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마당 소설 최우수작] 외계로 간다 중에서
- 작성일 200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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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공모마당 소설 최우수작]
아무래도 지구는 비좁으니까요. 그래서, 우주로? 사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여기는 우주가 아니고 뭡니까? 아, 그런가요. 그렇다. 어쨌든 우리도 우주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럼요? 외계로 갈 거에요. 그게 뭐가 다른가요? 외계나 우주나, 그게 그거 아닌가. 사내는 내 두 번째 의문에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이 우주 밖으로 간다니까요. 밖으로? 네. 우주는 무한한 건데요? 당신의 사고체계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겁니까? 사내가 나를 향해 대놓고 히죽 웃음을 흘리며 덧붙였다. 가만히 잘 상상해보세요, 우주의 바깥을. 그리하여 나의 머릿속은 진정으로 뒤죽박죽되기 시작했다. 자그마하고 동그란 공간에 우주 하나가 통째로 들어왔다가 다시 또 콩알만 해졌다가 지구를 들었다 놨다가, 아 더 이상 말하기도 싫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우주와 우주의 바깥의 경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거기가 어떤 곳인지는 일 할도 상상할 수 없었다. 인상을 써 가며 애써 상상해내려고 할수록 머리만 더 아파왔다. 사실 나는 평안남도나 샌프란시스코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인간이었다.
우리는 오랫 동안 파내려왔어요. 이 일만 잘 되면 우리는 외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근데, 근데 말이죠. 그 외계로 가는 일이 바닥으로 내려가는 거라구요? 우주선 타고 날아가는 게 아니고? 그래요, 우리는 지구의 정중앙에 공동상태로 점처럼 박혀 있는 외계로 갑니다. 그러니까, 거기 좀 비좁지 않을까요? 머리를 긁적이며 묻자, 사내는 전혀요, 라고, 우리는 무려 사백 팔십 한 명이잖아요, 라고 말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대답했다. 사내의 그 대단한 자신감에 조금은 멋쩍어하며, 내가 여기서 지금 무슨 삽질을 하고 있는 걸까, 머리를 긁적이다가 이틀이나 머리를 감지 않은 사실을 떠올렸다. 손톱 밑에 누리끼리하고 허연 비듬이 끼어 있었다. 함께 가지 않겠어요? 부동산 정책도 엉망인 이 나라에서 살지 말고 외계로 가자구요. 거기엔 뭐가 있을까요? 나는 머리가 지끈거려 건성건성 물으며 손톱 사이에 낀 비듬이나 불어내려고 손톱 끝을 주시한 채 입술을 동그랗게 말았고, 사내는 진심으로 대답했다. 아무 것도요. 훅- 불현듯 우주 바깥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나는 그곳으로 가고 싶어졌다.
이제 일주일 뒤면 모든 것이 변할 것이다. 지구 따위 자전을 하든가 말든가 나는 외계로 떠날 테니까.
김지연 소설 <외계로 간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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