀 유치하지 않니? 물었을 때 윤현수는 뭐 어때요 엄마아빠말곤 모르는데,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도 아는데? 하니까 이젠 고모도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다. 참 나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왔는지. 현수야. 네. 네 엄마 입국 날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아직 한참 남았네. 고모도 고모 할일을 해요. 시간 금방 갈걸요. 알겠다 그래. 윤현수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장현아다. 이제는 나흘쯤 됐으려나.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 봤더니 장현아가 윤현수의 손을 붙잡고 서 있었다. 장현아는 다짜고짜 윤정수를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랜만에 듣는 윤정수의 이름에 잠깐 벙쪘다가 네, 저희 오빠네요, 하고 대답했다. 조카입니다. 그날 장현아의 대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도저히 내가 아는 사람이 뱉을 만한 말이 아니어서 대사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아직도 문득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윤현수가 정말 나의 조카가 맞고 장현아가 정말 나의 새언니가 맞을까.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거라면 이제까지 윤정수와 나는, 또 윤정수와 나와 우리의 부모는, 왜 이렇게 흩어지거나 죽거나 혼자 남을
작성일 2024-07-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8 댓글수 0 조회수 2432상세보기 -
소설 장진영 - 용서
용서 장진영 박정상이 과일 바구니를 들고 찾아왔다. 병문안하는 사람처럼. 교복 차림으로 미루어 보건대 박정상은 고등학생이었다. 과일 바구니도 무리해서 샀을 것이었다. 인디핑크 색깔의 광택 없는 종이로 고급스럽게 포장된 과일 바구니 안에 애플망고가 대여섯 개 담겨 있었다. 마치 크고 탐스러운 알 같아서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박정상은 마르고 키가 컸으며 자신의 기다란 팔다리를 어떻게 가눠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큰 키 탓에 눈을 내리깔았는데 거만함보다는 주눅 든 모습에 가까웠다. 과일 바구니를 든 오른손은 안정적으로 허벅지 부근에 떨구어졌고 아무것도 들지 않은 왼손은 불안스레 허공을 맴돌았다. 기타를 치는지 오른손만 손톱이 길었다. 처음에 부모님은 박정상이 누군지 몰랐다. 떨떠름하게 현관문을 열었을 뿐이었다. 문을 연 사람은 아빠였다. 잡상인이거나 종교인이겠거니 싶었다. 그럼에도 문을 열었는데,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기에 스스로 놀랐다. 심지어 안전고리도 걸지 않았다. 앞으로 아빠는 그 이유에 대해 자주 생각할 것이었다. 박정상이 “안녕하세요. 저는 박정상입니다.”라고 말하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거울을 보고 여러 차례 연습한 것 같은 동작이었다. 아빠는 박정상이 누군지 몰랐다. 초면이었고 이름을 들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누군지 알 것도 같았는데, 아슬아슬하게 참아 내는 재채기처럼 그 앎을 흘려보냈다. 아주 잠깐의 평화를 위한 안간힘이었다. 박정상이 자신을 박태섭의 아들이라고 소개하자 아빠는 기절했다. 허물어지듯 넘어진 게 아니라 만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통나무 모양으로 뒤로 쓰러졌다. 퍽, 하고 전구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부엌에 있던 엄마가 달려와 비명을 질렀다. 박정상은 움찔했지만 정면을 바라본 채 꼿꼿이 서 있었다. 처분을 기다리는 듯했다. 엄마는 식칼을 들고 있었다. 기절했던 아빠가 금세 정신을 차렸다. 몸은 그대로였지만 눈은 번쩍 뜨였다. 자신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본능에서 비롯된 초인적인 힘 때문이었다. 아니면 그저 장하나가 아빠의 가슴팍을 밟고 지나갔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장하나는 외부인인 박정상의 발 냄새를 곰곰이 맡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아직 쓰러져 있는 아빠의 손바닥에 엉덩이를 가져다 댔다. 때려 달라는 뜻이었다. 장하나의 동생 장하다는 스탠드형 에어컨 위에서 식빵 자세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닐 수도 있었다. 장하다는 사시였다. 아빠는 자신이 왜 현관 바닥에 큰대자로 뻗어 있는지 알아차리느라 한참 헤맸다. 그러던 중에 식칼을 든 엄마를 발견했다. 아빠는 엄마와 박정상을 번갈아 응시하더니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달려들다시피 엄마를 끌어안았다. 혹시라도 엄마가 저지를지 모르는 일을 막기 위함이었다. 기절하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는 다소 뜬금없는 행동이었다. 엄마가 “왜 이래!” 소리치며 몸을 마구 흔들어 댔다. “놔! 아니니까 놓으라고!” 몸싸움이 격해
작성일 2024-06-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1 댓글수 1 조회수 1829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