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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 『사막아, 사슴아』를 배달하며

  • 작성일 2023-12-21
  • 조회수 1,320

소설가 이승우
최윤의 『사막아, 사슴아』를 배달하며

   우리에게 라벤더라는 영어식 발음으로 알려진 라방드에 대해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 프랑스 유학 중, 향수병으로 시달릴 때 프로방스 북부 여행에서 이 꽃밭과 향기를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농밀한 향기를 발하는 이 야생식물이 돌밭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알려준다. ‘바짝 마르고 푸석한 흙이 겨우 섞인 돌밭.’ 라방드의 농밀한 향이 그 돌밭에서 나온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 산문의 제목이 ‘돌밭의 향기’다. 돌밭이 향기를 낼 리 없다. 향기를 내뿜는 것이 라방드라는 건 부정될 수 없다. 그러나 그 식물은 돌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모래와 자갈, 그리고 강렬한 햇빛이 라방드의 향을 깊고 진하게 만든다. 라방드는 그런 돌밭이 아니면 자라지 않고, 그러면 당연히 향기도 낼 수 없다. 그러니까 그 향기는 돌밭의 향기이기도 한 것이다. 

   고난이나 힘든 시간을 잘 견딘 사람에게서 나는 깊고 진한 향기는 우리를 얼마나 감동하게 하는가. ‘그곳을 지나야 삶에서는 더 짙은 향기가 난다.’ 물론 새삼스러운 교훈이다. 그렇지만 어떤 문장은 처음 들어서가 아니라 다시 들어서 뭉클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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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숙 배우의 목소리로 듣는 김숨 소설가의 「벌」

봄을 세 번 나는 동안 벌통들에서 차례로 벌들이 부활했다. 벌들로 들끓는 벌통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죽은 아버지가 되살아난 것만 같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아카시아꽃이 지고 온갖 여름 꽃들이 피어날 때,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마씨는 벌들이 날아가지 못하게 벌통을 흰 모기장으로 감싸고 지게에 져 날랐다. 마씨의 뒤를 따르는 내 손에는 해숙이 싸준 김밥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 깊이 드는 것 같아 주저하는 내게 그가 재촉했다. “꽃밭을 찾아가는 거야. 조금 더 가면 꽃밭이 있지.” 정말로 조금 더 가자 꽃이 지천이었다. 토끼풀, 개망초꽃, 어성초꽃, 싸리나무꽃··· 홍자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 싸리 나무 아래에 그는 벌통을 부렸다. 벌통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마씨와 내가 알몸으로 나뒹구는 동안 벌들은 꿀을 따 날랐다. 고슴도치 같은 그의 머리 위로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나는 꿈을 꾸듯 바라보았다. “당신 아내가 그러데, 나비를 기르면 좋을 거라고. 나는 나비가 벌보다 무서워. 우리 할머니가 나비 때문에 눈이 멀었거든. 도라지밭을 날아다니던 흰나비의 날개에서 떨어진 인분이 눈에 들어가서···” “해숙은 착한 여자야.” “착한 여자는 세상에 저 벌들만큼 널렸어!” “널렸지만 착한 여자와 사는 남자는 드물지.” 여름내 마씨와 내가 벌통을 들고 산속을 헤매는 동안 해숙은 아들과 집을 보았다. 우리가 돌아오면 그녀는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려내왔다. 먹성이 좋은 마씨를 위해 그녀는 돼지고기와 김치를 잔뜩 넣고 찌개를 끓였다. 그녀에게 나는 산속에 꽃밭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이. “우리도 데려가면 안 돼?” 그녀는 꽃밭을 보고 싶어 했다. “꽃밭까지 가는 길이 험해서 안 돼. 가는 길에 무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무덤들 중에는 내 아버지 무덤도 있지.” “근데 읍내 정육점 여자가 내게 묻더라.” “뭘?” “사내 하나에 계집 둘이 어떻게 붙어사느냐고.” “미친년!” “정말 미친년이야. 내가 살코기하고 비계하고 반반씩 섞어 달라고 했는데, 순 비계로만 줬 지 뭐야.” 눈치챘던 걸까. 아니면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날도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해숙이 우리를 몰래 뒤따르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해숙은 산벚나무 뒤에 숨어 마씨와 내가 토끼풀밭 위에서 알몸으로 나뒹구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이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들은 마당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부엌 도마 위에는 해숙이 정육점에서 끊어온 돼지고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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