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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어금니 깨물기」 중에서

  • 작성일 2023-02-09
  • 조회수 1,196





 어금니 깨물기 -김소연 한번 움직인 이후에 나는 이전의 나로 돌아오질 않는다. 움직인다는 것은 그래서 나를 영영 보내버린다는 뜻과 같다. 그렇게 여러 번 나를 보냈고 나를 나에게서 멀어지게 했다. 보내진 나는 어딘가에 있다.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들이 ‘나들’일 것이다. 나는, 나를 보내기 이전까지만 내가 머무는 장소일 뿐이다. 정류장일 수도 있고 환승역일 수도 있고 거리일 수도 있고 집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식의 장소가 될 뿐 나일 리가 없다. 작가 : 김소연 출전 : 『어금니 깨물기』(마음산책, 2022), 79-80쪽



김소연 ┃「어금니 깨물기」을 배달하며


나는, 나를 보내기 이전까지만 내가 머무는 장소일 뿐이다. 여기 내가 보낸 나가 있고, 나를 보낸 나가 있다. 나에게서 보내진 나는 수없이 많으니 ‘나들’이라고 하고, ‘나들’을 보낸 나는 한 명이니 ‘나’라고 하자. 진짜 나는 누구일까. 이 시인은 보내진, 보내져 나를 떠난 ‘나들’, 어딘가 있을, 어디에 있는지 모를 ‘나들’이 진짜 나라고 한다. 보낸 나는 그저 내가 잠시 머무는 장소일 뿐이라고. 우리는 현재의 나에 집중하고 현재의 나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현재의 나만이 우리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나를 떠나,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나가 통제할 수 없는 나들이야말로 진짜 나라고 알려준다. 어제의 나, 1년 전에 만난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있는 나, 2년 반 년 전에 내가 어떤 장소에서 한 어떤 행동, 내가 쓴 어떤 글 속에 남아 있는 나, 그보다 오래 전의 어떤 풍경이나 물건 속에 남아 있는 나가 진짜 나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함부로 살지 말라고, ‘나’를 함부로 보내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소설가 이승우


작가 : 김소연

출전 : 『어금니 깨물기』(마음산책, 2022), 79-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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